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쿨렐레를 들고 있으면 어느새 하와이처럼 멋진 휴양지에 온 듯 안온하고 시원한 느낌이 된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우쿨렐레=카운티스 제공, 의상 협찬=헤지스레이디스·TNGTW
조그만 악기가 속삭인다. ‘나를 안아주세요. 연주해 주세요.’ 두 척 안팎의 몸통에 겨우 넉 줄을 달고서 내게만 들리는 소리로 말한다. ‘나를 품에 보듬고 당신만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 손으로 살며시 네 몸을 누르고 다른 한 손으로 널 가만히 쓰다듬는다. 네가 웃는다. 딩동댕. 내가 노래한다. 떠나요 둘이서, 모든 걱정 훌훌 버리고…. 가슴의 앙금이 어느새 사라진다. 온전한 나로 돌아온다. 너는 내 친구, 우쿨렐레(ukulele)다. 이름만 입에서 되뇌어도 온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먼 남쪽바다 싱그러운 섬 하와이의 앙증맞은 이 악기가 여심(女心)을 사로잡고 있다.
○ 가장 행복한 소리를 내는 악기
얼마 있으면 독일로 유학을 떠나는 이혜민 씨(24·여)는 13일 서울 종로 낙원상가의 한 악기점에서 우쿨렐레를 처음 봤다. 울림통이 파인애플처럼 생긴 악기를 접하자마자 ‘사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휙 스쳐갔다. “독일에 꼭 가져가고 싶어요. 생활비가 떨어졌을 때 길거리에 앉아 이걸 연주하면 사람들이 동전을 던져주지 않을까요. 하하.”
우리나라에서 우쿨렐레의 역사는 꽤 길지만(B2면 상자 기사 참조) 대중적으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대략 3, 4년 전이다. 대중화를 이끌고 있는 층은 주로 이 씨 같은 20, 30대 여성들이다. 이들 여성의 마음도 이 씨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쿨렐레는 손에 잡으면 내려놓고 싶지 않을 만큼 귀엽고 깜찍하다. 덩치 큰 기타가 부담스러운 여성도 쉽게 손이 간다. 2008년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싸이월드에 우쿨렐레 동호회를 만든 이명권 ‘더 기타’ 대표는 “가입한 회원 중 90% 이상이 젊은 여성이었다”고 말한다. 그 즈음 생긴 다른 동호회나 강습소도 마찬가지였다.
업계에서는 우쿨렐레가 비약적으로 팔리기 시작한 때를 대략 가수 하림 씨가 TV의 한 음악 프로그램에 나와 우쿨렐레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른 2009년 4월 이후로 추정한다. 당시 그가 가지고 나온 국산 우쿨렐레 브랜드 ‘카운티스’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만큼 팔려 나갔다. 이성일 카운티스 팀장은 “일주일 만에 준비해 둔 우쿨렐레 400대가 다 팔려 나갈 정도였다”고 말했다. 우쿨렐레 매출이 1000% 성장한 소매상이 나타났고, 회사 측에 돈을 먼저 내고 제품 출시를 기다리는 여성 고객이 줄을 이었다. 2008년 카운티스는 20, 30대 직장 여성을 타깃으로 우쿨렐레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다른 악기업체도 미국, 하와이, 일본제 우쿨렐레를 수입해서 팔기 시작했다.
현재 우쿨렐레는 매달 전국적으로 4000대가 팔려 나간다. 월 2만대가량 팔리는 통기타에 비해서는 적지만 과거 한달에 몇 대 나가던 때를 생각하면 엄청난 성장이다. 전국의 우쿨렐레 인구는 대략 10만 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회원 수가 2만 명이 넘는 ‘우쿨렐레 속 행복’ 같은 인터넷 동호회도 많이 생겨났다. 최근에는 남성이 우쿨렐레 인구의 20∼30%를 차지할 만큼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주류는 여성이다. 대신 연령층은 넓어졌다.
우쿨렐레 예찬가들은 배우기 쉽고 재미있으며 들고 다니기 쉽다는 점을 우쿨렐레의 매력으로 꼽는다. 지난해 결성된 한국 최초의 우쿨렐레 밴드 ‘우쿨렐레피크닉’ 리더 이병훈 씨는 “각박하고 복잡한 삶 속에서 뭔가 단순하고 가벼운 것을 찾는 대중, 특히 여성의 기호와 미니멀한 우쿨렐레가 맞아떨어졌다”고 말했다. 장난감 꼬마기타같이 보이지만 맑고 경쾌한 소리도 절절한 발라드 아니면 격렬한 댄스곡이 대세인 가요에 지친 사람을 끌어당기는 요인이다.
하림 씨는 “우쿨렐레는 스마트폰과 같다”고 비유한다. 스마트폰이 언제 어디서든 혼자서 자기만의 시간과 세계를 만드는 것처럼 우쿨렐레도 그렇다는 것이다. “우쿨렐레는 기타처럼 꺼내서 연주할 때 다른 사람의 이목이 부담스러운 것도 아니고, 바이올린처럼 활이 필요하지도 않다. 소리가 작으니 카페에 앉아서 자그맣게 치면 남에게 방해도 되지 않고, 주목받지도 않는다. 여행을 갈 때도 훌쩍 어깨에 짊어지든, 가방에 쑤셔 넣든 편하게 가져갈 수 있다. 다른 악기가 갖지 못한 특징을 가진 ‘틈새 악기’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런가. 미국 최고의 여성 컨트리 가수인 테일러 스위프트는 우쿨렐레를 두고 “이 세상 어느 악기보다 가장 행복한 소리를 낸다”고 했다.
○ 우쿨렐레 르네상스
우쿨렐레 열풍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은 물론이고 영국, 독일, 호주에서도 우쿨렐레는 붐이다. 미국 뉴욕타임스, 영국 BBC방송, 데일리메일 같은 주요 언론은 최근 한두 달 집중적으로 우쿨렐레의 선풍적 인기를 다뤘다. 지난달 영국 런던에서 끝난 전영악기도매상연합회(MIRC) 회의에 모인 전국 악기도매상 180곳을 조사해 보니 이 중 42%에서 지난해 가장 많이 팔린 악기는 우쿨렐레였다. 우쿨렐레 다음으로 많이 팔린 악기는 키보드와 전자기타 순이었다. ▼ 여행 가방에 쏙… “남자친구보다 깜찍한 내 사랑” ▼ 우쿨렐레 인구 국내 10만여명… 전국서 매달 4000여대 팔려
미국에서는 1990년대 초반 얼터너티브록의 선두 주자였던 그룹 ‘펄잼’ 리더인 에디 베더 씨가 우쿨렐레로만 연주한 노래 16곡을 담은 앨범 ‘우쿨렐레 송스(Ukulele Songs)’를 지난달 31일 내놓았다. 그의 앨범은 곧 엄청난 화제가 됐다. 베더 씨는 “우쿨렐레를 접하자마자 희열을 느꼈다”며 “우리 영혼의 상처를 두드려 끄집어 낼 수 있는 악기다. 무생물도 친구가 될 수 있다면 그건 바로 우쿨렐레”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다만 이들 나라는 단순한 우쿨렐레 열풍이 아니라 ‘우쿨렐레의 르네상스’라는 점이 우리와 다르다.
우쿨렐레는 하와이 말로 벼룩을 뜻하는 ‘우쿠’와 통통 뛴다는 뜻의 ‘렐레’가 합쳐진 말이다. 1879년 포르투갈 마데이라 섬에서 4개월간 항해를 마치고 하와이에 도착한 이주 노동자 몇 명이 연주한 포르투갈 고유 현악기 마셰트(Machete)가 우쿨렐레의 선조 격이다. 여러 가지 가설이 있지만 연주자가 우쿨렐레를 뜯을 때의 발랄하고 경쾌한 손동작이 마치 벼룩이 팔짝팔짝 튀는 것처럼 보여 그런 이름을 붙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우쿨렐레는 1915년 미국에 상륙해 이후 수십 년간 인기를 끌었다. 메릴린 먼로가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1959년)에서 순회 밴드를 지휘하며 연주한 악기도 바로 우쿨렐레였고, 엘비스 프레슬리도 우쿨렐레 연주곡집을 냈다. 하와이 출신 연주자와 밴드들이 유럽 순회공연을 하면서 영국에서는 1930년대 조지 폼비라는 코미디언이 우쿨렐레를 들고 코믹한 노래를 불렀다. 비틀스 멤버 조지 해리슨이 우쿨렐레를 매우 사랑해 공연에서도 연주하곤 했다는 것은 유명하다. 그러나 1960년대를 거치며 뒤안길로 사라진 우쿨렐레는 2000년대를 맞아 세계적으로 부활하기 시작했다.
우쿨렐레의 부활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와이 우쿨렐레 연주가이자 가수였던 이스라엘 카마카위워올레(일명 IZ·1997년 사망)와 인터넷 동영상 전문 사이트 유튜브다. 1990년대 후반 IZ가 우쿨렐레를 들고 노래한 ‘오버 더 레인보’는 이후 미국과 유럽의 영화, 광고 등에 100차례 넘게 삽입됐고 독일에서는 지난해 리메이크되어 8주간 노래차트 1위를 지켰다.
또 다른 하나는 2006년 유튜브에 오른 일본계 하와이인 우쿨렐레 연주자 제이크 시마부쿠로의 연주 동영상이다. 조지 해리슨의 명곡 ‘While My Guitar Gently Weeps’를 우쿨렐레로 기가 막히게 연주한 이 동영상은 800만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도 우쿨렐레를 연주할 수 있구나’ 하고 탄복하게 했다. 시마부쿠로의 연주는 우쿨렐레를 우습게 봤던 한국 남성들을 우쿨렐레에 입문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우쿨렐레는 음악의 민주화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누구나 비싸지 않고 손쉽게 배울 수 있는 우쿨렐레를 들고 음악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펑크그룹의 리드싱어였던 어맨다 파머는 “우쿨렐레는 DIY(Do It Yourself) 시대의 시대정신을 담은 악기”라고 했다.
○ 내 맘의 작은 평화
강경애 씨(42·여)에게 2004년은 끔찍한 한 해였다. 기르던 고양이가 병원에서 숨졌고, 그것을 자책하며 1년간 집 밖을 나갈 수 없었다. 하루하루 눈물의 나날이었다. “고양이 한 마리 갖고 뭘 그래”라는 주위 사람들의 ‘무신경한’ 위로에 분노만 솟았다. 자폐의 시간을 보내던 그를 구원하고 세상과 다시 소통하게 한 것이 우쿨렐레였다. 그의 우울증을 보다 못한 친구가 들고 온 우쿨렐레를 보는 순간 강 씨는 ‘매력적인 악기’란 생각을 했다. 기타를 전공하던 강 씨가 잠깐 연주를 해보니 그 소리에 가슴이 뭉클해지며 굳게 닫아놓은 마음의 빗장이 조금 열리는 것을 느꼈다.
강 씨가 다시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된 것은 우쿨렐레를 접한 지 몇 개월 지나지 않아서였다. 우쿨렐레를 배우고 연주하며 사람들과 만났고, 작은 공연을 통해 세상과 다시 접했다. 악기의 매력에 흠뻑 빠진 강 씨는 이후 우쿨렐레 전도사를 자처하며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그가 가르친 사람 중에는 주부우울증에 시달리던 30, 40대 여성들도 있었다. 지치고 멍한 표정으로 그의 교실에 들어온 이들이 같이 연주하고 노래하면서 웃음을 되찾는 과정을 강 씨는 흐뭇하게 지켜봤다.
“마음이 평안해진다고 할까요. 다른 악기가 주지 못하는 아기자기함과 사랑스러운 느낌이 있어요. 연주를 할 때면 각박한 삶을 살지만 휴양지에 온 듯한 느낌을 주죠. 정말 고마운 악기예요.”
경기 남양주시 호평중학교에서는 4월부터 학교에서 정학 등의 징계를 받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매주 한 번씩 우쿨렐레를 가르치고 있다. 비록 다른 학생들을 때리고 돈을 빼앗은 잘못을 저질렀지만, 이들에게도 있을 상처와 분노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 우쿨렐레 강습이란 아이디어가 나왔다. 한두 곡에 지나지 않지만, 아이들은 제법 합주가 가능한 수준까지 실력을 연마했다. 강범식 교장은 “아이들이 우쿨렐레를 배우는 시간만이라도 즐거워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숙명여대 음악치료대학원 이주영 교수팀은 우쿨렐레 브랜드 ‘카운티스’와 함께 자폐아를 위한 음악치료 교실을 7월부터 운영한다. 이 교수는 “악기 자체에 대한 부담이 적고 소리가 경쾌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더 안정되고 사회성도 발달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일반인뿐만 아니라 직업 연주인들도 우쿨렐레에서 위안을 찾는다. 우쿨렐레 강습 및 판매 회사 유크메니아 대표 김상철 씨는 베이스 연주자다. 김 대표가 꼽는 우쿨렐레의 가장 큰 매력은 “자기를 위한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음악을 직업으로 할 때 받는 스트레스가 우쿨렐레를 연주하면 스르르 사라진다는 것이다.
우쿨렐레의 이런 효과는 기업계에서도 인식하고 있다. SK건설 아부다비 정유공장 건설 현장을 총괄하고 있는 김인식 상무는 올해 초 우쿨렐레 110대를 현장에 공수해 왔다. 열사의 땅에서 가족과 떨어져 고생하는 현장 직원에게 재미를 선사하겠다는 생각에서다. 세시봉 세대로 기타광을 자처하는 김 상무는 “우쿨렐레의 매력은 함께 연주할 때 생기는 시너지, 하모니에 있다”고 했다.
우쿨렐레는 악기를 처음 접하는 사람을 겁주지 않는다. 잘난 체하지도 않는다. 우쿨렐레는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알고 보면 우리들 모두 좋은 사람이잖아.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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