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신경숙(48·사진)은 “지난 8년은 장편 작업에 몰두한 시기”라고 했다. 2003년 소설집 ‘종소리’ 이후 작가는 오래도록 장편에 매달렸고 ‘리진’(2007년) ‘엄마를 부탁해’(2008년)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2010년) 등 세 편을 연달아 선보였다.
하지만 그는 단편에 대한 애정의 끈을 놓지 않았다. 8년 만에 출간한 소설집 ‘모르는 여인들’(문학동네)은 그가 2003∼2009년 문예지에 발표한 단편 7편을 묶었다. 이 작가에게 장편과 단편은 어떻게 다르게 다가올까.
“장편 쓰는 시간은 급류를 타고 격정적으로 어딘가로 휘몰아치는 느낌이라면 단편 쓰는 시간은 이른 아침 산 쪽으로 놓인 계단을 하나하나 밟고 올라가는 듯한 차분한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다른 매력이 있죠.”
‘엄마를 부탁해’로 31개국에서 출간 계약을 하면서 바쁘게 해외 활동을 했던 신경숙은 8월 귀국한 뒤 차분히 소설집 출간을 준비해 왔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을 다시 읽다 보니 이 작품들을 썼던 시간들이 나를 위로도 해주고 견디게도 해준 것 같네요. 그 기운이 이제 저를 떠나 독자들 속으로 스며들어 갔으면 합니다.”
특유의 섬세하고 감성적인 필체는 이 책의 각 단편들에도 자리 잡고 있다. 사람들의 만남과 인연, 세월의 흐름을 늦가을 거리에 떨어진 마른 낙엽을 밟으며 걷듯 조용히 써내려갔다. 표제작 ‘모르는 여인들’에선 40대가 된 여자가 20대에 만났던 옛 남자친구와 오랜만에 해후하는 과정을 잔잔히 그린다. ‘세상 끝의 신발’에서는 6·25전쟁 후 이어졌던 두 가족의 따뜻하면서도 애절한 인연을 전한다. 딱 들어맞는 상자에 담긴 선물처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포근한 작품들이다.
“세상의 험한 꼴이 뉴스에 등장할 때마다 그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하나씩 창출해 작품에 담곤 했어요. 아마도 ‘그런 모습만 있는 게 아니야!’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현실이 과도하게 훼손해 버린 것들을 작품을 통해 복구하며 균형을 잡고 싶었다고나 할까…. 소설은 제가 쓰지만 마침표는 독자가 찍는다고 생각해요. 가능하면 모르는 타인을 향해 마음을 열고 싶은 마침표였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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