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1227>桓公之於管仲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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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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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위정자가 훌륭한 일을 크게 하려면 자신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훌륭한 신하를 두어야 한다. 맹자는 그 사실을 은나라 湯王(탕왕)과 伊尹(이윤)의 관계, 그리고 齊나라 桓公(환공)과 管仲(관중)의 관계를 통해서 예시했다. 지난 호(1226)에 보았듯이 맹자는 탕왕의 경우 이윤에게서 배운 이후에 그를 신하로 삼았기 때문에 힘들이지 않고 왕 노릇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서 맹자는 제나라 환공과 관중에 대해 위와 같이 말한 것이다.

桓公之於管仲은 ‘환공의 관중에 대한 관계는’이다. 湯之於伊尹(탕지어이윤)과 짝을 이룬다. 제나라 환공은 관중을 재상으로 삼아서 國威(국위)를 떨쳤다. 學焉은 ‘그에게서 배우고서’, 臣之는 ‘그를 신하로 삼았다’이다. 故는 앞 문장과 뒤의 문장을 인과관계로 접속해 준다. 不勞는 ‘자기 스스로 힘들이지 않고’이다. 覇(패)는 覇諸侯(패제후)의 준말로, 제후들이 서로의 우호를 확인하기 위해 會盟(회맹)의 의식을 할 때 주장자가 된다는 말이다. 대개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군사적으로 강성할 때 覇權(패권)을 잡았다. 그런데 富國强兵(부국강병)을 통해 覇權을 잡는 것은 仁義의 이념에 따라 王道政治를 실행하는 것과 완전히 對蹠的(대척적)이다.

춘추시대 제나라 襄公(양공) 때 나라가 혼란스러워지자 鮑叔牙(포숙아)는 양공의 이복동생인 公子 小白을 모시고 거(거)나라로 망명했다. 그 후 公孫無知(공손무지)가 양공을 살해하자 管仲(관중)과 召忽(소홀)은 公子 糾(규)를 모시고 魯(노)나라로 망명했다. 소백과 규는 서로 먼저 제나라로 들어가려고 다투었는데 소백이 이겨 제나라 군주가 되었다. 이 사람이 환공이다. 환공은 노나라 莊公(장공)에게 압력을 가해 규를 죽이게 했다. 그러자 소홀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관중은 죽지 않았을 뿐 아니라 포숙아의 추천으로 환공의 신하가 되어 재상에까지 올랐다.

위정자는 함부로 부릴 수 없을 만큼 훌륭한 인물을 신하로 두어야 한다. 아니, 그러한 인물에게 배워야 한다. 그것을 두고 맹자는 ‘그에게서 배운 이후에 그를 신하로 삼았다’고 표현했다. 만일 위정자 한 사람이 獨斷(독단)한다면 끝내 국정은 표류하고 말 것이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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