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학과 실학 관련 연구서 두 권을 한꺼번에 펴낸 임형택 성균관대 명예교수. 임 교수는 지금까지 10권의 단독 저서를 펴냈는데 그중 절반이 2009년 2월 정년퇴임 이후 나올 만큼 왕성한 집필 활동을 펼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한국의 국학(한국학)과 실학은 뿌리가 같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한국학의 전신으로서 조선학이 성립할 때, 허학(虛學)의 반대어로 보통 명사였던 실학(實學)을 성리학에 맞선 조선 후기 학풍을 일컫는 고유명사로 부르기 시작했다. 당시 국학과 실학의 목표는 같았다. 서세동점의 시대를 겪으며 한국적 근대화를 모색하면서 식민지 상황을 극복하고 민족국가를 수립하자는 것이었다.
근대주의와 민족주의로 요약될 이 두 목표는 20세기 내내 한국을 달군 이상적 좌표였다. 그 좌표에 일정 정도 도달한 21세기가 되자 ‘국학해체론’과 ‘실학무용론’이 흘러나온다. 전자는 ‘우물 안 개구리’식 일국주의에서 벗어나자는 목소리요, 후자는 근대성 담론에 묶여 있는 실학에서 벗어나 탈근대를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한마디로 국학과 실학의 시대적 효용성이 다했다는 지적이다.
임형택 성균관대 명예교수(71)는 이런 조류에 맞서 21세기 국학과 실학의 새로운 좌표를 설정하자는 제안을 담은 두 권의 두툼한 연구서를 동시에 펴냈다. ‘한국학의 동아시아적 지평’(창비)과 ‘21세기에 실학을 읽는다’(한길사)이다. 5일 서울 종로구 돈화문로에 있는 임 교수의 개인연구실 익선재(益善齋)를 찾아갔다. 먼저 국학에 대한 얘기부터 들어봤다.
“요즘 들어 부쩍 인문학의 부흥을 말합니다. 인문학의 핵심이 뭡니까. 문사철(文史哲) 아닙니까. 그 문사철은 무엇에서 비롯합니까. 우리 말글과 우리 역사 그리고 우리의 사상이니 곧 국학의 연구대상입니다. 인문학 부흥의 시작은 국학 부흥에서 시작해야 하는데 요즘 인문학이라 하면 온통 서양 흉내 내기에 바쁘지요. 인문학의 본질은 비판의식에 있는데 돈 되는 거 쫓는다고 서양 것만 공부하면 그게 어디 진짜 인문학이겠습니까.”
그렇다고 그가 말하는 국학이 20세기 국학의 답습이 아닌 것은 물론이다. 21세기 상황에 맞는 전면개정판으로서 국학이다. 그 핵심은 공간 지평의 확장이다.
“국학은 한국에만 출현한 게 아닙니다. 동아시아 공통에 해당합니다. 서양과 일찍 접한 일본은 17세기부터 출현했고 중국과 한국에선 20세기 초 외세와 맞서면서 출현했습니다. 20세기 국학이 일국주의에 갇혀 있었다면 21세기엔 동아시아 국학의 교차·비교 연구로 확장돼야 합니다. 여기서 특히 한국학이 중요합니다. ‘과거의 제국’ 일본의 국학과 ‘미래의 제국’ 중국의 국학이 국수주의나 제국주의로 흐르지 않으려면 그 교차점으로서 한국학의 창을 통해 객관성과 정당성을 검증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탈근대가 운위되는 시대 실학 연구의 필요성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무릇 모든 학문은 그 뿌리가 튼실해야 합니다. 실학은 한국학의 일부인 동시에 그 출발점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실학 없는 한국학은 뿌리 없는 학문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말하는 21세기 실학 역시 17∼19세기 한중일 공통의 정신현상으로서 ‘동아시아 실학’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공간지평의 확대를 겨냥한다. 하지만 그 방점은 탈근대라는 시간지평에 찍혀 있다.
“20세기에 실학에서 서구적 근대의 뿌리를 모색했다면 21세기 실학에선 서구식 근대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 모색이 이뤄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연암 박지원의 경우 현대적 기술문명으로서의 ‘이용(利用)’과 현대적 복지제도로서의 ‘후생(厚生)’, 그리고 올바른 윤리로 ‘정덕(正德)’을 함께 강조했습니다. 최한기의 기철학 역시 서양의 과학적 사고를 수용하면서도 우주적 차원의 평화와 안녕을 강조합니다. 우리 실학사상에는 서구의 과학기술이 간과한 윤리와 생태가 함께 숨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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