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공감 Harmony]정원디자이너 오경아 대표 모녀, 정원에서 서로의 마음을 봅니다

  • Array
  • 입력 2013년 4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겨울 견디고 꽃피우는 나무를 닮고싶다, 삶도 가족도…

정원에서 모녀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봄볕이 좋았던 이달 15일 전남 순천시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서 만난 오경아 오가든즈 대표와 둘째 딸 임형빈 씨가 화단에 물을 주고 있다.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정원에서 모녀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봄볕이 좋았던 이달 15일 전남 순천시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서 만난 오경아 오가든즈 대표와 둘째 딸 임형빈 씨가 화단에 물을 주고 있다.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길게 한숨을 쉬었다. 뽀얀 입김이 고요한 이국(異國)의 정원으로 퍼졌다. 오늘따라 사박사박 흙 밟는 소리가 무겁게 느껴진다. 마음을 달래려 나선 정원이지만 한 번 뒤섞인 감정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정면에 커다란 참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이끌리듯 나무로 갔다. 물기 맺힌 잔디의 머리를 툭툭 털고 밑동에 앉았다. 고개를 들었다. 바람에 뒤엉키는 가지 사이로 하늘이 설핏 내비치다 사라졌다. ‘한국에 남아 있을 걸 그랬나.’ 다시 가슴이 무거워졌다. 길게 한숨을 쉬었다. 2006년 10월의 일이다.

방송작가, 한국을 떠나다

한국을 떠난 건 2005년이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라디오 방송작가로 일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곧바로 취직해 10년 넘게 한 가지 일만 했다. MBC라디오에서 ‘지금은 라디오시대’의 작가로 활약했다. 2004년에는 ‘올해의 작가 상’을 받기도 했다.

밤낮 없이 일했지만 무언가 공허했다. 몸과 마음이 조금씩 지쳐갔다. ‘난 지금 행복한 걸까.’ 스스로 내린 질문에 선뜻 답을 하지 못하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부터다.

다른 삶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서른세 살이 되던 해다. 양친이 1년 간격으로 하늘나라로 떠나며 삶에 대한 근본적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정신이 퍼뜩 들었다. 내 인생의 10년 뒤와 20년 뒤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지금이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연초록이 무르익던 4월 15일. 전남 순천시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서 만난 정원 디자이너 오경아 대표(46)는 당시를 이렇게 떠올렸다.

“라디오 방송작가 일이 주위에서 생각하시는 것보다 엄청 힘들어요. 매일매일 받는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죠. 일을 계속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어요. 한참을 슬퍼한 뒤 이 생각이 딱 떠오르더라고요. ‘아. 지금 당장이 행복한 일을 해야겠다. 사람 앞날은 정말 모르는 것이구나.’”

그는 꽃과 풀, 나무 등 식물을 공부하기로 했다. 힘들 때 위로가 됐던 건 오직 꽃과 나무였다. 겨울을 버티고 봄에 싹을 틔우는 식물을 보며 나만 힘든 게 아니라며 스스로를 달랬다. 외려 추운 겨울을 묵묵히 이기고 기어코 꽃을 피우고야 마는 식물이 자신보다 나아 보였다.

직장 문제로 한국을 떠나기 어려운 남편을 제외한 전 가족이 영국으로 떠나기로 했다. 오 씨가 38세, 두 딸인 임수빈(21) 임형빈 씨(20)가 중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비행기 타기 2주 전까지 영국으로 간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어요. 엄마가 갑자기 학교에 같이 가자고 했는데 그게 알고 보니 자퇴서를 내러 간 거였죠. 허겁지겁 친구들한테 작별 인사하고 눈 떠보니 영국이었어요.”

행복을 찾기 위해 두 딸을 데리고 떠난 영국 땅. 영국 남동부에 자리한 에식스에 집을 구하고 에식스대의 학부 과정에 등록할 때까지 모든 게 순탄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새로운 생활이 주는 활력이 샘솟았다. 그렇게 1년이나 지났을까. 오 씨는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와 마주하게 된다. 타국에서 맞은 딸들의 사춘기다.

우울함 달래준 정원

“엄마는 내 맘 하나도 몰라!”

둘째 딸이 자기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 문을 사이에 두고 딸과 엄마의 미묘한 긴장이 이어졌다. 영국인처럼 살고 싶은 형빈 씨와 한국인으로 키우려는 엄마 사이의 갈등은 깊은 골을 만들고 있었다.

형빈 씨는 활달한 성격 덕에 영국에서 금세 친구를 만들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동양적인 외모에 화통함을 갖춘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형빈 씨도 그들의 문화를 습자지처럼 받아들였다. 약 1년이 지나자 형빈 씨와 영국인 친구를 구분 짓는 건 외모 하나였다. 행동은 그들과 다를 게 없었다.

▼ “가지를 자르면 나무가 튼튼해지잖아요, 엄마의 훈계도…” ▼

엄마인 오 씨의 눈에는 그게 마뜩잖았다.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갈 아이들이 동양적인 예의와 사회적 태도를 잃지 않길 바랐다. 오 씨는 딸을 걱정했지만 딸의 눈에 비친 엄마는 전형적인 동양인 ‘드래건 맘(열성적이고 화를 잘 내는 엄마)’이었다.

“친구들끼리 늦게까지 놀거나 그러면 다른 엄마들은 전화 한 통 안 하는데 우리 엄마는 전화가 끊이지 않았어요. 몇 시까지 들어올 거냐, 남자친구는 가려서 만나라, 주문도 다양했죠. 언젠가 노느라 전화를 못 받았더니 부재중 전화가 15통이나 와 있더라고요.”

형빈 씨는 그럴 때마다 자신이 이방인 같았다. 영국 사회에 다 동화됐다고 생각할 만하면 엄마의 간섭에 정신을 차리곤 했다. “당시 친구를 쉽게 만나려면 그들과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걸 방해하는 엄마에게 더 화가 났고, 결국 엄마랑 말을 안 하는 방법을 택했죠.”

오 씨도 속이 상하긴 마찬가지였다. 오 씨는 한국에서 자라는 아이와 똑같이 키우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영국인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면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서 두 딸이 고생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자신의 공부를 위해 아이를 영국에 데리고 온 게 이기적인 선택은 아니었는지 후회도 생겼다.

딸들과의 대화는 점차 줄어 갔다. 가슴에 돌덩이가 하나씩 들어차는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오 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식물을 찾아 나섰다. 다행히 영국에는 정원이 많았다. 유료와 무료를 합해 4000개가 넘는 정원이 마련돼 있었다.

틈날 때마다 정원을 찾았다. 나무와 꽃을 보며 심신의 안정을 얻으려 했다. 그러나 한번 뒤엉킨 마음의 실타래는 좀처럼 시작과 끝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2006년의 어느 가을, 오 씨는 거주지인 에식스 인근의 ‘하이드홀 가든’을 찾았다. 한없이 정원을 걷고 걸으며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그러다 문득 참나무를 발견하고 나무 아래에 앉았다.

‘내가 애들을 망치는 건 아닐까. 아이들을 언제까지고 품안에 두는 게 맞기는 한 걸까.’ 고민 위로 고민이 덧칠됐다. 멍하니 앉아 참나무 가지 사이로 하늘만 바라봤다.

그때였다. 도토리가 오 씨의 눈에 띄었다. 참나무에서 나 땅으로 떨어진 도토리였다. 수업 시간에 배웠던 도토리에 관한 내용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도토리가 왜 동그랗게 생겼는지 아세요? 동그랗게 생겨야 잘 굴러가거든요. 참나무는 대부분 가지가 무성하게 나기 때문에 나무 아래에 생기는 그늘도 커요. 도토리가 나무에서 떨어져 멀리 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참나무 그늘 때문에 햇볕도 못 받고 싹도 못 틔우는 거죠.”

오 씨는 도토리를 맺는 참나무가 되고 싶었다. 자연의 순리상 자녀가 어느 정도 성장했으면 품에서 떼어놓는 것도 자녀 성장에 보탬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들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며, 대신 책임감을 심어줬다.

“엄마가 너를 놔주는 건 마음대로 살고 인생 망치라는 의미가 아니야. 네가 책임감 있게 살며 잘되길 바라는 거야. 엄마 마음 알지?” 딸은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오경아 대표는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서 100여 종의 씨앗을 보관할 수 있는 씨앗은행을 선보였다. 임형빈 씨가 엄마가 만든 씨앗 보관함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오경아 대표는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서 100여 종의 씨앗을 보관할 수 있는 씨앗은행을 선보였다. 임형빈 씨가 엄마가 만든 씨앗 보관함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함께 꾸린 정원


오 씨는 전공을 살리기로 했다. 함께 정원을 다니며 식물을 매개로 딸과 소통하기로 했다. 식물을 키우는 건 자녀를 기르는 것과 닮은 구석이 많았다. 다행히 딸들도 오 씨의 식물 이야기를 재밌어 했다.

형빈 씨는 어느 날 영국의 정원에서 정원사가 가지 치는 모습을 보고 엄마가 해줬던 이야기가 생생하다. “보통 식물의 가지를 자르면 식물한테 아픔을 준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엄마의 말은 달랐어요. 가지를 잘 잘라주면 병든 부분을 떼어내고 식물이 건강하고 아름답게 자랄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이었죠.”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오 씨가 거든다. “영국에 있을 때 제가 그랬죠. 엄마가 가끔씩 너희에게 싫은 소리 하는 건 다 너희의 가지를 쳐주는 일이라고. 더 예쁘고 건강하게 자라라는 뜻에서 이야기를 하는 거라고.”

서로 오해를 푼 모녀는 영국에서 7년간 공부에만 매진했다. 오 씨는 에식스대 대학원에서 조경학 박사 과정을 마쳤고 영국에서 학업 성적이 우수했던 두 딸은 한국에 들어와 각각 고려대와 연세대에 입학했다.

오 씨는 당시 정원에서 딸들과 소통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영국 정원 산책’ 등의 책을 썼다. 지금은 각종 정원의 디자인을 담당하는 프로 디자이너로서 맹활약 중이다.

20일 문을 연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서는 후원사인 하나은행의 정원을 직접 꾸몄다. 청이단풍, 수선화, 조팝나무 등으로 가득 채웠다.

정원을 꾸밀 때에는 둘째 딸인 형빈 씨의 도움이 컸다. 미술에 재능이 있는 형빈 씨가 정원의 주제 공간인 ‘씨앗은행’ 창고에 커다란 참나무를 그려 넣은 것이다. 참나무는 영국에서 엄마가 소통의 씨앗을 발견했던 도토리의 모체다.

“요즘도 엄마랑 정원을 다녀요. 영국에서 함께 정원 다니면서 저도 무척 좋았나봐요. 그립더라고요. 엄마랑 서먹서먹한 친구들이 있다면 무조건 정원을 추천하고 싶어요. 가서 서운한 점 다 말하고 풀고 오세요. 꽃 앞에 두고 설마 엄마가 화내시겠어요?”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