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장민영 씨는 2012년 ‘여배우 드레스’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렸다. 새해에는 글로벌 디자이너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꿈을 펼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최지우, 송지효, 차예련, 이연희….’
국내 톱 여배우들인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연말연시의 꽃인 시상식 레드카펫에서 한국 디자이너 브랜드 ‘드민’의 드레스를 입었다는 점이다. 여배우들끼리 자존심 대결을 벌이는 시상식 스타일에서 해외 유명 브랜드가 아닌 국내 디자이너의 드레스를 선택해 화제가 됐다.
지난해 말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 위치한 드민의 쇼룸에서 만난 디자이너 장민영 씨는 “부산에서 한 고객이 전화해서 ‘고소영 드레스’를 사고 싶다며 ‘월급 타면 서울에 갈게요’라고 하는데 감동이 밀려왔다”며 멋쩍게 웃었다.
장 씨가 드민을 처음 선보인 것은 지난해 9월이다. 심플하면서 건축적인 요소를 가미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국내 시장에 브랜드를 선보이자마자 ‘여배우 드레스’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리며 새해 패션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무작정 이탈리아 유학 떠나
“무작정 이탈리아로 유학 갔어요.”
장 씨는 원래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하지만 공부하고 보니 산업디자인은 기업이 ‘발주’를 해야 일을 할 수 있었고 1990년대 중반 산업디자인의 가치는 제값을 받기 어려웠다. 그는 자기 이름을 건 브랜드를 하고 싶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패션이었다. 어릴 적부터 좋아했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에서 반대했기에 디자인을 공부한다며 1997년 이탈리아로 떠나 피렌체에 있는 폴리모다 패션학교를 졸업했다. 자기 브랜드에 대한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현지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일하며 장 폴 고티에, 에마뉘엘 웅가로, 휴고보스 블랙 등 유명 브랜드의 디자인을 맡아 실력을 쌓았다. 그는 “예술적인 창의성을 강조하는 프랑스보다 지금 당장 입을 수 있는 옷을 중시하는 이탈리아에서 느끼는 게 많았다”고 말했다.
‘드민’ 드레스를 입은 최지우(오른쪽). CJ오쇼핑 제공그래서 여배우들이 자신의 드레스를 택한 것보다 더 좋은 것은 고객들의 반응이었다. 연예인들이야 드레스를 입을 시상식이나 화려한 파티가 많지만 일반 여성들이 이브닝드레스에 반응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깨에 끈이 없는 튜브 톱 스타일을 문의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장 씨는 “한국에서도 파티 문화가 점점 대중화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더 많은 사람들이 옷을 즐겁게 입고, 사람들과 함께하는 파티 문화를 즐겼으면 하는 마음에 새해에는 드레스 라인을 더 늘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성의 몸이 아름다워 보이는 구조적인 디자인과 고급스러운 원단, 컬러와의 조화에 공을 들인다. 노란색 붉은색 물이 들어 있는 2013 봄여름 컬렉션을 미리 보니 화려한 색상과 어우러지는 둥근 모양의 어깨와 몸에 맞춘 듯한 라인이 눈에 띄었다. 그는 “딱 원하는 붉은색을 내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며 “사람들은 디자이너 옷이 비싸다고 하지만 한 벌 한 벌에 들인 공과 정성을 생각하면 그런 말 못할 것”이라고 웃었다.
세계 진출의 꿈
장 씨가 12년여 동안 이탈리아에서 일한 뒤 한국에 오자마자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디자인 외에 또 다른 요인이 있었다. 바로 CJ의 든든한 후원이다. CJ오쇼핑은 지난해 유망한 디자이너를 발굴해 육성하는 패션문화사업을 시작하면서 첫 후원자로 장 씨를 택했다. 2011년 장 씨와 스타일리스트 한혜연 씨가 만든 CJ오쇼핑 브랜드 ‘베이직엣지(Basic A+G)’가 한 시간에 6억 원대 주문을 받는 등 인기를 끈 바 있다.
장 씨의 가능성을 확인한 CJ오쇼핑은 홈쇼핑 판매 조건을 빼고 그의 디자이너 브랜드 드민 자체에 투자하기로 했다. 실력 있는 해외파 디자이너들이 자기 브랜드의 꿈을 안고 한국에 돌아왔다가 자금, 마케팅 등에 미숙해 자리를 못 잡고 다시 돌아가는 ‘인재 유출’을 막아보자는 취지였다.
장 씨는 “이탈리아의 유명 브랜드 곳곳에 한국인이 없는 곳이 없다. 디자인의 꼼꼼함에 반하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개인 디자이너가 해외에 진출하려면 자본, 마케팅 등 발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빨리 세계로 나가고 싶은 마음뿐”이라며 “새해에는 디자인에 더 집중해 세계 진출의 꿈을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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