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뮤지컬 史風이 휩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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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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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관객 겨냥한 판타지 사극 열풍 불어
소극장에 맞춰 엄숙주의 벗고 젊은코드로

‘난중일기’에 누락된 비화라는 설정으로 성웅 이순신을 코믹하게 풀어낸 뮤지컬 ‘영웅을 기다리며’. 2009년 초연작을 라이브 뮤직과 화려한 무대로 업그레이드해 대학로 소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파파프로덕션 제공
‘난중일기’에 누락된 비화라는 설정으로 성웅 이순신을 코믹하게 풀어낸 뮤지컬 ‘영웅을 기다리며’. 2009년 초연작을 라이브 뮤직과 화려한 무대로 업그레이드해 대학로 소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파파프로덕션 제공
올해 창작 뮤지컬계에 사극 바람이 거세다.

신라시대 남자 기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풍월주’, 조선 세종대왕과 장영실의 이야기를 다룬 ‘천상시계’, 신라시대 승려인 원효와 의상을 다룬 ‘쌍화별곡’ 3편이 이미 공연됐다. 서동요를 소재로 한 ‘밀당의 탄생’도 음악극을 표방했지만 뮤지컬에 가깝다. 여기에 이순신을 코믹하게 그린 ‘영웅을 기다리며’, 개성 강한 다섯 화랑의 성장기인 ‘화랑’, 독특한 스타일의 ‘왕세자 실종사건’이 최근 재공연에 들어갔다. 26일 개막하는 ‘삼천―망국의 꽃’은 백제 말기 의자왕과 궁녀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뮤지컬계 사극 열풍이 처음은 아니다. 2006년에도 거세게 불었다. 당시 영화 ‘왕의 남자’ 흥행에 힘입어 원작 희곡인 ‘이’가 뮤지컬로 극화됐고, 이윤택 연출로 정조대왕을 다룬 ‘화성에서 꿈꾸다’, 조선시대 기생 황진이의 삶을 다룬 ‘황진이’, 동명 드라마(2003년)를 원작으로 한 ‘대장금’이 속속 선보였다. 고구려를 무대로 한 동명 만화 원작의 ‘바람의 나라’가 뮤지컬로 제작돼 공연을 시작한 것도 이해였다.

그러나 올해 부는 사극 뮤지컬 열풍은 2006년과 성격이 많이 다르다. 예전 사극 뮤지컬들이 주로 대극장용으로 제작됐고 공연 기간도 짧았던 반면 요즘은 소극장용으로 제작해 장기 공연을 통해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공연장 크기가 줄어든 만큼 내용도 과거 사극의 엄숙주의를 걷어내 발랄한 상상력, 젊은 코드로 승부하고 있다.

올 5월 대학로의 소극장에서 개막한 ‘풍월주’는 평단의 혹평에도 여성 관객의 지지를 얻어 공연 기간을 연장하면서 8월 초까지 공연했다. 26일 개막하는 ‘삼천…’도 대학로 소극장인 문화공간 필링1관에서 내년 1월 말까지 무대에 올리게 돼 공연기간이 3개월에 이른다.

‘영웅을…’은 PMC대학로자유극장에서 8월 7일부터 3개월 가까이 공연 중이고 ‘화랑’은 9월부터 대학로에서 무기한 공연에 들어갔다. 2010년 두산아트센터와 2011년 경희궁 숭정전에서 채 3주가 못 되는 기간 동안 공연했던 ‘왕세자실종사건’도 올해 대학로 소극장(아트원씨어터 1관)을 잡아 석 달 가까운 일정으로 공연 중이다.

뮤지컬전문지 ‘더 뮤지컬’의 박병성 편집장은 “과거 사극 뮤지컬이 역사적 사실에 진지하게 접근하면서 시각적 스펙터클에 승부를 걸었다면 요즘 젊은 작가와 연출가들은 역사적 사실에 구애받지 않고 젊은 세대의 취향에 맞춰 만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뮤지컬 주요 관객인 여성 팬심(心)을 겨냥한 기획 상품의 성격도 짙다. 그러다 보니 역사적 고증이나 리얼리티는 뒷전이 되기 일쑤다. 그래서 ‘사극의 탈을 쓴 로맨틱 코미디’, ‘가짜 사극’이란 비판도 나온다.

2009년 초연한 이후 올해 700회 공연을 돌파한 ‘화랑’은 꽃미남 배우 5명을 내세웠고 한 배우는 머리를 원색으로 염색하고 의상도 현대적이다. 젊은 남자 배우들을 내세우고 연애 코드를 집어넣은 ‘풍월주’와 ‘쌍화별곡’도 닮은꼴이다. 특히 ‘쌍화별곡’의 두 주인공은 승려인데 장발의 곱슬머리로 등장했다. 인터넷 예매사이트 인터파크에 따르면 이들 세 작품의 여성 예매자 비율은 95%가 넘는다.

그렇다면 왜 굳이 사극일까. 음악극 ‘밀당의 탄생’에 이어 ‘삼천…’을 쓰고 연출한 서윤미 씨는 “사극이란 결국 옛이야기를 빌려 지금 이야기를 돌려서 하는 것인데, 먼 시대일수록 말과 의상도 색다르기 때문에 판타지적 요소를 입히기 더 쉽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뮤지컬#사극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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