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현대무용계에서 벨기에는 강국이다. 유럽의 작은 나라지만 1990년대부터 ‘벨기에 웨이브’로 지칭되는 일군의 무용가가 등장하면서 세계 무용계를 선도하는 국가가 됐다. 국내 정상급 무용가의 독무로 꾸미고 한국공연예술센터(HanPAC·한팩)가 주최하는 올해 ‘한팩 솔로이스트’(8∼16일·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선 한국판 ‘벨기에 웨이브’를 체감할 수 있다.
무대에 서는 한국 무용수 8명 중 3명이 벨기에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유럽 진출 1세대 현대무용수로 꼽히는 예효승 씨(38·세드라베 무용단), 김설진 씨(31·피핑톰 무용단), 이은경 씨(29·프리랜서)가 이번 국내 무대에서 각각 작품을 선보인다. 이들이 본 벨기에 무용의 저력은 무엇이고, 한국 현대무용의 모습은 어떨까. 예 씨와 김 씨 두 사람은 직접, 이 씨는 전화로 만나봤다.
국내에서 10년 정도 활동한 뒤 해외에 진출해 2005년 벨기에 세드라베 단원이 된 예 씨는 벨기에에서 현대무용이 발전한 이유를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유럽 문화 강국에 비하면 내세울 게 많지 않은 탓에 현대무용을 집중 지원하며 육성한 결과”라고 설명하며 그 결과 여건이나 환경이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다고 말했다. 그는 한 예로 든든한 재정적 뒷받침을 들었다.
“벨기에 무용단의 단원들은 대부분 월급을 받습니다. 국내 현대무용단은 월급을 못 줍니다. 그러니 단원들이 낮에는 대학 강사, 안무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립니다. 벨기에에선 다른 일을 할 필요가 없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작품 준비에 집중할 수 있죠.”(예효승)
작품 제작 환경도 다를 수밖에 없다. 벨기에에선 새 작품을 내놓는 데 보통 5∼8개월이 걸린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을 2, 3년간 수백 차례 공연하며 보완하고 다듬는다. 김 씨는 “피핑톰에 입단해 지금까지 4년 동안 단 두 작품에 출연했지만 1년에 평균 100회 정도 공연한다”고 말했다. 반면 국내에서는 연간 10회 정도 무대에 섰다. 새로운 작품으로 공연하는 횟수는 많아야 4회 정도다.
“국내에도 좋은 작품은 나옵니다. 그런데 시장이 작다보니 이어지질 못하고 묻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2007년에 ‘깊이에의 강요’라는 작품을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4회 공연한 적이 있어요. 반응이 좋아 좀 팔아볼까 고민 중이었는데, 무용계 선배가 ‘이제 또 새로운 작품 만들어야지’라고 해서 힘이 빠졌던 기억이 납니다.”(김설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을 졸업한 뒤 벨기에 브뤼셀의 P.A.R.T.S 무용학교에서 공부한 이 씨는 한국 현대무용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국내 교육은 현대무용의 이해를 돕기보다는 무용의 테크닉을 가르치는 데 집중합니다. 하지만 현대무용은 테크닉이 아니라 콘셉트가 더 중요해요. 좋은 작품이 나오기 힘들죠.” 세 사람 모두 입을 모아 지적한 부분이기도 하다.
예 씨는 ‘벨기에의 피나 바우슈’로 불리는 알랭 플라텔과 함께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는 ‘발자국’을 선보인다. 김 씨는 피핑톰 예술감독 가브리엘라 카리소의 안무로 ‘아빠’라는 작품에서 생후 14개월 된 딸과 함께 무대에 선다. 이 씨는 피터 암프, 로버트 스테인이 안무한 ‘나쁘지 않은 기억들’을 선보인다. 2만∼5만 원. 02-3668-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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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부터 최근까지 유럽 무용계의 주도 세력으로 부상한 벨기에 무용을 일컫는 표현. 얀 파브르, 시디 라르비 셰르카위, 알랭 플라텔 등의 안무가로 대표되며 파격적 몸짓, 건축과 영상, 오페라 등 타 장르와의 크로스오버,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다른 문화의 적극적인 수용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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