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메이트’가 된 36세 뮤지션 - 53세 소설가의 ‘트윗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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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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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언 “머리 싸맨 새벽, 창작고통 토로”
은희경 “우리 트윗, 제 산문집에 담았죠”

뮤지션 이이언과 소설가 은희경은 학창시절 둘 다 모범생이었다고 했다. 이이언은 “어른들에게 반은 동경을, 반은 적의를 품고 있었다”고, 은희경은 “모범생이 됨으로써 아무도 모르는 자기 세계를 동시에 키워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털어놓았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뮤지션 이이언과 소설가 은희경은 학창시절 둘 다 모범생이었다고 했다. 이이언은 “어른들에게 반은 동경을, 반은 적의를 품고 있었다”고, 은희경은 “모범생이 됨으로써 아무도 모르는 자기 세계를 동시에 키워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털어놓았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오랜만이야.” “그러게.” “살 너무 많이 빠졌다. 힘들었던 거야?” “응. (앨범 작업) 막바지에서.”

두 남녀, 가벼운 포옹을 나눈다. 36세 남성 뮤지션 이이언과 53세 여성 소설가 은희경. 은희경의 소설 ‘소년을 위로해줘’의 채영이 아이를 낳았다면 모자간이 됐을 열일곱 살 차이지만 둘은 오누이 아니면 친구처럼 보인다. 말 그대로 둘은 ‘트친’(트위터 친구)이다. 최근 서울 마포구 상수동의 한 카페에서 둘을 만났다. 이들의 만남은 오래전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부터 ‘예약돼’ 있었다.

2005년 여름, 안면도로 향하는 차 안. 소설가 은희경 천운영 윤성희 편혜영이 일행이었다. 소설가 이신조가 건넨 ‘요즘 듣는 음악 모음 CD’가 플레이됐다. 따뜻한 콘트라베이스 음색이 ‘나의 차가운 피를 용서해’라는 가사로 이어지는 노래의 1절이 끝나기 무섭게 다들 “이 음악, 뭐야?” 하며 서로를 쳐다봤다. 이이언이 이끄는 밴드 못(MOT)의 1집 수록곡 ‘콜드 블러드’였다. “처음엔 음악에, 그 다음에는 가사에 완전히 빠져들었죠.” 2010년 2월, 트위터 계정을 개설하며 은희경은 이이언을 가장 먼저 팔로했다.

1996년 연세대 전파공학과에 다니던 이이언은 당시 화제의 소설이던 은희경의 ‘새의 선물’을 읽고 난 뒤 이 작가의 팬이 됐다. “2010년 2월, (은희경) 누나가 절 팔로한 걸 알고 ‘악!’ 하고 놀랐죠. 바로 ‘멘션’을 날렸어요.”(이이언) “트윗 시작하고 누군가에게 처음 받은 멘션이었어요. 너무 실감 안 났죠. 목소리로만 듣던 그가 내게!”(은희경)

둘은 급속히 ‘트윗 절친’이 됐다. “머리 싸맨 새벽마다 창작 고민을 나눴어요.”(이이언) “둘의 트윗 대화 내용을 제 산문집 ‘생각의 일요일들’에도 담았죠.”(은희경)

둘은 그해 여름, 오프라인으로 처음 만났다. 홍익대 앞에서의 ‘팥빙수 번개’는 ‘사케 한 잔’으로 이어졌다. “(천)운영이랑 전 털털한데 이언 씨는 예민해서 소년처럼 다뤄야 했죠.(웃음) 그치, 우리 막내?”

은희경이 트위터를 시작한 후 처음 낸 소설 ‘소년을 위로해줘’의 뒷면에는 소설가나 문학평론가가 아닌, 뮤지션 이이언의 추천사가 들어갔다. 소설의 영문판 제목(Let Boys Cry)도 이이언이 지었다.

이이언은 지난달 발매한 자신의 첫 솔로 앨범 ‘길트 프리(Guilt-free)’의 수록곡도 은희경에게 가장 먼저 들려줬다. 은희경은 한국문학번역원 해외 체류 프로그램으로 스페인에 머물던 지난해 10월에 생일을 맞았는데 이이언이 트위터 DM(다이렉트 메시지)으로 ‘나의 기념일’을 선물 삼아 보내준 것.

은희경은 이이언의 음악이 “‘파괴할 만한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했다. “예상할 수 있는 편안함, 유쾌함, 슬픔이 아닌, 뜻밖의 긴장을 주는 딜레마와 아이러니가 담겨 있어요.”(은희경)

이이언은 은희경의 소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를 손에 들어 보였다.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죠. 특정 순간에 느낀 정서적 자기장을 입체적으로 재현해 내야 해요. 누나 소설에서 심리 묘사의 입체적인 디테일에 늘 감탄해요. 누나가 나와 동류의 사람임을 확인하죠.” 은희경은 못 1집에 실린 ‘자랑’을 가장 좋아하는 노래로 꼽았다.

은희경과 이이언은 3일 무대 위에서 다시 만났다. 은희경이 올여름 내놓을 신작 소설 ‘태연한 인생’을 미리 들려주는 EBS FM ‘라디오 연재소설’의 오프닝 행사에서다. 은희경은 소설을 읽었고 이이언은 연주를 했다.

‘솔메이트처럼 잘 통한다’는 이들, 함께 뭔가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영화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처럼. “안돼요. 이언 씨 음악은 가사까지 완벽히 결합돼 나오는 거여서 다른 게 섞여 들면 안돼요.”(은희경) “누나, 신작 라디오 연재는 안 들을 거예요. 대신 책이 나오면 단숨에 읽어볼래요. 알았죠?”(이이언)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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