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달 안 밟고도 평탄한 길 씽씽, 오르막선 가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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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자전거로 서울시내~한강변 달려보니

“바르릉… 바르르르릉!”

페달을 밟지 않고 나아가는 ‘자동 자전거’에 대한 기자의 편견은 초등학교 때 시작됐다.
뒷바퀴에 뭔지 모를 무식하게 큰 장비를 매단 자전거가 오토바이보다 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골목을 휘저었던 기억 때문이었다.
소형 엔진을 단 자전거가 지나가면서 내뿜은 연기는 매캐했고, 그 소리는 무척이나 시끄러웠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났다. 2013년 8월에 다시 만난 전기자전거는 그간의 기술력 발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했다. 매연이 없고 조용했다.
기능은 더 많아지고 정교해졌다. 하지만 크기는 더욱 작아졌다. 기자는 삼천리자전거가 올 3월 내놓은 전기자전거 ‘팬텀’ 시리즈 중 ‘시티’ 제품을 26일 하루 동안 직접 이용해봤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출발해 강남구 압구정동 삼천리자전거 첼로 홍보관을 왕복하는 약 17km(편도 8.5km)의 거리를 달려봤다. 또 서초구 잠원동 잠원한강공원 일대의 자전거 도로를 직접 달려보며 다른 자전거와 비교해보는 시간도 가졌다.

전기자전거 이해하기

전기자전거를 처음 만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당황하게 된다. 보통 자전거는 안장 높이를 조절하고, 브레이크는 잘 작동하는지, 바퀴 공기압은 적당한지만 확인하고 난 뒤 바로 출발하면 된다. 하지만 전기자전거는 핸들 주위에 장착돼 있는 버튼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데만도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약간의 ‘공부’가 필요하다.

삼천리 ‘팬텀 시티’의 경우 제품을 작동하려면 일단 프레임(차제) 중앙에 붙어 있는 온-오프(ON-OFF) 버튼을 작동시켜야 한다. 그 다음 주행모드와 속도, 배터리 잔량 등을 표시해주는, 핸들 왼쪽에 있는 액정표시장치(LCD)를 켠다. 오류 표시 없이 ‘시속 0’을 가리키는 숫자가 화면에 뜨면, 브레이크를 꽉 잡은 상태에서 핸들 오른쪽에 있는 ‘스타트(start)’ 버튼을 누른다. 이렇게 하면 드디어 달릴 준비가 끝난다.

전기 모터를 작동시키는 방법은 두 가지다. 페달을 강하게 밟아 가속을 내면 모터가 자동으로 속도를 인지해 적당한 가속을 붙여주는 ‘파스(PAS·Power Assist System) 방식’이 첫 번째다. 두 번째는 일반 오토바이처럼 손잡이를 몸쪽 방향으로 돌리면 자동으로 모터가 돌아가는 ‘스로틀 방식’이다. 여기에 친구들과 걸어 다닐 때 보조를 맞출 수 있도록 시속 약 4km의 속도를 내주는 ‘도보지원기능’도 있다.

이 세 가지를 적절히 섞어가며 전기자전거를 타면 오르막이냐 내리막이냐에 상관없이 쾌적한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끌바’도 라이딩이다?

자전거 마니아들은 “‘끌바’도 라이딩이다”라는 말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주고받는다. ‘끌바’란 ‘끌고 다니는 바이크’의 줄임말로, 경사가 심한 오르막을 오를 때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 것을 말한다. 어떤 사람은 ‘지구력이 떨어진다는 걸 증명하는 꼴’이라며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장거리 여행을 하거나 격렬한 운동 중 컨디션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 중 하나다.

아쉽게도(?) 전기자전거는 ‘끌바’가 필요 없다. 전기자전거가 충분히 충전돼 있다면 말이다. 동아미디어센터가 있는 세종로사거리에서 압구정동으로 가는 도중 서울 중구 장충동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의 가파른 오르막을 오를 때도, 이곳을 지나 남산 장충단로의 오르막을 오를 때도 간단하게 스로틀만 당기면 됐다. 오르막길 어디에서도 자전거를 끌고 올라갈 필요가 없었다.


기자가 탄 전기자전거는 경사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시속 10∼13km(스로틀 모드의 최고 시속은 약 24km)의 속도를 내며 오르막을 문제없이 올라갔다. 페달에 발도 대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만약 기자보다 몸무게가 가벼운 여성이나 청소년이 탔다면 더 빨랐을지도 모른다. 만도의 ‘풋루스’ 같은 제품은 자전거가 경사를 판단해 자동으로 기어를 바꿔주기 때문에 PAS 모드만을 이용해 경사를 더 쉽게 오를 수 있다.

스로틀 모드를 이용해 탁 트인 길을 달릴 때는 마치 긴 내리막을 내려갈 때처럼 상쾌했다. 페달을 전혀 밟지 않아도 자전거가 빠른 속도로 달리자 바람이 이마를 스치고 지나갈 때의 즐거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전기모터가 작동해 과속할 걱정은 내려놔도 된다. PAS 모드와 스로틀 모드는 각각 시속 25km, 24km가 넘으면 작동하지 않는다.

초보자, 주행 연습하며 버튼작동법 미리 익혀야 안전

평소 ‘기계를 잘 다루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전기자전거를 제대로 쓰기 위해서 몇 번의 연습 주행을 해보는 편이 좋다. 각종 버튼을 잘 다루지 못할 경우 예상하지 못한 사고가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스로틀 버튼을 7∼10초 연속으로 당기고 있을 경우 속도가 고정되는 ‘크루즈 모드’가 자동으로 시작되는데, 이를 모르고 달렸다가는 자칫 기계가 고장 난 줄 알고 허둥대다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PAS 모드를 처음 사용할 때는 몸이 뒤로 쏠리는 듯한 느낌이 들거나, 순간적으로 바퀴가 헛도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이 느낌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렸다. 기자의 경우 약 15분, 종로5가를 지날 때까지는 다소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없어져야 소중함을 안다더니

기자가 전기자전거의 힘을 느낀 결정적 순간은, 역설적이게도 막상 전기자전거의 전지가 방전된 다음부터였다. 팬텀 시티는 스로틀 모드만을 계속해서 작동했을 때 약 3시간 동안 연속으로 쓸 수 있는 제품이다. 오전 7시 40분부터 주행을 시작해 1 시간을 제외하고 오후 1시 반이 넘을 때까지 계속해서 전원을 켜 놓은 것을 비롯해, 처음 타보는 재미에 신나게 달려버린 것이 원인이었다. 기자가 탄 전기자전거는 한남대교를 지나 다시 남산으로 들어서는 오르막길 입구에 들어섰을 때 완전히 방전돼 멈춰 섰다.

어쩔 수 없이 경사길을 순전히 다리 힘만으로 올라야 했다. 7단 기어 중 오르막을 오를 때 가장 편한 1단 기어를 넣고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결과는? 2분도 못가 ‘끌바’를 시작해야 했다. 등줄기에서 땀을 흠뻑 흘리며 오르막을 올랐다.

전기를 이용해 올랐을 때는 아무 문제도 없는 길이었건만. 그제야 전기자전거의 힘을 체감했다. 결국 압구정에서 광화문으로 돌아올 때는 갈 때보다 약 25분이 더 걸렸다.

기자가 전기자전거를 탄 약 5시간 30분 동안 8명이 “지금 타고 있는 게 뭐냐”고 물어봤다. 그중 3명은 아예 처음 보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한 명은 아파트 경비원, 한 명은 오토바이 배달원, 한 명은 50대 주부였다. 다들 “오토바이는 부담스럽고 걷기는 싫을 때 참 좋겠다”며 큰 관심을 보였다.

“페달을 밟으면 자동으로 충전이 되느냐”는 질문도 있었다. 기자가 탄 제품은 아쉽게도 페달 충전 기능은 없었다. 하지만 풋루스처럼 하이브리드 기능을 가진 제품도 있다. 풋루스는 ‘알티네이터’라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이용해 페달의 운동에너지를 전력으로 바꾸는 기능을 갖고 있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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