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45세 발레리나, 눈물도 빛났다

  • 동아일보

■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강수진의 ‘까멜리아 레이디’ ★★★★☆

‘까멜리아 레이디’에서 여주인공 마르그리트역을 맡은 강수진(오른쪽)의 연기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고 감정표현도 선명해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아르망 역의 마레인 라
데마케르의 연기는 상대적으로 그 빛에 가렸다. 크레디아 제공
‘까멜리아 레이디’에서 여주인공 마르그리트역을 맡은 강수진(오른쪽)의 연기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고 감정표현도 선명해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아르망 역의 마레인 라 데마케르의 연기는 상대적으로 그 빛에 가렸다. 크레디아 제공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주역 무용수 강수진이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 4년 만에 국내 무대에 선보인 전막발레 ‘까멜리아 레이디’는 올해 45세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강수진의 발레가 여전히 정점에 머물고 있음을 보여줬다. 발레 테크닉은 춤 자체에 완전히 녹아들었고, 강수진의 강점인 표현력은 나이와 함께 더욱 깊어진 느낌이었다.

15일부터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3회 공연한 이 작품의 17일 마지막 공연에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또 다른 주역 무용수로 활동하는 강효정도 함께 출연했다. 10년 전 이 작품의 첫 내한공연 때와 가장 큰 차별점이다. 강효정은 주인공 마르그리트가 좋아하는 발레 ‘마농’의 주인공으로 나왔다. 마농은 극중극의 주인공이며 마르그리트가 심리적으로 동일시하는, 비중 있는 역할이다.

하지만 까멜리아 레이디는 단연 강수진을 위한 작품이었다. 강수진이 1999년 이 작품으로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꼽히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여자 무용수상을 받은 사실에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이날 공연에서 강수진은 유독 빛났다.

그건 한편으로 이 작품이 ‘백조의 호수’ 같은 고전 발레가 아니라 극적인 성격이 강화된 드라마 발레이기 때문이다. 1960, 70년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을 이끈 존 크랭코와 영국 로열발레단을 이끈 케네스 맥밀런이 확립한 드라마 발레는 화려한 발레의 춤 기술보다 극적인 흐름을 우선시한다.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소설 ‘춘희’를 원작으로 1978년 까멜리아 레이디를 안무한 존 노이마이어 또한 드라마 발레의 대표적인 안무가다. 강수진의 대표작으로 이 작품과 함께 크랭코 안무의 ‘로미오와 줄리엣’ ‘오네긴’이 꼽히는 것도 바로 강수진의 강점이 드라마 발레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흑진주처럼 짙은 머리칼에 나이가 들고 얼굴이 마르면서 이목구비가 더욱 뚜렷해진 얼굴은 강수진의 섬세한 표정 연기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마르그리트는 프랑스 파리 사교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쿠르티잔’(귀족 사교계의 공식적인 정부)으로 자신을 흠모하는 귀족의 자제 아르망과 사랑에 빠지지만 그의 장래를 위해 억지 이별을 한 뒤 실연의 고통과 폐병으로 쓸쓸히 죽는 비극적인 여인이다. 3막으로 이뤄진 이 작품에서 마르그리트는 행복, 기쁨, 깊은 만족감, 절망과 고통, 슬픔, 모멸감 등 다양한 감정을 교차하며 표현한다.

강수진은 다양한 감정을 때로는 격정적인 팔다리의 놀림으로도 충분하게 표현하지만 뒤로 한껏 젖힌 목선이나, 다른 여성과 춤추는 아르망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만으로도 기쁨이나 쓸쓸함의 감정을 명징하게 표현해냈다. 쇼팽의 서정적 피아노곡을 발췌해 사용한 이 작품의 백미는 그 감정선을 극적인 춤사위로 녹여내는 3막이었다. 얼마나 캐릭터에 몰입했던지 3막 후반부에서 강수진의 눈이 실제로 촉촉하게 젖었음을 먼 객석에서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런 몰입이 관객의 마음까지 움직일 수 있는 힘이었다.

2002년 내한공연 때 3막에 잠깐 출연했다가 2006년부터 주역 무용수가 된 마레인 라데마케르는 자주 강수진과 파트너로 무대에 선 만큼 물 흐르는 듯한 호흡을 보여줬다. 극 중 혈기 넘치고 한편으론 철없어 보이는 아르망을 잘 연기했다.

강효정은 테크닉 면에서는 안정되고 흠잡을 데가 없었지만 입체적인 캐릭터를 구축하거나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서 아직 강수진의 경지에 이르진 못해 보였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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