[Healing Travel]초원 위에 우뚝 솟은 붉은 바위, 어떤 비밀 간직하고 있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5일 03시 00분


[조성하 기자의 힐링투어/호주의 울루루(에어스록)를 가다]

땅이라는 바다 위에 섬 하나가 둥둥 뜬 모습으로 다가오는 지상 최대의 바위 울루루(에어스록). 높이 348m에 둘레가 9.4km의 이 한 덩이 바위는 땅속에 6000m나 파묻혀 있는 거대한 바위의 정수리 부분이다. 울루루(호주 노던테리토리준주)=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땅이라는 바다 위에 섬 하나가 둥둥 뜬 모습으로 다가오는 지상 최대의 바위 울루루(에어스록). 높이 348m에 둘레가 9.4km의 이 한 덩이 바위는 땅속에 6000m나 파묻혀 있는 거대한 바위의 정수리 부분이다. 울루루(호주 노던테리토리준주)=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호주, ‘가장 작은 대륙’이자 ‘가장 큰 섬’. 19세기 영국이 아니었더라면 가장 큰 섬으로만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당시 영국왕립지리학회가 ‘대륙’으로 규정하는 바람에 호주는 대륙으로 불린다. 덕분에 호주는 지구상 유일하게 대륙 하나를 온전히 소유한 나라가 된다. 중국인의 ‘호주(濠洲)’란 작명의 근거도 이와 상통한다. ‘호(濠)’가 해자(垓字·적의 공격을 지체시키려 성을 에둘러 판 못)를 뜻해서다. 나라 전체가 물(태평양)로 둘러싸였다는 뜻이다.

이 대륙엔 4만 년 전부터 사람이 살아왔다. 북쪽에 이웃한 인도네시아는 호주와 인연이 가장 오래됐다. 그들은 부기스 족. 중국은 9세기에 이미 이들이 호주에서 채취한 해삼으로 만든 건삼을 공급받았다. 15세기엔 명나라 정화의 함대가 다녀갔다고 ‘1421’의 저자 게빈 멘지스는 주장했다. 이 대륙을 본 최초의 유럽인은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 선원(1595년). 영국 땅이 된 건 1770년 제임스 쿡 선장이 보타니 만(시드니 항 부근)에 상륙해 영국속령으로 선포하면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대륙은 2세기 지도에 등장한다. 저자는 그리스의 지리학자 프톨레마이오스인데 그 배경이 흥미롭다. 지구가 균형을 유지 못하면 붕괴할 텐데 그렇지 않으니 지구 반대편 바다에 미지의 땅이 있을 것이라는 논리였다. 그는 그 땅을 지도에 그려 넣고는 ‘테라 오스트랄리스 인코그니토(Terra Australis Incognito·알려지지 않은 남쪽 땅)’라 이름 붙였다. 영어 국명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는 바로 이 ‘남쪽(Australis)’에서 왔다.

호주는 특이한 대륙이다. 다른 데선 볼 수 없는 동식물 때문이다. 애당초 소 말 양 등 발굽동물은 없었다. 원숭이 같은 영장류도, 사자 표범 같은 맹수류도 없었다. 대신 캥거루처럼 새끼를 주머니에서 키우는 유대류가 번성했다. 300여 종 포유류 중에 절반 이상이 유대류다. 오리너구리 같은 단공류(알을 낳는 초기포유류) 역시 호주에만 있다. 6000여 종 육상식물 중에는 75%, 800종의 새 중에는 710종, 200종의 양서류 중에는 185종이 호주에서만 발견된다.

그 이유. 1억6000만 년 전 곤드와나 대륙(하나의 초대륙에서 분리된 2개 대륙 중 하나)에서 분리된 후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과 달리 나 홀로 존재해온 탓이다. 다른 대륙은 서로 연결돼 빈번한 상호접촉과 적자생존 원칙에 따라 각종 동식물들이 끊임없이 진화했다. 반면 호주 동식물은 최초상태 그대로 남은 화석상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캥거루인데 이렇게 불리게 된 과정 또한 재밌다. 18세기 한 유럽인 탐험가가 이 특이한 동물을 뭐라고 하는지 묻자 원주민이 ‘캥거루’라고 답했는데, 그 뜻은 ‘당신이 뭔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듣겠다’이다.

호주의 상징은 남십자성이다. 그래서 국기에 영국을 상징하는 유니언잭(영국 국기)과 함께 담겼다. 그런데 그 별 중 5개는 7각(꼭짓점 7개)별이다. 호주연방에 참여한 6개 주와 1개의 대형 준주(연방직할행정구역)를 뜻하는데 오늘 찾을 에어스록이 있는 노던테리토리(Northern Territory)는 크고 작은 여러 준주 가운데 가장 큰 곳이다.

내륙의 사막 땅을 날다

오전 10시. 울루루 행 항공기가 시드니공항을 이륙했다. 이후 울루루까지 3시간 20분간 창밖으로 펼쳐진 지상의 풍경은 내내 먼지 풀풀 일 듯 건조한 황무지였다. 그렇게 도착한 에어스록 공항. 시계는 오전 11시 55분을 가리켰다. 내 시계는 오후 1시 20분인데. 의문은 금방 풀렸다. 뉴사우스웨일스 주와 1시간 15분의 시차 탓이다.

사막과 다름없는 황무지 한가운데의 오지 울루루. 그래도 연간 27만 명이나 찾는다. 울루루(Uluru) 혹은 에어스록(Ayers Rock)이라 불리는 세상에서 가장 큰 바위를 보기 위해서다. 사막의 대평원에 불뚝 몸을 일으킨 높이 384m 둘레 9.4km의 거대한 바위산. 놀랍게도 이건 산이 아니다. 한 덩이 바위다. 그런데 더 놀랄 게 있다. 땅에 파묻힌 바위의 규모다. 무려 6000m. 빙산처럼 땅 위에 있는 건 그 일부인 것이다. 그래서 지질학자들은 이걸 ‘섬 바위(Island Rock)’라 부른다. 우리 북한산 도봉산도 하나의 바위덩어리라고 하는데 그런 바위 중에 울루루(에어스록)는 지상에서 가장 크다.

킹스캐니언의 협곡 가장자리. 붉은 빛깔은 사암에 달라붙은 철성분이 산화해 입혀진 것이다.
킹스캐니언의 협곡 가장자리. 붉은 빛깔은 사암에 달라붙은 철성분이 산화해 입혀진 것이다.
오지여행의 성지 울루루

에어스록 공항은 시골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그도 그럴 것이 연간 방문객이 30만이 채 되지 않는데다 유일한 마을인 율라라의 주민도 1200명 남짓한 사막의 오지여서다. 얼마나 고립된 곳인지를 말해주는 지표가 있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도시(앨리스스프링스)까지가 직선 335km, 도로상으로는 450km다. 서울서 부산까지 아무도 살지 않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적막함도 노던테리토리의 지리를 살피면 이해가 간다. 남한의 14배나 되지만 주민이라고 해야 24만여 명에 불과해서다. 그나마도 절반 이상(54%)은 북쪽해안의 주도 다윈에 몰려 살고 있다. 앨리스스프링스도 도시라고 하지만 주민은 2만8000명에 불과하다.

울루루 여행길은 결코 만만치 않다. 우선 이동거리 단위가 100km다. 1박 2일 코스인 협곡트레킹 명소 킹스캐니언(와타르카 국립공원)도 율라라에서 320km다. 게다가 사막과 다름없는 아(亞)건조기후의 황무지여서 한낮엔 뜨거워 늘 갈증에 시달린다. 한겨울(11∼3월)에만 연간 250mm의 비가 내리는 사막이라고 보면 된다. 그렇지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호주 현지의 여행사가 완벽하게 대처해서다. 내가 탄 에이에이킹(AA Kings)여행사의 차량은 대당 8억 원짜리 특급코치(25인승)였다. 화물칸의 얼음물통에선 늘 충분한 물을 승객에게 공급한다. 그리고 운전기사가 직접 트레킹까지 가이드하며 여행자를 챙긴다.

킹스캐니언에서 맛본 호주 아웃백스타일의 스테이크.
킹스캐니언에서 맛본 호주 아웃백스타일의 스테이크.
아웃백의 그랜드캐니언을 찾아서

‘아웃백’이라고 쓰인 노던테리토리준주의 자동차번호판.
‘아웃백’이라고 쓰인 노던테리토리준주의 자동차번호판.
첫 여행지는 킹스캐니언. 버스는 4번 도로를 따라 앨리스스프링스가 있는 동쪽으로 달렸다. 도중에 스튜어트하이웨이를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 도로는 1300km 북쪽 다윈과 1534km 남쪽의 포트오거스타(남호주 주)를 잇는 대륙종단 도로다. 네 시간 후 나는 롯지에 짐을 풀고 킹스캐니언 산악이 조망되는 구릉의 전망대를 찾았다. 해넘이를 보기 위해서다. 지는 해에 붉게 물든 바위산의 모습. 이어 밤하늘에 초승달과 별이 떴다. 롯지의 저녁식사 ‘아웃백(Outback)’ 스타일이다. 아웃백은 바로 여기 노던테리토리의 오지를 상징하는 말. 그걸 미국의 스테이크식당이 가져다 쓰는 바람에 혼동을 일으킨다. 아웃백 스타일 바비큐는 소박하다. 어른 손바닥만 한 두툼한 쇠고기등심을 그 자리에서 그릴에 구워 준다.

사막에서의 일정은 늘 캄캄한 새벽부터 시작한다. 선선한 아침에 투어를 마치고 한낮에 쉬기 위해서다. 협곡에 다다른 시각은 오전 6시 반. 이미 날은 훤히 밝았지만 밤의 한기는 바위에 배어 있어 쾌적했다. 이어진 3시간의 협곡 트레킹. 사막의 열기와 바람, 그리고 비와 이슬에 의해 사암의 바위산에 빚어진 기기묘묘한 비경이 인상적이었다. 난이도는 장년층도 충분히 소화할 정도. 미국 그랜드캐니언보다는 규모가 훨씬 작지만 독특한 경관만큼은 더 나았다.

아눙가 부족의 성지 카타추타

율라라 마을을 40km쯤 남겨둔 즈음, 버스는 오른편 차창의 돌산을 향해 방향을 바꿨다. 울루루와 더불어 유네스코 인류유산에 지정된 카타추타 국립공원이다. 이 돌산 역시 울루루처럼 평지에 돌출한 바위인데 다른 점이라면 돔처럼 보이는 최고높이 546m의 36개 바위(마운트올가라고도 부름)가 한 덩어리를 이룬 모습이다.

울루루와 카타추타는 모두 이곳 원주민 아눙가 족에게는 성스러운 곳이다. 이들이 여기 산 것도 벌써 4만 년. 문자도 없고 일부는 원시수렵채취의 삶을 영위하지만 사람이 살아갈 도리와 생을 영위할 현명한 지혜 등 조상이 물려준 정신적 유산만큼은 우리 문명인과 차이가 없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바로 이 두 바위산을 무대로 만들어진 설화를 바탕 삼는다. 그래서 이들은 이 바위를 신성시하며 관광용 볼거리로 노출되는 것을 꺼린다. 호주정부도 이걸 이해하고 1985년 원주민 자치기구에 돌려주고 대신 99년 이용계약을 맺었다. 지금 입장료 수익은 모두 원주민에게 돌아가는데 현재는 영구폐쇄가 논의 중이다.

낙타를 타고 바비큐디너장으로 가는 여행객들. 정면에 울루루가 보인다.
낙타를 타고 바비큐디너장으로 가는 여행객들. 정면에 울루루가 보인다.
지상최대의 바위와 마주하다

드디어 율라라 마을에 짐을 풀었다. 내가 묵은 데저트 가든스는 천국과 다름없었다. 잔디밭에는 풀이 있고 수영복 차림의 여행자는 나무그늘 아래 선 베드에 누워 잠을 자거나 책을 읽는다. 5성급의 리조트는 단순하면서 기능적인 호주스타일 디자인에 고급스러움까지 더했다. 마을에선 원주민 여인으로부터 아눙가 족의 그림문자를 배우고 그걸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강좌(유료)도 열렸다.

사흗날 새벽. 울루루가 정면으로 바라다보이는 곳에서 해돋이로 하루를 시작했다. 울루루 여행의 하이라이트라면 아침 점심 저녁으로 그 색깔이 변하는 바위산의 모습을 감상하는 것. 이걸 마친 후엔 울루루 둘레를 걸으며 가까이서 바위산을 체험한다. 바위 주변은 생태가 완전히 달랐다. 그늘이 드리워지고 이슬이 맺히며 물이 고이다보니 그런 것. 나무도 자라고 연못도 보이며 무엇보다도 시원했다. 새들도 보였다. 바위 표면에 새겨진 다양한 형태와 깊이의 풍화와 침식흔적도 인상적이었다.

이 바위는 한때(5억5000만 년 전) 히말라야 산맥보다 더 높고 큰 피트먼 산맥의 흔적이다. 산맥 전체가 풍화 침식으로 사라지며 흩뿌려진 흙이 바로 이 호주의 사막이고 그게 지하에서 응축된 것이 이 바위다. 그게 난데없는 융기작용으로 들려 올려져 지표상으로 노출된 게 지금의 모습. 5억5000만 년 전이라면 지구의 땅이 한 덩어리였던 초대륙 시절이다. 따라서 울루루 여행길은 인간의 상념으로도 가늠키 어려운 장구한 지구역사를 되짚는 과정이 아닐 수 없다.

▼Travel Info▼

항공: ◇국제선: 인천∼시드니 직항편 매일 운항. ◇국내선(호주): 시드니∼에어스록 하루 4회 운항. 3시간 20분 소요.

현지 여행사: AAT Kings(호주회사) www.aatkings.com.au 호주 전국을 커버한다.

현지 숙소: ◇율라라: 모두 6개. △Desert Gardens △Sails In The Desert △Emu Walk Apartments △Outback Pioneer △Outback Pioneer Lodge ◇킹스캐니언: Kings Canyon Resort. www.delawarenorth.com

현지 관광: ◇샴페인 선다운: 해질 녘 울루루 바위가 정면으로 바라다보이는 평원에서 샴페인을 마시며 석양에 물드는 바위를 감상한다. 울루루 여행의 하이라이트. ◇AAT Kings 바비큐디너(율라라): 해질 녘 낙타 등에 올라타고 한 시간가량 황무지를 가로질러 울루루가 바라다보이는 외진 구릉에 도착, 야외 바비큐 식사를 즐기는 코스. 식후엔 조명을 끄고 남국 밤하늘의 별자리를 찾는 별자리투어도 한다. ◇호주정부관광청 www.australia.com(한글사이트)

율라라(호주 노던테리토리준주)=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