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출신의 근로자들이 아이와 함께 경기 부천시 석왕사를 찾아 미얀마 불상 앞에서 기도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등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오른쪽이 석왕사 주지 영담 스님. 부천=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 16일 복사꽃 축제로도 잘 알려진 경기 부천시. 복사꽃은 아직 이르지만 석왕사(주지 영담 스님) 가는 길은 진달래와 철쭉, 이제 본격적으로 싱그러움을 토해내는 가로수들의 녹음이 어우러졌다.
부천시 원미구 석왕사는 이 지역의 대표적 도심 사찰이다. 일주문을 들어서자마자 육화전(六和殿) 마당 앞의 연등이 물결을 이뤘다. 일주문과 법당, 팔각구층탑, 범종각 등은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다른 사찰들과 비슷하다.
하지만 잠시 발길을 옮기면 석왕사는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 생활협동조합과 천개의 손, 룸비니 수영장, 어린이집, 유치원, 왕생극락전(장례식장)….
포교는 물론 지역 주민의 삶에 밀착해 있는 석왕사의 면목이다. 》
육화전으로 들어서면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한국 불상뿐 아니라 다소 낯선 모습의 부처님들 때문이다. 이곳에는 미얀마와 스리랑카에서 온 불상들이 봉안돼 있다. 하얀 색깔의 부처님은 현지에서 보석으로 사용하는 광물인 돌로마이트로 조성된 스리랑카 부처님이다. 스리랑카 노동자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 노력한 석왕사 주지 영담 스님에게 감사의 표시로 스리랑카 정부가 기증한 것이다. 금색 가사와 광배가 있는 불상은 이 지역에서 일하는 미얀마 노동자들이 신행 활동을 위해 힘을 모아 조성한 미얀마 부처님이다.
석왕사에서는 국내와 외국인 불자들이 각기 다른 부처님을 향해 예불을 올리는 모습이 종종 목격된다.
“처음 외국 부처님을 모셨을 때는 거부감을 느낀다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됐어요. 부처님의 모습이 다르다고 그 가르침이 바뀌지는 않습니다.”(영담 스님)
이날은 미얀마 출신 근로자인 세 남성 조샤린(41) 조모민(41) 주택 씨(42)와 닝닝에(35·여) 이이문 씨(31·여)가 석왕사를 찾았다.
현재 부천시에는 200여 명의 미얀마인이 거주하고 있다. 고국을 떠나 한국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부천에서 미얀마 공동체를 형성하며 서로 의지하고 있다. 비교적 한국말이 능숙한 조샤린 씨는 가장 빠른 1994년에, 주택 씨와 조모민 씨는 각각 1996년과 1997년 한국에 왔다.
닝닝에, 이이문 씨는 한국에서 일하던 남성들과 결혼하면서 이곳에 거주하게 됐다. 닝닝에 씨는 2005년 윈민 씨(41)와 결혼해 세 살배기 딸 미아수이띤을, 이이문 씨는 2009년 조모아 씨(41)와 결혼해 아들 조평화(4)를 두고 있다.
이날 남편이 일하고 있어 석왕사에 함께 올 수 없었다는 닝닝에 씨는 결혼 사연과 미래에 대한 꿈을 이야기했다. “고향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중매로 부모님들이 결혼을 결정해 한국까지 왔어요. 한국 기준으로는 좀 이상할 수도 있지만 미얀마에서는 중매결혼이 적지 않아요. 아이가 좀 커서 어린이집에 갈 수 있게 되면 남편과 함께 일해 빨리 자립하고 싶어요.”
이이문 씨는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고국에 있는 부모에게 인사말을 전했다. “결혼 뒤 아직 한 번도 미얀마에 가서 뵙지 못해 미안해요. 저는 남편이랑 아들이랑 잘 지내고 있습니다. 부모님도 걱정 마시고 건강 잘 챙기세요. 모두 건강하셔서 오래 오래 사시면 좋겠습니다.”
조샤린 씨는 “석왕사에 미얀마 불상이 있어 고향 절에 오는 느낌”이라며 “일 때문에 자주 올 수는 없지만 명절 때나 행사가 있을 때면 방문해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미얀마의 부처님오신날은 음력 4월 보름경이다. 조모민 씨는 “한국처럼 크게 행사를 치르지는 않는다”며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는 보리수에 물을 뿌리고, 절에 가서 기도하면서 조촐하게 지낸다”고 했다.
한국의 연등 행렬과 비슷한 행사는 10월경에 있다. 주택 씨는 “미얀마에서도 10월에는 집집마다 연등을 걸고 거리 행진을 한다”며 “이때 마을 사람들은 잔치 분위기 속에서 부처님의 공덕을 기리는 음악을 듣고 음식도 나눠 먹는다”고 했다.
석왕사는 5월 4일 경내에서 ‘다문화가정 어린이와 함께하는 한마음 축제’를 갖는다. 올해로 7회째를 맞는 이 행사는 지역에 거주하는 외국인 근로자 가족과 다문화가정을 위한 축제로 자리 잡았다. 미얀마와 스리랑카, 베트남, 라오스, 파키스탄, 필리핀, 중국 등 10여 개국 출신의 2000여 명이 참석해 전통 의상을 입고 음식과 문화 체험을 갖는다.
영담 스님은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애도의 뜻을 전하면서 부처님오신날 관련 행사도 희생자를 추모하는 의미를 담아 치르겠다고 했다. “최근 세월호 침몰 사고로 고통받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루 빨리 구조가 이뤄지고, 사건이 수습돼 가족들 모두 마음의 평안을 얻기를 바랍니다. 나와 타인이 불이(不二), 둘이 아니라는 부처님 가르침처럼 우리 국민들이 위로와 자비의 마음의 등불을 켠다면 희생자 가족들에게 큰 힘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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