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Life]물 위를 걷는 사람들, 낚시와 트레킹을 동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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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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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정취 흠뻑 플라이 낚시

물고기가 신준식 씨의 낚시 미끼를 물었다. 신 씨가 줄을 감으니 굵직한 갈겨니가 올라왔다. 가을 계곡엔 여기저기 단풍이 물들어 있었다. 10일 강원 인제군 미산계곡. 인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물고기가 신준식 씨의 낚시 미끼를 물었다. 신 씨가 줄을 감으니 굵직한 갈겨니가 올라왔다. 가을 계곡엔 여기저기 단풍이 물들어 있었다. 10일 강원 인제군 미산계곡. 인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 낚시를 하는 이유를 얼른 꼽아보면, 생생한 기쁨과 정신의 치유, 육체적인 운동, 영적인 새로움, 우정이 포함된다. … 걷다 보면 내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된다. 낚시는 우리를 자연으로 데려간다. 자연을 이해하려면 보고, 냄새 맡고, 듣고, 맛보고, 느끼고 빠져들어야 한다.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낚시를 해야 할 때가 온다’(폴 퀸네트· 바다출판사) 》
낚시와 트레킹. 낚시와 육체적인 운동이 무슨 연관이 있을까. 이달 10일, 기자는 이 두 가지를 함께 즐기는 두 사람과 함께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강원 인제군 미산계곡 합수머리.

점심식사를 마치고 난 오후 1시, 한여름 인파로 북적였던 계곡은 텅 빈 채였다. 물가의 가게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미닫이문에 덩그러니 매달린 자물쇠만 ‘주인 부재중’을 알리고 있었다.

일행은 바지장화를 입고 물가로 향했다. 낚시 관련 사업을 하는 신준식 사장(51)이 걸어가면서 낚싯대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드라마 속에서 숙련된 화승총 포수가 삼보방포(三步放砲·세 발짝 만에 화승총 장전을 끝내고 발사함) 준비를 하는 듯했다.

○ 집채만 한 바위를 타고 넘다


물가에 닿자 바로 물속에 들어가 걷기 시작했다. 물의 압력으로 허벅지가 조여드는 느낌. 이어 수풀이 앞을 가로막는다. 버드나무 가지가 자꾸 팔다리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풀숲을 헤치자 기암괴석과 단풍이 어우러진 그림 같은 절경이 펼쳐졌다.

문강순(왼쪽) 씨와 신준식 씨가 계곡을 따라 걸어가고 있다. 물속을 걷는 것은 운동 강도가 아쿠아 에어로빅과 비슷하다(위). 경기 양평군의 계곡에선 곳곳에 떨어진 토종밤이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해 줬다.
문강순(왼쪽) 씨와 신준식 씨가 계곡을 따라 걸어가고 있다. 물속을 걷는 것은 운동 강도가 아쿠아 에어로빅과 비슷하다(위). 경기 양평군의 계곡에선 곳곳에 떨어진 토종밤이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해 줬다.
일행이 준비한 것은 플라이낚시. 깃털이나 털실로 만든, 벌레 모양 인조미끼(fly)로 물고기를 속여 낚는다. 플라이낚시는 국내에서도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이 나온 이후 유명해졌다.

“계곡에선 낚시 당일의 날씨와 기압에 따라 물고기가 머무는 곳이 달라요. 계속 고기가 있는 곳을 찾아야 하죠. 그래서 많이 걷게 되는 거예요.” 동행한 문강순 씨(71)가 설명했다.

10여 분 낚시를 했을까. 수면에 떠 있던 신 사장의 플라이를 뭔가가 퍽 하고 채간다. 끌어올리고 보니 작은 꽁치만 한 갈겨니. 이 녀석은 언뜻 보기에 피라미와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피라미보다 눈이 더 검고 크다. 사는 물도 더 맑다.

“여울이 시작되거나 끝나는 곳을 노리세요. 이렇게 물이 맑은 곳에선 포말이 있어야 물고기의 경계심이 낮아집니다.” 문 선생의 설명대로 하자 굵은 갈겨니가 연이어 낚였다. 갈겨니 입질을 몇 번 더 받고 장소를 옮겼다. 물고기를 여러 마리 낚고 나면 ‘포인트가 깨지기’ 때문이다. 새 포인트는 이전 장소보다 낚시할 곳이 많지만 훨씬 험했다. 물속을 걷다 집채만 한 바위를 타고 넘어야 했다.

○ 뇌경색 이기게 해 준 낚시 트레킹

공룡의 등처럼 생긴 바위를 기어 넘는데, 신 사장과 문 선생이 저만치 앞서간다. 평소 산행에서 남보다 뒤처지는 적이 없는 기자인데도 따라가기가 힘들다. 더군다나 문 선생은 70세가 넘은 분이지 않은가.

사연을 듣고 보니 더 놀라왔다. 그는 63세 때 심장 이상을 알게 됐고, 합병증으로 뇌경색도 앓게 됐다고 한다. 심장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뇌경색 때문에 거동이 불편한 것은 물론이고 말도 거의 못 했고 글씨도 못 썼다. 나름대로 재활훈련을 했지만 이런 증상은 4, 5년 전까지만 해도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그때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것이 트레킹을 겸하는 플라이낚시였다.

“아프고 나서 일을 그만둬야 했어요. 심심해하던 차에 예전에 낚시를 했던 기억이 나더군요. 붕어낚시를 시작했는데 정신건강은 몰라도 신체건강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플라이낚시를 알게 됐지요.”

바로 이거다 싶었다. 공기 맑고 경치 좋은 곳에서 종일 머물고, 물고기를 찾아 하루 종일 움직이며, 무언가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일단 산소 농도가 도시보다 높지 않습니까. 운동도 꽤 되지요. 바지장화를 입고 물속을 걷는 건 아쿠아 에어로빅과 운동 강도가 비슷해요. 언덕과 바위를 타고 넘으면 그게 바로 등산 또는 트레킹입니다.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되지요. 하루에도 몇 번씩 무아의 경지에 빠지거든요. 물고기를 낚는 순간엔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자기 자신까지 잊게 됩니다. 이제는 낚시를 하느라 골프도 안 해요.”

신 사장은 본인의 고객 중 암에 걸린 후 요양을 하며 낚시를 시작한 사람이 여럿이라고 했다. “보통 사람들은 낚시가 정적인 운동이라고 하지만, 서구에서 즐겨 하는 플라이나 루어낚시는 트레킹의 성격이 강해요. 내 지인 중 한 사람은 등산을 하다 좋은 물을 만나면 낚시를 합니다. 그냥 낚시만 하는 것보다 더 운동 효과가 좋지요.”

늦은 오후가 되자 바람이 귓가를 스쳐갔다. 귀를 돌리자 바람소리가 더 또렷해졌다. 햇살이 부서지는 물 위에서 반짝였다. 흘러가는 물소리에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이런 게 신선노름이구나 싶었다.

역시 산속에선 해가 빨리 졌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낚시를 접은 시각은 오후 6시 20분. 어느새 산 위에선 달이 웃고 있었다. 이날 일행이 휴식을 뺀 4시간 동안 걸은 거리는 약 6.2km. 물속과 바위 위를 주로 이동한 것을 생각하면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초보자 때문에 평소만큼 포인트를 탐색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 다시 물가에 서다


16일 오후, 경기 양평군의 한 계곡 상류. 기자는 ‘그때 그 맛’을 잊지 못해 홀로 물가를 찾았다. 도로 옆 공터에 차를 세우고 계곡을 따라 올라갔다. 큰 바위 위에서 몇 번 낚시를 던진 후 다시 길로 돌아와 새로운 포인트를 찾았다. 도로 축대를 올라가는데 손 디딜 곳이 없다. 겨우 콘크리트가 움푹 들어간 곳을 찾아 양손을 집어넣고는 힘껏 팔을 당겨 도로 위로 올라섰다. 예전에 해 보았던 암벽등반 기분이 났다.

계곡을 따라 걸으니 익어가는 가을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길가에 떨어진 토종밤도 줍고, 예쁜 꽃 사진도 찍었다. 추수가 끝난 논 구석에선 트랙터가 챙겨가지 못한 벼이삭을 챙겨 ‘기념품’으로 배낭에 넣었다.

그 넓은 계곡에 낚시꾼은 물론이고 사람이라곤 기자 혼자뿐이었다. 처음엔 오랜만의 고요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온갖 생각이 다 뇌리를 스쳐갔다. 하지만 계곡을 따라 걸을수록 기분이 좋아졌다. 나중엔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한참 기분이 좋아졌을 무렵 휴대전화가 울렸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얼마 전 넣어둔 새 벨소리. 가수 김광석이 노래한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는 지금 내 곁에 있는 물가의 버드나무이리라. 이제는 집으로 돌아오라는 딸들의 전화. 아쉽지만, 충만한 마음으로 아내가 얼마 전 생일 선물로 사준 낚싯대를 접었다.

그대를 사랑해서 그대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값비싼 장난감을 갖게 해 주고, 물고기를 찾아서 온 세계를 여행하고 싶어 하는 열정을 후원하는 여인이라면 진정으로 특별하고 멋진 인간이다.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낚시를 해야 할 때가 온다’


인제, 양평=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취재협조=클럽워터맨·www.saeronafish.co.kr)  
■ 낚시 트레킹 팁


● 낚싯대는 꼭 플라이용이 아니어도 좋다. 배낭에 넣을 수 있는 접이식 낚싯대라면 무엇이든 괜찮다. 다만 폭이 좁고 장애물이 많은 계곡에서는 편 길이가 너무 길지 않은 낚싯대가 유리하다. 요즘엔 견지낚싯대를 가져가는 사람도 있다.

● 미끼로는 산천어, 송어, 갈겨니, 돌고디 등 계류 어종에 잘 통하는 플라이가 좋다. 플라이는 납 등 오염물질이 없어 친환경적이기도 하다.

● 바지장화가 있으면 낚시 포인트 접근에 유리하다. 하지만 올라갈 바위가 많은 작은 계곡에선 바지장화가 없어도 된다.

● 물과 두꺼운 옷을 꼭 챙겨가자. 산속은 기본적으로 평지보다 기온이 낮고, 온도 변화가 심하다.

●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과 연동되는 스마트폰 앱을 사용하면 본인의 이동경로와 속도, 거리 등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기자는 무료 앱인 엔도모도를 이용했다.

● 최근에는 자동차나 기차에 자전거를 싣고 가 포인트 이동에 이용하는 사람들고 있다, 이렇게 하면 운동효과를 보면서 더 많은 지역을 커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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