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나를 찾아서]앙코르와트, 나를 버리고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곳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1일 03시 00분


윤J 투어2000 부사장 칼럼 <10>

이건 지독한 편견이다. 앙코르와트의 인공수로를 건너 사원으로 들어서는 순간, 지금까지의 캄보디아에 대한 생각을 모두 물속으로 던졌다. 우리나라보다 GNP가 낮다는 이유로 대충 생각했던 머릿속에 한차례 번개를 맞은 듯 잠시 시간이 멈춰 선다. 인간이 만들었다고 보기엔 불가사의한 일이 너무 많다. 신이 캄보디아에 남긴 선물 같다. 가볍게 생각했던 몸과 마음에 경계의 비가 내린다. 비로소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무는 것 같다. 앙코르와트의 사원을 보면서 진정 겸허함과 자유로워짐은 어떤 이유에서 일까.

이런 이유로 매년 25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이곳 앙코르 유적을 보기 위해 시엠레아프를 찾고 있다. ‘죽음의 사원’으로도 불리며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오른 바 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당연히 등재돼 있다. 비행기로 이곳 시엠레아프 공항에 내릴 때만 해도 몰랐다. 이곳 앙코르와트에 와서야 왜 작은 비행기들만 운항하는지를 알았다. 세계문화유산 앙코르와트를 보호하기 위한 유네스코와 캄보디아가 비행기 크기를 제한한 것이다. 순간 우리나라 국보 1호가 허술하게 불에 탔던 기억을 떠올려 본다.

앙코르와트 주변은 돌 하나 없는 평원이다. 거대한 돌을 수백 km 떨어진 곳에서 코끼리를 이용해 옮겨 왔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정교한 조각과 완벽한 수학적 논리가 녹아든 앙코르와트는 지금도 지구촌 과학자와 수학자들이 와 연구와 개발을 늦추지 않고 있다. 그런가 하면 내전으로 희생된 아픔의 흔적도 생생하게 살아있다. 유실된 조각과 석상, 베트남군과 크메르 반군이 번갈아가며 낸 건물 벽의 총알 흔적들이 이젠 전쟁에 대한 반면교사를 보여준다.

앙코르는 크메르어로 수도를 뜻하며, 앙코르와트는 수도 사원 그리고 앙코르톰은 거대한 도시를 말한다. 앙코르 유적은 고대 크메르 왕국의 앙코르 왕조시대(9∼15세기)의 것이다. 유적에 대해선 아직까지도 정확한 자료가 없다.

앙코르와트 북쪽에 있는 앙코르톰은 자야바르만 7세 때인 13세기에 세워진 왕국 수도로 한 변이 3km에 달하는 정사각형의 도시다.

앙코르톰에서 가장 흥미로운 볼거리는 바이욘 사원의 남쪽, 서쪽 외벽이다. 부조로 장식된 외벽에는 전쟁에서의 승리와 패배를 역사 왜곡 없이 그대로 표현해 놨다. 농사를 짓고 아이를 키우고 기도하는 백성들의 일상 모습을 조각해 생활상을 실감나게 묘사했다.

앙코르와트는 200m 폭의 수로가 5.6km의 길이로 감싸고 있다. 대부분은 외부 방어용이겠지만 이곳은 종교적인 색채가 짙다. 이 수로는 우주의 바다를 의미한다. 물은 인간의 세계와 신의 세계를 잇는다고 믿고 있다.

앙코르의 왕도가 이곳 시엠레아프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바로 톤레사프 호수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강이 흘러드는 호수 톤레사프는 건기에 3000km²(서울의 5배)이며 우기엔 무려 1만1000km²로 서울에 16배 이상 큰 호수다.

이곳 톤레사프 호수엔 거대한 수상촌이 형성돼 있다. 이곳에서 나고 자라 죽을 때까지 대부분 이들은 이 호수를 떠나지 않는다. 행복이라는 것은 물질로만 잴 수는 없는 것이기에 오히려 이들 수상촌 사람들의 순수한 눈빛에서 삶의 희망을 발견한다. 그리고 나를 다시 돌아보고 나를 발견한다.

앙코르와트는 프랑스 박물학자에 의해 1861년 처음 알려졌다. 전쟁과 약탈로 인해 앙코르와트 중요 유물 30점과 전체 유적의 70%가 복원 불능의 상태를 맞았다고 한다. 인간의 욕망과 헛된 생각이 얼마나 많은 피해를 가져다주는지 잘 알려주는 곳이다. 우린 이곳을 찾으면 그 유명한 킬링필드 영화를 떠올린다. 마지막 장면에서 존 레넌의 이매진이 흘러나오면 격한 감동과 함께 하염없이 눈물이 밀려온다.

진정 나를 찾고 나를 버리고 또 다른 나를 채워오고 싶다면 올 여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로의 여행을 추천한다. 가족과 함께 가는 것도 좋고 혼자 가는 것은 더 좋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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