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처녀 여왕과 동성애 여장배우가 말씨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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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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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영국왕 엘리자베스’
대본★★★★ 의상★★★★ 연출★★★☆ 연기★★★☆

강철 같은 카리스마 아래 상처받기 쉬운 여성
성을 감춘 엘리자베스 여왕 역 김현아 씨.
화기획집단 문화아이콘 제공
강철 같은 카리스마 아래 상처받기 쉬운 여성 성을 감춘 엘리자베스 여왕 역 김현아 씨. 화기획집단 문화아이콘 제공
영국의 황금기를 연 엘리자베스 1세(1533∼1603)는 재위기간이 45년에 이른다. ‘천일의 앤’으로 유명한 앤 불린과 헨리 8세의 딸로 태어나 스물다섯에 왕위에 오른 뒤 고희로 천수를 다할 때까지 왕좌를 지켰던 그는 평생 결혼하지 않아 ‘처녀왕’으로 불렸다. 하지만 자신의 비혼(非婚)을 정치적 지렛대로 삼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기에 주변에선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다.

극단 뮈토스의 ‘영국왕 엘리자베스’(오경숙 번역·연출)는 그 여왕이 말년에 사랑했던 연하남 에식스 백작을 처형하기 전날 밤 이야기를 3시간에 걸쳐 담아냈다. 캐나다 극작가 티머시 핀들리는 여기서 여왕의 재위기간 중 가장 빛나는 보석과 같은 존재였던 셰익스피어(1564∼1616)를 등장시킨다. 여왕(김현아)이 셰익스피어(최규하)의 극단 숙소로 찾아와 배우들과 밤을 보내며 사랑과 정치에 대해 밤새 논쟁을 펼친다.

논쟁의 축은 왕위를 위해 여성성을 포기한 여왕(김현아)과 남자로 태어났지만 여장배우로 살아가는 네드 로언스크로프트(박기덕) 사이에서 빚어진다. 당시 연극에선 여자 역할은 여장남자배우들 몫이었다. 네드는 단순한 여장배우가 아니다. 남자를 사랑하다 매독에 걸린 동성애자다.

권력을 위해서 연인을 죽이려는 지존(至尊)과 연인으로부터 죽음(매독)을 선물 받고도 그를 사랑하는 비천한 배우의 만남은 강렬한 스파크를 일으킨다. 여왕이 그런 네드의 도전을 받아들이면서 말한다. “네가 날 여자가 되도록 가르친다면 난 널 남자가 되도록 가르치겠다.”

왕과 배우의 대결을 그린다는 점에서, 또 연극을 왕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일종의 사이코드라마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영국판 ‘왕의 남자’라고 할 만하다. 셰익스피어 작품과 영국 역사에 정통하지 않은 관객에겐 쉽지 않은 작품이지만 2막에선 강렬한 흡인력을 보여준다. 사실성 높은 의상과 조명도 한몫을 했지만 특히 엘리자베스 역을 소화한 김현아 씨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가 볼만하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i:3만 원. 5월 1일까지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 1666-5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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