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주영 “밉고 고집세고 억척스럽던 나의 어머니…”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26일 03시 00분


소설가 김주영씨 등단 40년 만에 어머니 그린 소설 ‘잘 가요 엄마’ 인터넷 연재

어릴 적에는 새로 시집을 간 엄마가 미웠다. 이제 일흔 살이 넘은 소설가 김주영은 2년 반 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사모곡을 소설 ‘잘 가요 엄마’로 풀어냈다. 동아일보DB
어릴 적에는 새로 시집을 간 엄마가 미웠다. 이제 일흔 살이 넘은 소설가 김주영은 2년 반 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사모곡을 소설 ‘잘 가요 엄마’로 풀어냈다. 동아일보DB
소설가 김주영(72)은 2년 전 아흔넷의 노모를 잃었다. 2009년 4월의 어느 새벽, 고향인 경북 청송군에 있는 아우가 “내려오셔야 되겠습니다”라고 짤막하게 부음을 전했다. 세찬 비바람이 유리창을 때리던 밤이었다. 단절음도 끊어진 수화기를 들고 일흔 살의 작가는 한참 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일찍이 남편을 잃고 날품팔이로 자식을 키운 어머니. 김주영이 여덟 살이던 1947년, 광복 직후의 극심한 혼란기에 징용 갔다 돌아온 새아버지에게 개가(改嫁)해 주변 사람들의 구설에 휘말렸던 어머니. 농사도 못 짓고 벌이도 없던 새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의 생계를 가녀린 어깨에 홀로 짊어졌던 어머니….

세 끼를 온전히 챙겨 먹는 날이 드물던 유년 시절. ‘혼절할 정도의 가난’으로 당시를 추억하는 작가는 어머니의 부음을 주위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장례를 치렀다. “내 일생 동안 주변에 도움을 준 일이 없다. 내가 죽더라도 주변에 알리지 마라. 그리고 화장해 다오.” 두 번 세 번 간곡하게 남긴 어머니의 고집스러운 유언 때문이었다.

올해 인촌상을 수상한 김주영 작가가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초상화를 소설로 풀어낸다. 문학동네 인터넷 카페에서 17일부터 연재를 시작한 장편 소설 ‘잘 가요 엄마’. 원고지 1000여 장 분량으로 내년 1월쯤 연재를 마치고 책으로 나온다. ‘객주’(1981년) ‘천둥소리’(1986년) ‘화척’(1995년) ‘홍어’(1997년) 등의 작품에서 서민들 삶의 애환을 토속적 언어로 풀어냈던 그가 등단 40년 만에 친어머니를 주제로 삼아 소설을 집필하는 것.

“친하게 지내는 지인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고향에 내려가 (어머니가) 개가하셔서 낳은 아우와 며칠을 같이 지냈죠. 장례를 함께 치르면서 어머니의 인생을 돌아보았습니다. 어머니와 나의 관계, 생전 의붓아버지와 나의 관계를요. ‘홍어’ 등 작품에서 우리나라의 어머니에 대한 얘기들을 많이 했지만, 제 어머니 얘기를 소설 전면에 내세운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겁니다.”

김주영은 광복과 6·25전쟁 시기의 궁핍했던 유년 시절에 대해선 각종 기고문과 작품에서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어머니와 새아버지, 동생에 대해서는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어머니를 보내고, 일흔이 넘은 원로 소설가가 스스로 ‘비참한 가정사’라고 말하는 가족 얘기를 꺼낸 이유가 무얼까.

“어릴 적에는 어머니에 대한 원망도 있었지요. 하지만 지금 제 나이에 뭐 그렇게 숨기고 그럴 것이 있나 싶어요. 이름 없이 살다간 어머니에 대한 자서전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말아야겠다 싶었고, 진실한 마음을 가지니까 주위의 시선에 대한 부담감도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일기를 쓰지 않는 작가는 오로지 기억력에 의지해 어머니의 삶을 하나씩 입체적으로 복원한다. “내 기억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를 시험해보고 있다”는 그는 겉으로는 고집스러우면서도 속으로는 한없이 희생적인 어머니상을 그려낸다. 작품에서 20여 년 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작가의 서울 집을 찾은 어머니는 63빌딩도, 청와대 구경도 하지 않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며칠이나마 서울 구경을 하고 돌아가시라는 간청을 끝내 뿌리쳤던 어머니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보고 싶었던 것은 서울 경치도, 며느리도, 손자나 손녀도 아닌 바로 평생 당신께 부담만 주었던 당신의 늙은 아들이었다.’

김주영은 연재를 시작하며 인터넷에 짤막한 글을 올렸다.

“어머니는 나에게 크나큰 행운을 선물했다. 어머니와 내가 함께한 시간 속에서 어머니는 나로 하여금 도떼기시장 같은 세상을 방황하게 하였으며, 저주하게 하였고, 파렴치로 살게 하였으며, 쉴 새 없이 닥치는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어머니가 내게 주었던 자유의 시간이었다. 그것을 깨닫는 데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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