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장편 ‘지옥설계도’ 펴낸 게임하는 소설가 이인화, 이야기 프로그램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다
동아일보
입력 2012-11-14 03:002012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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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인화. 해냄출판사 제공
정보통신 기술이 인간의 복잡한 사고(思考)를 대신해주는 세상. 그렇다면 이야기를 창작해내는 프로그램도 가능하지 않을까.
소설가 이인화(본명 류철균·46)가 8년 만에 새 장편 ‘지옥설계도’(해냄·사진)를 펴냈다. 13일 서울 정동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화제는 소설이 아니라 ‘스토리헬퍼’라는 디지털 스토리텔링 저작도구였다. 그는 이 프로그램을 이용해 소설을 썼으며, 내년 3월 무료로 일반에 공개한다고 발표했다. 스토리헬퍼는 머릿속에 든 온갖 분절된 아이디어를 입력하면 요술 상자처럼 일관된 줄거리를 뚝딱 만들어 낸다.
장르 인물 상황 행동 등에 관한 29가지 객관식 질문에 답을 입력하면, 이것들이 엮여 A4용지 한 장 분량의 줄거리가 나온다. 이용하기는 간단하지만 소프트웨어 제작은 쉽지 않았다.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인 작가는 2003년부터 2300편이 넘는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분석해 대표 스토리 모티브(상황) 205개를 마련했고 이것의 조합으로 이야기 데이터베이스 3만4000여 개를 정리했다.
특이한 점 하나는 쓰고자 하는 글의 기본 정보를 입력하면 기존 작품들과의 유사성을 백분율로 알려준다는 것. 작가는 “영화 ‘광해’의 정보를 입력했더니 (표절 논란을 빚은) 영화 ‘데이브’와 75% 비슷했다. 하지만 영화 ‘아바타’와 ‘늑대와 춤을’의 유사성은 87%였다”며 “서사의 패턴은 한정돼 있다. 결국 독특한 캐릭터 창출, 사회와 인간에 대한 작가의 독창적인 통찰이 작품을 새롭게 만드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스토리헬퍼를 통해 바로 책을 출간할 수는 없다. 이 프로그램이 뱉어내는 것은 현재로서는 A4용지 한 장의 줄거리이다. 하지만 기존 작품들의 ‘패턴’과 유사성을 점검해가며 대중적 혹은 독창적인 글쓰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작가는 ‘지옥설계도’에선 독창성을 선택했다고 했다. 세상의 어떤 이야기와도 유사성이 55% 이하라는 것. 그만큼 신선하고 독자의 예상을 깨는 반전이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소설은 첨단과학기술을 통해 뇌지능이 현격히 높아진 ‘강화인간’들이 실업과 자원 고갈이라는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력화하고, 헤게모니를 뺏길 것을 우려한 미국, 중국이 강화인간과 충돌한다는 줄거리다. 작가에 따르면 최면과 현실세계가 엇갈리는 ‘스릴러+판타지+공상과학+추리물’이다.
작가는 ‘리니지’를 비롯한 온라인게임의 고수. 42시간 동안 쉬지 않고 게임을 하다 병원에 실려 간 적도, ‘불마법’을 피하려고 ‘광클’(미친 듯이 마우스를 클릭)을 하다 오른쪽 팔꿈치 인대가 찢어지기도 했다. 요즘엔 바빠서 하루 3시간만 마우스를 잡는다고 한다. 그는 게임을 통해 소설의 모티브를 얻었고, 같이 게임하는 ‘동생’들을 생각하며 글을 썼다고 덧붙였다. 이번 소설을 원작으로 한 웹 전략 게임 ‘인페르노 나인’이 23일 알파테스트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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