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으로 독재항거 두 문인 경주에서 뜨거운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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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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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 올림픽’ 국제펜대회 24년 만에 한국서 개최

10일 경북 경주시 현대호텔 컨벤션홀에서 열린 제78회 국제 펜(PEN)대회에서 만난 나이지리아 작가 월레 소잉카(왼쪽)와 탈북시인 장진성. 경주=황인찬 기자 hic@donga.com
10일 경북 경주시 현대호텔 컨벤션홀에서 열린 제78회 국제 펜(PEN)대회에서 만난 나이지리아 작가 월레 소잉카(왼쪽)와 탈북시인 장진성. 경주=황인찬 기자 hic@donga.com
1970년과 1988년에 이어 24년 만에 한국에서 열린 제78회 국제 펜(PEN)대회. 10일 경북 경주시 현대호텔 컨벤션홀에서 개최된 이 ‘문학 올림픽’의 개회식을 앞두고 참가자들이 북적이던 대기실에서는 감동적인 재회가 이뤄졌다. 198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나이지리아의 월레 소잉카(78)가 시집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를 쓴 탈북시인 장진성을 알아보고 뜨겁게 포옹했다. 주위의 시선은 일제히 두 사람에게 쏠렸다.

두 시인의 각별한 인연은 3년 전 시작됐다. 당시 한국을 방문한 소잉카는 장 시인의 작품을 읽고 “만나보고 싶다”며 한국 문인 단체에 장 시인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본디 남북문제와 탈북 문인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 한국에서 열린 세계평화시인대회에 참석해 금강산을 다녀온 그는 “북한 시인들이 참석하지 못해 아쉽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쉽게도 당시 첫 만남을 이루지 못한 두 사람은 올해 6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시 축제 ‘더 포이트리 파르나소스’에서 비로소 만날 수 있었다. 소잉카는 장 시인에게 “3년 하고도 6시간을 기다렸다”며 환하게 웃었다. ‘6시간’이란 3년 전 소잉카가 장 시인을 만나려고 일정을 늦추며 호텔에서 기다린 시간을 뜻한다. 두 시인은 호텔에서 맥주를 마시며 나이지리아와 북한 인권, 그리고 문학에 대해 밤늦도록 얘기를 나눴다. 당시 소잉카는 “북한은 인권 등이 매우 안 좋은 나라”라며 장 시인이 들려주는 북한 생활상에 귀를 기울였다고 한다.

런던에서 헤어진 뒤 3개월여 만인 이날 경주에서 장 시인과 재회한 소잉카는 “다시 만나게 돼 반갑다”고 말했고, 장 시인은 “한국에서 뵈니 더 반갑다”고 화답했다.

국적과 세대 차이를 뛰어넘은 두 시인이지만 자유와 인권을 위해 독재정권에 항거했으며 이를 문학으로 승화해 널리 알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소잉카는 1965년 나이지리아 선거 부정을 비판하는 내용의 방송을 한 혐의로 체포됐고, 1967년 내전 발발 당시 투옥됐다. 사니 아바차 군사정권은 소잉카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2004년 탈북한 장 시인은 미국과 일본에서 시집 ‘내 딸을…’을 출간해 북한의 인권 탄압 실상을 알렸다. 미국에 망명했던 소잉카는 민간 정권이 들어선 1999년 그리운 조국으로 돌아갔지만 장 시인은 아직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문학, 미디어 그리고 인권’을 주제로 열린 이번 경주 펜대회에는 86개국 문인 212명이 방한했고, 국내 문인 700여 명이 참가했다. 소잉카는 개막식 기조강연에서 “권력은 구속을 좋아하지만 창조성은 구속의 반대말”이라며 “변화를 추구하는 지성(知性)에서 나오는 더욱 광범위하고 훨씬 원초적인 도전은 (권력에) 얼마나 위협적일까. 나는 창조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의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는 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디어의 이미지나 간단한 정보와는 반대로 문학은 시간과 문화를 융화하며 인간 생활을 초월하는 것을 창조한다.”

15일까지 열리는 펜대회에서는 시낭송 대회, 사인회, 뮤지컬 ‘요덕스토리’ 공연 등이 열린다. 14일 총회에서는 탈북 문인 28명으로 구성된 ‘망명 북한작가 펜센터(North Korean Writers in Exile PEN Center)’ 가입 승인안에 대한 표결이 진행된다. 국제펜에는 114개국 143개 센터가 가입돼 있으며, 북한 펜클럽이 가입하면 144개 센터로 늘어난다.

경주=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문학 올림픽#국제펜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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