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 동아일보 컬처] 이지현의 아주 쉬운 예술이야기 뭉크 ‘절규’가 1천3백억원에 팔린 이유!
입력 2012-05-25 10:422012년 5월 25일 10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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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뭉크 ‘절규’ (1893년, 마분지에 유채, 91x73.5㎝, 오슬로국립미술관)
불안과 공포 드러낸 마력의 그림
얼마 전 뉴욕 소더비 미술품 경매에서 뭉크의 ‘절규’가 1억 2천만 달러에 낙찰돼 화제를 모았습니다. 우리 돈으로는 1천3백55억 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액수입니다. 미술관도 지을 수 있을 정도의 가치이지요. 그렇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에 매료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 번 보면 강한 잔상을 남기는 마력의 그림. 근원을 알 수 없는 불안과 공포를 이처럼 잘 드러낸 그림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시뻘건 하늘, 아슬아슬해 보이는 다리. 이 모든 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겁에 질려 공포를 느끼는 한 사람. 이 그림에서는 색채와 형태, 감정 모두 비명을 질러대는 것 같습니다. 양손으로 귀를 막고 절규하고 있는 인물의 표정에서 가족의 잇따른 죽음으로 고통 받고 신경쇠약을 앓았던 뭉크의 내면도 보입니다. 실제 뭉크는 다섯 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그의 누나 소피도 열네 살 때 결핵으로 사망했습니다. 예민한 뭉크에게 이런 가족사는 무의식적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갖게 한 원인이 되었죠. 두려우면서도 보고 싶은 묘한 심리
그런데, 뭉크가 이 작품을 제작하기 전 쓴 일기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길을 걷고 있었는데 거리와 피오르드(협만)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쪽으로 태양이 지고 있었다. 하늘이 돌연 피처럼 붉게 물들었다. 나는 초조해져서 난간에 기댔으며, 칼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처럼 검푸른 피오르드와 불타는 듯한 구름을 보았다. 자연의 날카로운 절규가 대기를 갈기갈기 찢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림 속 인물의 절규는 대기를 찢는 것 같은 자연을 대변하고 있는 것일까요? 놀랍게도 피처럼 붉은 하늘은 심정적인 것 뿐 아니라 실제 색깔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당시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 섬에 근대 역사상 최대 규모의 화산이 폭발했는데, 화산재가 날아와 유럽과 미국의 하늘을 붉게 만든 것이지요. 비정상적인 자연의 색감이 인간 내면의 불안감과 공포를 수면 위로 드러내게 한 것입니다. 공포스럽고 잔인한 장면을 손으로 가리면서도 보고 싶어 하는 심리처럼, 이 그림이 자꾸자꾸 보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그림 속 인물처럼 강박증과 죽음에 대한 공포로 늘 불안해했던 뭉크가 실제로는 80이 넘도록 살았으니 이것도 참 아이러니하지 않습니까? 글·이지현(‘예술에 주술을 걸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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