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네 나이일 때 뭘 했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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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택 선생
[잊지 못할 말 한마디]이유리(청강문화산업대 뮤지컬스쿨 교수)

이유리(청강문화산업대 뮤지컬스쿨 교수)
이유리(청강문화산업대 뮤지컬스쿨 교수)
18년 전 서울 대학로의 동숭아트센터 공연기획부장으로 있던 시절이다. 당시 나는 아주 신이 나 있었다. 한국 최초의 민간 복합문화공간으로 설립됐지만 영화관으로 더 알려졌던 동숭홀을 내 손으로 공연전용관으로 만들고, 전문 무대기술팀을 꾸려 자체 제작 공연을 올리려고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극 ‘어머니’를 끝으로 그 목표를 다 이루면서 헛헛해져 내 청춘이 다 밴 그곳을 과감히 떠났다.

목표를 이루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당시는 지금보다 공연 시장이 훨씬 열악해 마치 고리대금업자처럼 공연 단체들에 미납된 대관료를 독촉해야 했던 상황이 더 괴로웠을지도 모른다. 20대 때 순수한 마음으로 선택했던 공연인의 삶은 예상과는 달랐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적 영향력이 약해졌고, 가난을 운명으로 여겨야 하는 현실과 직면하면서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숙명이라고 믿었던 연애에 실패한 사람처럼 공연이라는 나침반을 잃어버린 채 한동안 은둔하듯 칩거했다. 내 공연 인생의 출발이었던 연희단거리패의 이윤택 선생으로부터 일방적인 통보를 받은 것은 그때였다. 그것도 전화로.

“당장 부산 가마골소극장으로 가서 일주일 남은 연극의 막을 올려라, 연출이 도망갔다!”

결국 나는 한 주간 극장에서 단원들과 합숙하며 공연을 마무리했다. 내 공연 인생의 이별 의식이라도 치르듯 혼신을 다했다. 그러고 첫 공연을 올린 후 공연과의 결별을 감행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그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그리워졌다. 아마도 공연과 나의 인연이 예사롭지 않음을 전하려는 이 선생의 고도의 전략이었던 듯싶다. 아니나 다를까. 그즈음 이 선생의 전화를 또 받았다.

“내가 네 나이일 때 뭘 했지?”

그랬다. 내가 당시 한국 공연계의 메카인 동숭아트센터의 기획 책임자를 박차고 공연계를 떠나려고 하던 그 나이에 선생은 아무도 모르는 지역 극단을 창단했다. 그래서 이 선생은 “너는 지금 내가 네 나이일 때 지녔던 것보다 훨씬 많은 자산을 가졌는데 왜 절망하니?”라는 한마디로 나를 벌떡 일으켜 세워줬다.

그때부터 벅차고 힘겨울 때마다 선배들의 내 나이 때를 되돌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성공한 선배의 과거에서 나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나만의 롤 모델 설정하는 방식을 지니게 된 것이다. 그 습관은 지금도 나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에너지다.

대구에서 대규모 국제 뮤지컬 페스티벌 준비로 숨 가쁜 지금도 송승환 윤호진 등 내 미래의 현재이신 분들이 ‘’불완전한 가능태‘였던 내 나이였을 때를 되돌아보며 위로와 도전 의지를 추스른다.


이유리(청강문화산업대 뮤지컬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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