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어부 프로젝트 “노래 속 주인공의 파편화된 드라마는 우리의 삶과 닮아 ”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31일 03시 00분


코멘트

4집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 낸 아방가르드 팝듀오 어어부 프로젝트

아방가르드 팝 듀오 ‘어어부 프로젝트’의 장영규(왼쪽)와 백현진. ‘그저께 산 부엌칼로 어저께 산 지구본을/수박 썰듯 썰어봤다 안 썰린다… 썰린다’는 ‘0312 도파민’의 가사에 대해 백현진은 “크림빵을 직접 안 쪼개 봐도 쪼개질 것을 알 듯, 지구본도 물리적으로 써는 게 가능하다”고 알쏭달쏭한 대답을 했다. 프럼찰리 제공
아방가르드 팝 듀오 ‘어어부 프로젝트’의 장영규(왼쪽)와 백현진. ‘그저께 산 부엌칼로 어저께 산 지구본을/수박 썰듯 썰어봤다 안 썰린다… 썰린다’는 ‘0312 도파민’의 가사에 대해 백현진은 “크림빵을 직접 안 쪼개 봐도 쪼개질 것을 알 듯, 지구본도 물리적으로 써는 게 가능하다”고 알쏭달쏭한 대답을 했다. 프럼찰리 제공

몇 개의 음만으로 미니멀하게 구축된 악곡 위로 가래 끓는 목소리가 자동기술법 산문 같은 가사를 토로하는 가창. 이 정신없는 앨범을 알든지 앓든지 집어던지든지….

아방가르드 팝 듀오 어어부 프로젝트가 18일 낸 4집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은 엿 같은 작품이다. 버터, 꿀, 감자의 조화로 상쾌하게 미각을 사로잡는 요즘 노래들과 달리, 찝찝하게 치아에 들러붙는. 달콤하게 음울한. 의상, 군무, 연애의 설렘에 관한 이야기로 수놓인 총천연색 케이팝 세계에서 흑백 누아르처럼 튀는.

어어부 프로젝트는 화가 겸 가수 백현진(42)과 작곡가 장영규(46)가 1994년 결성했다. 세 장의 정규앨범과 영화 ‘복수는 나의 것’(박찬욱 연출·2002년) OST를 통해 독특한 색채로 한국 음악계에 족적을 남겼다. 연극 국악 무용 미술 판을 드나들며 이런저런 일을 벌였다. 장영규는 ‘황해’ ‘고지전’ ‘은밀하게 위대하게’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타짜’ 같은 충무로 대작들의 음악 감독이다.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의 카페에서 어어부 프로젝트를 괜히 만났다. “그걸 의도한 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답을 주로 내놓는 이들에게서 18일 발매된 10년 만의 신작, 14년 만의 정규앨범이자 불가사의한 작품인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에 관한 힌트를 거의 얻지 못했다.

‘탐정명…’은 ‘나그네’라 불리는 사립탐정이 잃어버린 종이뭉치 358장을 우연히 주운 화자(話者)가 그것을 두서없이 발췌해 읽어보는 내용을 담은 콘셉트 앨범이다.

짧은 연주곡인 ‘시작’과 ‘맺음’ 사이에 늘어선 16개의 트랙 제목 앞에 ‘0214’ ‘0921’ 같은 숫자는 메모의 날짜를 가리키지만 트랙 순서는 제멋대로다.

2번 트랙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에 부쳐’가 사용설명서다. 그에 따르면, 나그네는 40대로 추정되는 ‘남한’의 성인 남성이고 서울에 사는 탐정. 남의 불륜을 캐는 일도 하고 부업으로 대리기사도 한다. 설명서는 배우 문성근이 낭독한다. 개의 실종을 둘러싼 기이한 콘셉트 앨범이었던 2집 ‘개, 럭키스타’(1998년)에는 성우 송도순이 참여했다.

두 괴짜가 이 별난 작품을 처음 구상한 건 2010년 봄. “음반 만들기로 작정하고 악기 몇 개만 챙겨 중국 연변으로 떠났어요.”(장영규) “연변에서 남편을 ‘나그네’라 부르는 게 재밌었죠. ‘남편을 왔다갔다 하는 사람이라고 부르네.’”(백현진)

장영규가 주로 악곡을 만들고 백현진이 가사를 붙여 불렀다. 노래들을 음악극으로 구성해 2010∼2013년 몇 차례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앨범 발매까지 4년이나 걸렸다. 백현진은 “오락으로 치면 되게 깨기 힘든 판이었다”고 했다.

‘탐정의 흩어진 메모장’이란 소재가 자극하는 추리 본능을 곧이곧대로 따랐다간 되레 어어부가 쳐둔 그물에 걸려 허우적댈 수 있다. 백현진은 “앨범 속 주인공의 드라마는 파편화돼 있지만 대부분의 한국 사람이 겪는 일상을 담기에 충분하다. 비현실적 직업 탐정을 얹어 그런 뻔한 얘기에 거리감을 주고 싶었다” “(특이한) 형식, 내용 때문에 기대하시는 것들이 있는 것 같은데, 사실 그건 다 헛기대라고 본다”고 했다. ‘0815 실시간’ ‘1111 대리알바’ ‘1001 역지사지’ 같은 곡은 맞춰서 춤을 추거나 따라 부르고 싶을 만큼 중독적이다.

어어부는 내년 2월 초쯤 앨범 발매 기념공연을 열겠다고 했다. 백현진의 절창과 기이한 동작을 함께 감상하는 건 앨범 듣기와 또 다른 재미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이어부#탐정명#나그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