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일상’의 배꼽을 잡다

  • 동아일보

드로잉 작가 댄 퍼잡스키… 서울서 두달 동안 개인전
만화나 낙서처럼 편하게 다가와

시사적 이슈와 일상의 소소한 체험을 즉흥적 드로잉으로 표현하는 루마니아 작가 댄 퍼잡스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시사적 이슈와 일상의 소소한 체험을 즉흥적 드로잉으로 표현하는 루마니아 작가 댄 퍼잡스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연기가 치솟는 뉴욕의 쌍둥이빌딩에서 추락하는 사람의 말풍선에 담긴,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배웠나’란 탄식을 읽을 때 정신이 번쩍 든다. 정치인을 트랜스포머에 빗대고, 삼겹살 굽는 사람들 머리 위로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장면에선 웃음이 나온다.

루마니아 출신 세계적 드로잉 작가 댄 퍼잡스키(50)의 작품이다. 자신을 아티스트 겸 저널리스트로 규정하는 그는 지구촌의 시사 이슈와 잔잔한 일상에 균형감 있는 비판과 재치 있는 글귀를 곁들인 드로잉으로 명성이 높다. 만화나 낙서처럼 편하게 다가오는 그의 작품은 눈으로 보면서도 인식하지 못하는 세상의 모습을 일깨운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토탈미술관과 모그인터렉티브는 12월 4일까지 그의 개인전(‘The News after the news’)을 연다(02-379-3994).

1999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루마니아관을 특유의 드로잉으로 채워 주목받은 그는 2006년 런던의 테이트모던, 2007년 뉴욕 모마에서 개인전을 열면서 국제적 작가로 떠올랐다. 늘 현장에서 작업하는데 이번에도 광고와 전쟁 이미지를 콜라주한 기존 작업과 함께 전시장 곳곳에 즉흥 드로잉을 선보였다. NORTH와 SOUTH에서 공통된 글자(TH)를 강조해 분단국가의 한 뿌리를 드러낸 작업부터 다리를 포개고 밥 먹다 쥐가 난 일까지. 몇 달간 영자신문을 통해 모니터하고, 열흘간 서울에서 머물며 겪은 일을 풍자와 유머에 녹여냈다. 개별 드로잉이 유기적으로 이어져 ‘보고 읽는’ 재미를 주는데 현장 작업은 전시가 끝나면 다 지워진다.

그는 “내 작업은 현장에서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재즈 연주와 비슷하다”며 “내 그림이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쓰이기를 바랄 뿐, 영원히 남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억압적 체제를 경험한 그는 뭐든 얽매이는 것을 거부한다. 서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매트리스 위에 자고 자동차도 없는 생활을 고수하면서도 아트페어나 돈 되는 프로젝트, 드로잉을 상품화하자는 숱한 제의를 뿌리치고 전시와 공공을 위해서만 그림 사용을 허락하는 이유다. “난 미술시장 밖에서 성장했고 어떤 것에도 통제받긴 싫다.”

“내 작품의 목적은 장식이 아니라 사회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대로 그의 드로잉은 쉽지만 뜻이 깊다. 가벼움과 진중함, 예리한 비판과 따스한 유머가 버무려진 시각적 저널이 녹록지 않은 내공을 보여주는 전시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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