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이한軍 증오비 자리에 ‘연꽃 웃음’ 피어나길

  • 동아일보

■ ‘국제연꽃마을’, 베트남서 한글학당 기공식

12일 베트남 꽝남 성 땀끼 시에서 열린 국제연꽃마을 한글학당 기공식에 초대된 땀끼 시 초등학생 공연단원들. 이날 기공식에서는 한국과 베트남 양국의 문화를 보여주는 축하공연이 이어졌다. 꽝남=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12일 베트남 꽝남 성 땀끼 시에서 열린 국제연꽃마을 한글학당 기공식에 초대된 땀끼 시 초등학생 공연단원들. 이날 기공식에서는 한국과 베트남 양국의 문화를 보여주는 축하공연이 이어졌다. 꽝남=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9일 오전 10시(현지 시간) 베트남 꽝남 성 땀끼 시 다오응우옌사 대법당에서는 국악인 김선영 씨가 부르는 구음(口音) 시나위가 울려 퍼졌다. 시나위는 죽은 사람의 원혼을 달래주는 무속 음악. 꽝남 성은 1960년부터 1975년까지 벌어진 베트남전쟁의 최대 격전지로 한국군이 참전했던 곳이다.

이날 불교계 사회복지법인 연꽃마을의 베트남 지원사업단인 국제연꽃마을은 베트남전쟁 때 목숨을 잃은 모든 이의 극락왕생을 비는 천도재를 봉행했다. 올해로 세 번째다. 향을 피우고 차를 올리며 절하는 이방인의 모습을 이곳 불교 신자들도 진지한 눈으로 바라봤다.

국제연꽃마을 회장인 각현 스님(67·사진)은 “국경을 초월해 전쟁으로 희생된 군인과 민간인 모두를 위한 천도재다. 특히 총칼의 대치 속에 이유 없이 목숨을 잃은 베트남 양민에게 용서를 구하고자 하는 의미가 가장 크다”고 말했다.

국제연꽃마을은 이 지역 청소년에게 해마다 500만 원의 장학금을 주고 전쟁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이들에게 안면 기형 수술과 의수족 보장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등 베트남 꽝남 성 일대에서 8년째 구호 활동을 하고 있다. 각현 스님이 베트남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2005년 일본 도쿄에서 우연히 만난 젊은 베트남인의 말 한마디가 계기가 됐다.

“그는 제게 ‘수많은 베트남 양민이 한국군에게 희생당했고, 한국인은 이를 절대로 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머리를 맞은 듯 아파왔지요. 실제로 꽝남 성 곳곳에 ‘한국군 증오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베트남인의 한을 풀어줘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후 소리 없이 베트남에서 해원(解寃) 활동을 이어오던 스님은 2010년 꽝남 성 땀끼 시로부터 복지시설을 짓는 조건으로 7만 m²(약 2만2000평)의 땅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곧바로 땀끼 시와 함께 한국어 교육기관인 한글학당과 직업훈련원, 연수원, 보육시설, 노인요양원, 병원, 재활시설 등으로 구성된 한국형 사회복지시설 건립을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12일 오전 10시 국제연꽃마을과 땀끼 시가 2년여 동안 준비해온 한국형 사회복지시설의 시작을 알리는 한글학당 기공식이 열렸다. 이 지역에 사는 베트남인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식전, 식후 행사로 한국과 베트남의 문화를 보여주는 축하 공연이 이어졌다. 1980년대 한국의 흥겨운 마을 축제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앞으로 10년간 약 100억 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대형 프로젝트로, 자금은 자발적인 후원금을 기반으로 하면서 한국과 베트남의 기업 협찬을 통해 조달할 예정이다. 각현 스님은 “배고픈 설움을 딛고 성장한 우리 국민이 이제 베트남 국민에게 준 상처를 어루만지고 그들의 손을 잡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진정한 해원의 길”이라며 “많은 이들이 이 사업을 포함해 베트남 돕기에 관심을 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의 02-730-5534, 후원계좌 국민은행 349401-04-017337(예금주 국제연꽃마을)

꽝남=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연꽃마을#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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