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여기도 쏙, 저기도 쏙, 쏙 때문이야!…선재도 ‘바지락 실종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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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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쏙 군단 대습격, 속 타는 선재도바지락 명산지 서해 갯마을에 무슨 일이

쏙은 그동안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던 생물이었다. 깊은 구멍 속에 몸을 숨겨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그런 쏙이 누구에게 피해를 줄 거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바지락 어장을 황폐화시키고 나서야 쏙에게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해적 생물’이라면서 뒤늦게 욕을 해보지만 거대한 자연의 변화 앞에 사람들은 무력하기만 하다. 선재도=김미옥 기자salt@donga.com
쏙은 그동안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던 생물이었다. 깊은 구멍 속에 몸을 숨겨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그런 쏙이 누구에게 피해를 줄 거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바지락 어장을 황폐화시키고 나서야 쏙에게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해적 생물’이라면서 뒤늦게 욕을 해보지만 거대한 자연의 변화 앞에 사람들은 무력하기만 하다. 선재도=김미옥 기자salt@donga.com
여기도 쏙, 저기도 쏙. 이리 봐도 쏙, 저리 봐도 쏙이다. 그야말로 쏙 천지다. 어민들은 빠른 손놀림으로 쏙을 주워 담는다. 말이 줍는 것이지 거의 쓸어 담는 수준이다. 그런데 기뻐하기는커녕 어민들의 표정이 심상찮다. 갯벌처럼 얼굴빛이 어두운 게 금방이라도 소주 한잔 걸칠 모양이다. 쏙이 바가지를 채우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표정은 점점 일그러진다.

“이게 이렇게까지 널렸는데 바지락이 무슨 수로 살겠습니까. 올해도 망했습니다.”

서해 갯벌에 깔리는 어부의 낙담이 한없이 무겁다.

○ 쏙의 습격

인천 옹진군 영흥면의 작은 섬 선재도. 대부도와 영흥도 사이에 낀 2km² 넓이의 이 섬에는 고작 478가구, 1030명(2월 말 기준)이 살고 있다. 선재어촌계 소속은 이 중 절반 정도인 270가구다. 섬은 작지만 선재도 주민들은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바지락 때문이었다. 1926년 바지락 생산허가권을 딴 이곳은 전국 2, 3위를 다투는 바지락 생산지였다. 가구별 생산량은 단연 1위. 바지락으로 벌어들인 소득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한 해 20억 원이 넘었다. 2000년대 들어 전체 매출액이 절반 정도로 줄긴 했지만, 선재도 주민들은 최근까지도 바지락으로 가구당 400만∼500만 원은 거뜬히 벌어들였다.

그런데 그놈의 쏙이 나타나면서 모든 걸 망쳐버렸다.

첫 경고음이 나온 건 2008년 5월이었다. 정체 모를 구멍들이 갯벌을 뒤덮었다. 종패(種貝·씨를 받기 위해 기르는 조개)가 한창 앉을 시점이었기에 ‘평소보다 바지락이 더 많이 들어왔나 보다’ 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구멍들의 크기가 바지락 숨구멍보다 훨씬 컸다. 구멍의 주인은 다름 아닌 쏙이었다. 쏙은 선재도에도 예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어장 바깥에만 살아 별다른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새로 나타난 쏙은 원래 있던 놈들과 약간 다른 점이 있는 듯했지만, 어민들은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어민들은 기존의 쏙을 크기가 크다 하여 ‘왕쏙’, 최근 바지락 어장에 나타난 종 중에서 크기가 작은 것을 ‘좀쏙’, 껍질이 푸른 것을 ‘청쏙’이라 부른다.) 녀석들이 어장을 침범한 뒤에도 그냥 갯벌이 비옥해 그러려니 하면서 걱정을 미뤘다. 쏙은 주로 밤에 활동을 하고 낮에는 깊은 구멍 안에 들어가 사람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그런데 쏙이 뚫어놓은 구멍 수가 날이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언제부터인가는 갯벌이 마치 연탄 수만 장을 깔아놓은 것처럼 변했다. 어민들도 조금씩 쏙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지난해 3월이었다. 갯벌에서 바지락이 없어졌다. 이리 파보고 저리 파보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보통 3월 하순부터 10월 말까지가 바지락을 캐는 시기인데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일부 어장의 문제가 아니었다. 선재도 주변의 어장 300ha에서 바지락은 거의 전멸했다. 비(非)허가권 지역도 예외가 아니었다.

선재어촌계는 2009년 바지락 618t을 캐 11억7000만 원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37t 생산에 고작 8000만 원 매출이 전부였다. 바지락을 캔 날이 1년을 통틀어 엿새뿐이었다. 이영수 선재어촌계장은 “선재바지락이 워낙 유명해 매년 도매상인들을 대상으로 공개입찰을 했었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계약물량의 10분의 1도 맞춰주지 못하는 바람에 난리가 났었다”면서 “상인들이 자연재해라고 이해해 줬기에 무마가 됐지, 엄청난 위약금을 물 뻔했다”며 혀를 찼다. 올해도 사정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바지락이 떠난 자리에는 더 많은 쏙들이 들어찼다. 사실상 쏙이 바지락을 몰아낸 셈이다. 우리나라에는 쏙에 대해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문헌상 보고된 것도 ‘쏙(Mud shrimp)’과 ‘쏙붙이(Ghost shrimp)’ 2종이 전부다. 쏙의 종류가 모두 몇 가지이며, 그들이 주로 어디에 서식하는지에 대한 연구도 현재로선 되어 있는 게 거의 없다. 반면 일본에서는 현재까지 쏙 종류만 12가지가 확인됐다. 전 세계적으로는 100종이 넘는 쏙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선재도보다 1년 앞서 바지락 실종사건이 일어난 곳이 있다. 전국 최대의 바지락 생산지였던 충남 보령시 주교면이다. 국내 종패 공급량의 25∼30%를 차지했던 이곳에도 쏙이 출몰하면서 바지락 생산량이 반 토막이 났다.(2009년 1734t→2010년 934t) 그나마 종패 가격이 올라 매출액(21억5000만 원)을 전년도(26억 원)의 80% 수준으로 지켜낸 게 다행이었다. 급기야 2011년 주교어촌계에서 캔 바지락은 겨우 88t, 계원 600가구가 가져간 돈은 2억7000만 원(가구당 평균 45만 원)에 불과했다.

○ 어부의 반격

쏙이 왜 갑자기 많아졌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답을 갖고 있지 않다. 어민들도, 심지어 수산전문가들도 추측만 할 뿐이다. 의심 가는 대목은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온난화 등 기후변화. 수년 전부터 아열대지역에서 살던 해파리가 국내 연안으로 몰려와 어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것도 기후 탓이 크다. 마찬가지로 기후가 변하면서 쏙이 살기에 더 적합한 환경이 만들어진 게 아니냐는 것이다. 둘째는 시화방조제 건설, 새만금 간척사업 등으로 서해안 지역에서 큰 환경 변화가 일어나면서 조류나 유속이 변해 갯벌의 토질이 변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이다.

쏙의 유생 또는 성체를 잡아먹는 연안 어류의 수가 크게 줄어들면서 쏙이 급격히 늘어났다는 분석도 있다. 생태계 균형이 무너진 것이 원인이란 것이다. 국립수산과학원 갯벌연구소의 송재희 박사는 “일부 지역에서 쏙이 왜 이렇게 번식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며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어 이유를 한두 가지로 압축하기가 힘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 바지락 생산 2년새 17분의 1 토막… 급변한 환경 탓 추정 ▼

12일 낮 인천 옹진군 영흥면 선재도 앞바다. 바닷물이 완전히 빠져나간 갯벌에서 이영수 선재어촌계장(오른쪽) 등 섬 주민들이 트랙터를 이용한 쏙 퇴치작업에 나섰다. 어민들은 “이렇게라도 해야 소수의 바지락이라도 건질 수 있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선재도=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12일 낮 인천 옹진군 영흥면 선재도 앞바다. 바닷물이 완전히 빠져나간 갯벌에서 이영수 선재어촌계장(오른쪽) 등 섬 주민들이 트랙터를 이용한 쏙 퇴치작업에 나섰다. 어민들은 “이렇게라도 해야 소수의 바지락이라도 건질 수 있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선재도=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어쨌든 확실한 건 쏙 때문에 바지락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쏙이 바지락을 먹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왜 쏙이 있는 곳에선 바지락이 살지 못하는 것일까. 바지락은 갯벌의 토면(土面)에서 10cm 정도 아래에 자리를 잡고는 흙 표면에 아주 작은 숨구멍을 내고 살아간다. 쏙은 갯벌에 보통 0.5∼1m 깊이의 ‘Y’자나 ‘U’자형 구멍을 판다. 즉 쏙이 많아지면 바지락이 살 공간이 부족해진다. 겨우 자리를 잡은 바지락도 주변에 쏙 구멍들이 즐비하면 자라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선재도에서 캐낸 바지락 중엔 성체에 이르지 못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쏙은 구멍을 파면서 흙이나 모래를 바깥으로 퍼내는데, 이것이 바지락의 숨구멍을 막아 괴사시키는 경우도 허다하다. 게다가 바지락과 쏙은 먹이까지 겹친다.

쏙 때문에 가장 큰 소득원을 잃어버린 어민들은 사면초가에 빠졌다. 쏙은 국내 일부 지역에서 식용으로 쓰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 우리 국민의 대부분은 쏙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도 잘 모르며, 당연히 쏙을 팔 수 있는 판로도 거의 없다. 어민들은 한마디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선재도 어민들은 지난해 10월 옹진군 등의 지원을 받아 대대적인 쏙 퇴치 작업을 벌였다. 트랙터로 쏙 밀집지역을 갈아엎어 쏙을 갯벌 위로 끄집어낸 다음 사람들이 수거하거나 갈매기나 물고기가 잡아먹도록 하는 식이었다. 이는 다른 해양생물들에게 최소한의 영향을 주기 위해 고안된 친환경 퇴치법으로 2010년 주교면에서도 활용된 바 있다. 선재도 어민들이 12일간 잡아들인 쏙은 무려 20t. 하루 1.7t의 쏙을 거둬들인 셈이다.

그랬는데도 쏙은 올해도 갯벌을 뒤덮었다. 어민들은 이달 들어서도 대대적인 ‘쏙 청소’에 나섰다. 갯벌체험마을사업에 활용되던 어촌계 소유의 트랙터 3대가 총출동했고, 마을 어르신들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최민규 씨(46·선재3리)는 “선대 어른들이 힘겹게 가꾼 어장을 자식들이 지키지 못했다는 죄송한 마음이 크다”며 “어떻게든 바지락 어장을 복원할 것”이라는 의지를 보였다.

현재 선재어촌계가 당면한 과제는 ‘쏙의 산업화’다. 일부 어민들은 “쏙은 쓸모가 없다. 고민할 것 없이 무조건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일단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활용 방안을 찾고 있다. 실제 일본이나 중국에는 쏙 요리가 있고, 국내에서도 쏙이 나는 일부 지역에서 식용으로 쓰고 있기에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많지는 않지만, 인터넷에서는 쏙이 kg당 몇천 원씩에 팔리기도 한다. 어민들은 식용으로 판로를 찾기 힘들면 쏙을 낚시 미끼용이나 사료용 등으로 쓸 방법을 찾을 작정이다. 송 박사는 “쏙을 바지락 서식을 막는 해적 생물로만 볼 것이냐, 다른 산업자원으로 볼 것이냐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며 “우선 쏙이 다량으로 갖고 있는 미량원소(나트륨, 칼륨 등)부터 분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무너진 인심

‘O₂’가 선재도를 찾은 12일은 막바지 꽃샘추위가 맹위를 떨친 날이었다. 겉옷을 몇 겹씩 껴입어도 찬바람이 옷 속을 파고들었다. 오전 10시쯤 대부도에서 선재대교를 넘어 선재도로 들어서자 두꺼운 옷으로 몸을 꽁꽁 싼 한 무리의 주민들이 비닐봉지와 집게를 들고 도로변을 지나고 있었다. 모두 50, 60대로 보이는 이들은 저소득층일자리사업(가구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50% 미만인 사람 대상) 참여를 신청해 3월부터 4개월간 공공근로 일자리를 얻은 사람들. 올 상반기의 경우 영흥면 전체에서 이 사업 참가자 80명을 뽑았는데, 그중 선재도(선재1∼3리) 주민이 절반인 40명이었다. 선재도 인구는 영흥면의 5분의 1 정도다. 지난해도 마찬가지였다. 바지락에 의존하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생계를 잇기 위해 공공근로에 나선 것이다. 임금은 시간당 5000원이 채 안된다.

이승돌 씨(59·선재2리)는 “우리 섬은 외환위기도 모르고 살았는데, 이렇게 힘든 건 처음”이라며 “전기요금, 기름값을 아끼려고 겨울에도 냉방으로 지내다시피 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고 했다. 이 씨네도 한 해 소득이 3분의 1로 줄었다. 그의 부인 이윤자 씨(52)가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이라 불릴 정도로 바지락 캐기의 달인이었는데 그런 능력이 모두 소용없어진 탓이다. 급한 김에 승돌 씨가 막노동을 다녔지만 최근 허리를 삐끗해 일도 나가지 못한다고 했다. 바지락이 나지 않으니 식당들도 비상이 걸렸다. 선재3리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강경희 씨(48)는 “중국산 바지락을 쓰자니 맛이 나지 않고, 국내 다른 곳에서 사오자니 비싸고 해서 바지락칼국수는 아예 안 팔고 있다. 간혹 찾아오는 손님들을 되돌려 보낼 때는 아주 죽을 맛”이라고 했다.

백승재 씨(49·선재1리)는 “젊은 사람들이야 막일을 해서라도 하루 벌어 하루 살 수 있지만, 문제는 어르신들”이라며 “바지락을 팔아서 손주들 용돈도 주곤 하던 분들이 당장 먹고살 일이 급해지니까 우울증까지 생겼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날 오후 선재2리 마을회관에서 만난 70, 80대 노인들도 같은 말을 했다. 김손비(85) 전순애(83) 임순례 씨(83) 등은 평일 오전 2∼3시간 동안 동네 쓰레기를 줍고 하루 1만5000원을 받는다. 임 씨는 “바지락이 날 때는 힘닿을 정도만 주워도 나 먹고살기는 충분했다”며 “쏙인지 뭔지 때문에 그나마도 못하게 됐으니 살 일이 막막하다”고 했다. 쓰레기 청소 일자리라도 얻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김옥강 씨(78)는 “텃밭 조금 갖고 있다고 일자리를 안 준다고 하더라”며 못내 아쉬워했다.

이미 충분히 고통스러운 섬마을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하는 이들이 있다. 우선 ‘무늬만 섬사람’인 일부 이주민들이다. 토박이 주민들은 “주소지만 선재도로 옮긴 사람들 중 일부가 법망을 피해 기초생활수급자 혜택을 받거나 공공근로 일자리를 가져간다. 그 바람에 정작 생업이 끊긴 원주민들에겐 기회조차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불평을 털어놨다. “○○○는 세 들어 살면서 수입자동차를 굴린다”, “△△△는 연탄까지 받아 쓰면서 영흥도에 가서 땅장사를 하고 있더라” 등의 소문들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섬사람들의 분노를 사고 있었다. 물론 살기 좋았을 때는 그냥 술자리에서 욕 한번 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 터다. 삶이 팍팍해지니 상처가 더 깊은 듯했다. 한편으로는 같은 마을 사람들인데 그렇게 미워하는 사람도, 미움을 당하는 사람도 오죽 마음이 아플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선재도를 찾아와 허락도 없이 굴이나 바지락을 캐가는 외지인들도 골칫거리다. 어민들이 “나가라”고 애원을 해도 막무가내다. 우는 사람 뺨 때리는 격이다. 이날도 40, 50대 여성 4명이 선재3리의 굴 어장을 마치 제집처럼 헤집고 다녔다. 인근 주민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자 결국 섬 반대편에 있던 이 계장까지 직접 나서야 했다.

“옛날에는 저런 사람들이 있어도 어민들이 그냥 두고 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멀리서 왔는데 조금이라도 갖고 가라는 인심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굶어 죽게 생긴 것 아닙니까. 저런 사람들까지 봐줄 만한 여유가 없는 건 당연합니다.”

꽃샘추위가 지나면서 점차 봄기운이 만연해지고 있다.

이곳 선재도에도 다시 봄이 찾아올 수 있을까.

선재도=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쏙은…

우리나라 남해와 서해에 분포한다. 갑각상 십각목에 속하고, 생김새는 가재와 새우의 중간 정도다. 집게다리는 좌우크기와 모양이 같은데 가재에 비해서는 매우 작다. 쏙은 배에 붙은 다리를 이용해 수류를 일으킨 다음 해수에 섞여 있는 플랑크톤이나 유기물을 입 주변의 털 다발로 걸러 먹는다. 알을 낳는 시기는 5월 초 부터 6월 중순까지. 보통 0.5∼1m깊이로 ‘Y’자 또는 ‘U’자형 구멍을 뚫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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