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아내들 “남편 속옷 며칠 입는 건 봐줘도, TV 보며 잠드는 건 못 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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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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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습관과 부부만족도

집에서 딱히 할 일이 없다. 아내와 할 말도 없다. 그래서 TV를 보다 잠이 든다. 남편들이여, 제발 이러지만은 말자. 동아일보DB
집에서 딱히 할 일이 없다. 아내와 할 말도 없다. 그래서 TV를 보다 잠이 든다. 남편들이여, 제발 이러지만은 말자. 동아일보DB
#1 리모컨이 거실 바닥과 부딪혀 내는 날카로운 마찰음에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올린다. 야근 때문에 놓친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 하이라이트를 보기 위해 켜놓았던 TV는 꺼져 있다. 아내와 눈이 마주친다. “들어가서 자.” 아내가 심드렁하게 말한다. “요새 왜 이렇게 피곤하지…. TV는 자기가 껐어?” 억지로 몸을 일으켜 침대로 향하며 아내에게 물었다. 대답 대신 등 뒤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발은 씻었지?” “응.” (A 씨·49)

#2 여름이야 그렇다 치자. 그런데 왜 한겨울에도 매일 속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걸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물 낭비에, 세제 낭비다. 우리나라의 물빈곤지수(WPI)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29개국 중 20위라고 하던데, 이렇게 불필요한 빨랫감을 쏟아내면서 물을 낭비해도 되는 것인가. 하지만 아내는 또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속옷 이걸로 꼭 갈아입어!” 서랍에서 꺼낸 속옷 하나를 침대 위에 던져놓고는 방문을 ‘쾅’ 닫고 나간다. 이제 겨우 이틀 입었는데…. (B 씨·37)

여기서 문제 하나. 누가 더 아내를 ‘불행’하게 만드는 나쁜 남편일까. 속옷을 이틀 이상 입는 사람일까, 아니면 TV를 켜놓고 잠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일까.

○ 모두를 슬프게 하는 TV

정답은 A 씨다. 남편이 TV를 켜놓고 잠드는 것을 좋아하면 할수록, 아내의 결혼생활 만족도는 낮아진다. 현재 함께 살고 있는 부부 500쌍에게 물어본 결과다. 생활습관과 관련한 총 20개의 문항에 대해 ‘매우 그렇지 못하다(1점)’에서부터 ‘매우 그렇다(7점)’로 답하게 한 후, 그 결과를 부부들의 결혼생활 만족도와 함께 살펴봤다.

“TV를 보다 잠드는 게 왜 싫은 거예요? 나이가 들면 여자들도 TV 보다 많이 잠들잖아요.”

A 씨가 이해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당연한 결과라는 것. 채규만 성신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남편이 TV를 켜놓고 잠든다는 사실 자체가 아내와 상호작용을 별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만큼 아내는 소외감을 느끼고, 당연히 결혼생활 만족도도 떨어진다”라고 설명했다.

재미있는 것은 TV를 켜놓고 잠드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들도 자신의 결혼생활에 대해 그다지 만족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해당 문항에서 남편이 TV를 켜놓고 자는 정도가 더 높은 104쌍(상위 20%)에서 남편들의 결혼생활 만족도(65.27점)는 전체 남편들의 만족도(69점)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흥미롭게도 부인이 TV를 켜놓고 자는 정도가 더 높은 84쌍(상위 20%)의 경우 그런 행동이 결혼생활 만족도에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우영 충남대 교수(심리학)는 “잠들 때까지 TV를 끄지 못한다는 것은 TV를 자신과 중요한 상호작용을 하는 대상으로 인식한다는 뜻”이라며 “현실에서 행복감을 줄 만한 대상이나 활동이 마땅히 없으면 TV에 몰입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런 사람들은 대인관계 등 삶의 기본적인 측면에서 만족하지 못해 외로움을 느끼거나, 결혼생활에서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 의외로 넓은 아내들의 이해심

그러면 B 씨의 아내는 어떨까. 남편이 이틀 이상 속옷을 입는다면 아내의 결혼생활 만족도가 낮아질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속옷 문제는 아내의 결혼 만족도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남편이 물을 아끼겠다는 ‘신념’을 지키고 싶다면, 소신 있게 밀어붙여도 ‘대세’에는 큰 지장이 없다는 말이다.

아내들의 이해심은 의외로 넓다. 남편이 매일 샤워를 하지 않아도, 가족들 앞에서 편하게 코를 후비고 트림을 해도, 자유롭게 방귀를 뀌어도 아내의 결혼생활 만족도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다. 청결과 관련한 문항들에 대해선 그 어떤 것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물론 그때 그때 아내의 잔소리가 시끄럽게 귓가에 울려 퍼지긴 한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내의 잔소리는 ‘부부생활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나 ‘결혼생활에 문제가 많다’는 생각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는다.

권정혜 고려대 교수(심리학)는 “평소에 아내들은 남편의 청결에 대해 불만을 많이 늘어놓는다. 따라서 청결 문제가 부부 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처럼 보이지만, 조사 결과를 보면 실제로 중요한 영향을 주는 요소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부부가 함께 살다 보면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부분이 있고,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해 핵심적인 갈등으로 남아있는 부분도 있다. ‘포기’인지 ‘이해’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청결과 관련된 사항은 결국 받아들이는 아내들이 더 많은 듯하다.

“결혼한 지 며칠 만에 남편이 제 앞에서 자연스럽게 방귀를 뀌더라고요. 처음에는 깜짝 놀랐는데, 몇 번 그런 일이 반복되니까 오히려 편하더라고요. 저도 그냥 남편 앞에서 뀌고(웃음). 아직까지 잘 안 씻으려고 해서 속을 썩이긴 하지만, 이제는 그냥 그런가 싶어요.”

결혼 30년이 넘은 이모 씨(56·여)가 말했다.

아내를 ‘불행’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면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식탁 위에 놓이는 반찬의 가짓수. 남편이 다양한 반찬을 많이 차려놓고 먹는 것을 좋아할수록, 아내의 결혼생활 만족도는 낮아진다. 해당 문항에서 남편의 다양한 반찬 선호가 더 컸던 134쌍(상위 25%)에 속한 아내의 결혼생활 만족도는 63.08점으로, 전체 아내들의 만족도 65.22점보다 낮게 나타났다.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은 의외로 쉽다. 치약을 끝까지 짜서 쓰면 된다. 남편이 치약을 끝까지 짜서 쓸수록(알뜰하고 세심할수록), 아내의 결혼생활 만족도는 상승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혹시나 매일 속옷을 갈아입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독자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하나 더. ‘나는 속옷을 이틀 이상 입는다’에 대해 ‘매우 그렇다(7점)’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 응답자(남녀 각 500명) 중 남자와 여자 각각 22명이었다. ‘보통이다(4점)’보다 높은 5∼6점이라고 응답한 남자는 161명, 여자는 143명이었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결혼만족도#생활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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