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공감 Harmony]이종근·이관수 부자, 흙 위에서 교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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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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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나무들 속에서 내 삶과 아이들의 성장을 배우다

나무들은 우리를 생각하게 한다. 봄이 오면 생명의 신비를 느끼게 하고 여름에 성장하는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다. 나무 키우기에 빠진 이종근 씨 가족은 그래서 늘 싱싱한 가족사랑을 지켜간다. 시흥=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나무들은 우리를 생각하게 한다. 봄이 오면 생명의 신비를 느끼게 하고 여름에 성장하는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다. 나무 키우기에 빠진 이종근 씨 가족은 그래서 늘 싱싱한 가족사랑을 지켜간다. 시흥=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 유난히 추웠던 겨울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는 3월, 어김없이 새싹이 나온다. 신기하다. 11월이 되면 나무는 다시 잎을 떨어뜨릴 것이다. 자연에서 생명의 신비를 느끼고, 그 속에서 인간의 삶을 깨닫는다. 꽃이 피는 것을 보고 욕심을 내려놓는 법을 배운다. 건강하지 않은 나무는 꽃을 피우지 않는다. 그래야 나무가 살 수 있다.

누구는 나무를 오래 보다 보면 나뭇잎이 말하는 게 들린다고 했다. 난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인생은 배웠다. 작은 나무들 속에서 지낸 세월이 10년, 어린 줄만 알았던 막내아들도 성장하고 있다. 올해 나이 예순하나, 나는 작은 나무 키우기에 푹 빠진 아버지, 이종근이다. 》
정직한 분재의 매력에 빠지다

“분재 사업을 해보고 싶다.”

무역업자 이종근 씨는 50세가 되던 2002년, 가족들 앞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분재(盆栽)가 뭔가. 나무나 화초를 화분에 심어 줄기와 가지를 아름답게 키우는 작업이다. 화분에 터 잡은 나무는 신기하게 자연 속에 있던 모습처럼 자란다. 가꾸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거름을 주고 가지치기를 하고 매일 물을 주고. 햇빛과 비와 땅, 자연이 빚어내는 조화를 오롯이 인간이 떠맡아야 한다. 그래도 해보고 싶었다. 경기 시흥시 논곡동에 자리 잡은 분재 전문점 석정원은 이렇게 탄생했다.

이종근 석정원 대표는 젊어서부터 사업을 했다. 기계 공구를 수입해서 국내 상가에 팔았다. 홈쇼핑으로 유통경로를 뚫어 사업을 키웠다. 여느 사업가 아버지처럼 집안일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새벽 일찍 나가 자정이 돼야 들어왔다. 술에 취해 돌아오는 날도 많았다. 두 아들에 딸 하나, 아이들은 아버지를 데면데면하게 대했다. 자녀들이 기억하는 아버지는 예의를 강조하는 엄한 분이었다.

그런 아버지도 나무에는 정성을 쏟았다. 오래전부터 아파트 베란다에 화분을 두고 작은 나무들을 키웠다. 취미로만 할 줄 알았던 나무 키우기가 평생을 함께할 사업이 된 건 2002년 여름. 25년 동안 따라다녔던 ‘무역인’이라는 꼬리표는 미련 없이 떼어 버렸다.

“사업이란 건 기본적으로 누군가를 속이는 작업이잖아요. 내가 가져온 공구를 어떻게든 비싸게 받아야 하고, 그러려면 실제 가치보다 높게 불러야 하고요. 하지만 나무를 키우는 건 정직해요. 딱 정성 들인 그 값어치만큼을 받는 거죠. 그리고 꽤나 창조적이에요. 키가 커지고 아름다워지면서 나무 가치가 올라가는 것도 매력적이에요.”

초짜 분재 사업가가 맨 먼저 한 일은 비닐하우스를 짓는 것이었다. 나무를 키울 집을 마련한 것이다. 다음으론 전국 곳곳을 돌며 나무 보는 눈을 키웠다. 분재 전시회가 열린다고 하면 해외도 마다않고 달려갔다. 이 대표는 “몸은 고돼졌는데 정신적으로는 엄청 편해졌다”고 했다.

아버지도 도움이 필요한 ‘가족’


이 대표의 막내아들 관수 씨(30)는 처음엔 아버지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열아홉 살 학생 눈에는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한 어머니가 먼저 들어왔다. 사업이 안착하기까지 가정을 챙기며 고생했는데 또 새로운 사업이라니…. 그런데 아버지는 예전보다 많이 웃고 있었다. 점점 꼴을 갖춰가는 석정원의 모습도 신기했다. 한 달에 한 번 아버지가 일하는 곳에 갈 때면 늘 뭔가가 바뀌어 있었다. 어느 날은 소나무가 하나 심어져 있고 어느 날은 새로운 비닐하우스가 세워져 있었다.

“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적은 없지만 부모님 말씀을 잘 듣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막내아들은 대학에서 의상 디자인을 전공했다. 2005년에는 인터넷 쇼핑몰을 냈다. 2년 동안 하루에 2시간씩 자며 인터넷 홍보 전략을 짜는 데 매진했다.

어느 무더운 여름 날, 전날도 2시간만 잔 이 씨가 아버지를 찾았다. 비닐하우스에서 아버지는 땀을 비 오듯 흘리고 계셨다. 처음이었다, 아버지를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분재 나무와 야생화 사진들을 인터넷에 올리면 어떨까.

아들은 2008년 5월 인터넷 카페를 열고 ‘석정원 막내아들’이란 이름으로 활동을 개시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분재 사진을 정확하게 2장씩 올렸다.

“마케팅도 정성이잖아요. 내가 만약 카페 회원이라면 매일 새로운 내용이 올라오는 카페를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술을 마시다가도 밤 11시가 되면 인터넷에 접속했죠.”

제일 놀란 건 아버지였다. 처음엔 “쓸데없는 일 하지 말고 네 일이나 잘해라”고 했다. 하지만 5년이 다 돼가는 지금은 아들이 고맙다.

아버지의 부탁

2010년 여름 가족이 함께 성묘를 다녀오던 길이었다. 관수 씨에게 “학교에 들어가서 분재를 제대로 배워보라”고 제안했다. 처음이었다, 아버지가 진지하게 부탁을 한 건. 어려서부터 그저 내키는 대로 살았던 아들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아니 같았다.

“제가 하고 싶어서 한 거예요. 해뜨면 일하고 해지면 쉬고. 그렇게 자연의 순리대로 사는 게 좋아보였어요.”

2011년 3월 관수 씨는 여주농업경영전문학교의 원예계열 과수경영학과에 들어갔다. 입학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청바지에 깔끔한 재킷을 입고 면접장에 들어간 관수 씨는 수시에서 낙방했다.

정시에 다시 지원했다. 다시 만난 교수에게 관수 씨는 “붙여주실 때까지 지원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훗날 교수는 “처음에 봤을 때는, 도중에 그만둘 것 같았다”고 했다.

아버지 이종근 대표는 “아들에게 강요했던 건 아니고, 그냥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고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그저 열심히 하기만 바랐는데 아들은 기대 이상이었다. 햇빛에 그을려 새까매진 얼굴, 아들은 자주 녹초가 돼 돌아오곤 했다. 그러면서도 웃었다, 아버지처럼.

“제가 원래 뭘 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거든요. 학교에서 실습하는 게 참 신기했어요. 나무는 거짓말을 안 해요. 약이라도 한 번 쳐주면 벌레가 덜 꼬여요. 정성을 쏟은 만큼 변하죠.”

나무 키우기에 한 마음이 된 부자는 흙위에서 교감하며 세대공감을 체득한다. 시흥=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나무 키우기에 한 마음이 된 부자는 흙위에서 교감하며 세대공감을 체득한다. 시흥=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흙 위에서 교감하다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는 부쩍 늘었다. 인터넷 카페 회원들은 ‘석정원 막내아들’에게 분재에 대해 이것저것 묻는다. 그럴 때면 아들은 수시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한다. “아무래도 공통의 화제가 있으니까 대화가 많아진 것 같아요.” 아버지의 얼굴에 만족감이 번진다.

“저는 늘 자식들에게 정직하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말했어요. 노력한 만큼만 받으면 된다고. 분재도 그런 일이라고 생각해요. 건강하게 자기 자존심을 지키면서 할 수 있는 일이죠.”

아들은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정말 늦은 때”라고 했다. 어느 개그맨이 TV에서 웃자고 한 말이기도 했다. 그런데 아들은 그 뒤를 덧붙였다. “그러니까 빨리 시작 해야죠”라고.

“아버지는 ‘네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찾아라’라고 늘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아버지께서 친구분들처럼 퇴직 걱정도 안 하고 열정을 쏟는 모습이 좋아보였어요. 우리 아버지라서가 아니라 같은 남자로서 참 멋지다고 생각해요.”

“어릴 때 아들을 키우면서는 ‘자식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책임감 강해지는 아들 모습 보면서, 기특하고 고마워요. 내 맘대로 할 수 있진 않았지만 이렇게 내 맘처럼 커주다니요.”

“저도 모르게 아버지가 원하는 방향으로 성장한 걸 수도 있고요. 어쩌면 아버지가 막내아들의 진가를 이제야 본 걸 수도 있죠.”

한 길을 함께 걷는 부자

그러고 보면 예전부터 아들은 끈기 하나는 대단했다. 한때 큰 인기를 누렸던 컴퓨터게임 ‘포트리스’. 아들은 밤새 게임에 몰두했고 전국 순위 3위에 올랐다. 눈이 마주친 부자는 “어릴 때도 한 번 하면 끝장을 보긴 했네”라며 함께 웃었다.

그런 아들은 이번에 또 한 번 일을 벌였다. 분재 전문 인터넷쇼핑몰을 연 것이다. 관수 씨는 “젊은 사람들도 전화나 인터넷 카페를 통해 분재에 대해 많이 문의하는 걸 보고 지금이 쇼핑몰을 낼 적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관수 씨는 올해 충북대 원예과학과 3학년에 편입도 했다. 그런데 1년 동안은 휴학할 예정이다. 쇼핑몰을 활성화시키고 안정되게 운영하는 데 1년 정도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로 관수 씨는 아버지처럼 분재 사업을 하고 싶은 걸까. 이 씨는 “많은 걸 하고 싶다”여 웃는다. 예를 들어 분재 나무의 곡선을 의상 디자인에 접목시켜 보는 것. 시접과 절개 부분을 평범한 선이 아닌 나무의 선을 본떠서 만들어 보는 것. 이 씨는 “분재 사업을 한다면 나무 규모는 줄이고, 사람들이 편히 와서 쉴 수 있는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들의 꿈은 절묘하게 아버지의 그것과 닿아 있다. 이종근 대표는 “비닐하우스를 좀 정리해서 문화공간으로 꾸밀 계획이다. 또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와서 예식장으로 활용하게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10년 뒤 이들 부자의 모습은 어떨까.

“글쎄요, 그때쯤이면 아들이 이끌고 제가 받쳐주고 있겠죠. 더 시간이 지나면 손자를 보고 있으려나.”

“그때도 아버지의 역할은 분명히 있겠죠. 언제나처럼요.”

시흥=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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