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이야기]<22>녹두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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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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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먹는 보양음식 “여름을 건강하게”

제철에 맞는 음식을 먹으면 그것이 바로 보약이라고 했으니 그렇다면 오늘은 녹두묵(청포묵)을 먹어 보자. 예전부터 맛이 상큼한 녹두묵은 봄이 제철이고 옥수수로 만드는 올챙이묵은 여름이 제철이며 쌉쌀한 도토리묵은 가을에, 그리고 텁텁한 메밀묵은 겨울에 먹어야 별미라고 했으니 지금이 바로 녹두묵을 먹는 계절이다.

우리나라 풍속을 적은 동국세시기에도 녹두묵은 3월에 먹는 계절 음식이라고 했는데 녹두묵을 가늘게 썰고 여기에 돼지고기, 미나리, 김을 넣고 초장을 넣어 양념을 하면 매우 시원해서 늦은 봄에 먹을 만한데 이것을 탕평채(蕩平菜)라고 한다고 적어놓았다.

먼저 왜 녹두묵을 봄에 먹는 음식이라고 했을까. 동국세시기에 3월에 녹두로 만든 국수인 화면(花면)을 먹고 또 녹두묵 무침인 탕평채를 먹는데 이유는 이 무렵 녹두를 먹으면 여름을 건강하게 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동의보감에 녹두는 성질이 차고 맛이 달며 독이 없어 열을 내리고 부은 것을 가라앉게 만들고 소갈증을 멎게 한다고 했다. 녹두는 열을 식히는 식품이니 날씨가 서서히 더워지는 음력 3월에 녹두묵을 먹으며 여름을 대비하고자 했던 것이다.

녹두는 차가운 식품이기 때문에 조선의 선비들은 녹두묵을 술 깨는 데 좋은 최고의 해장음식으로 여겼다. 동의보감에도 녹두는 열독을 없애서 술독을 풀어준다고 했고 중국 의학서인 본초강목에도 녹두탕으로 해장을 한다고 나온다. 자세히 보면 지금도 밤에 한정식집에서 술을 마실 때는 녹두묵이 안주로 많이 나오는데 옛날 술상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정조 때의 문인인 이옥(李鈺)이 “상에는 탕평채 가득 쌓여있고/술자리에는 방문주 흥건하지만/가난한 선비의 아내는/입에다 누룽지조차 넣지 못하네”라는 시를 읊었다.

탕평채는 녹두묵 무침이니, 녹두묵이 술안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시의 내용이 부정적인 것은 작자인 이옥이 과거에 급제하고도 자질구레한 글이나 쓰고 다닌다며 정조에게 핍박을 받았고 당시 양반 사회에서 이단으로 취급받았던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녹두묵 무침은 그 이름이 뜨르르하게도 탕평채로 불렸다. 우리는 보통 영조 때 당파싸움이 심해지자 영조가 탕평책을 펴면서 신하들과 당쟁을 중지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녹두묵 무침을 먹었다고 해서 생긴 이름으로 알고 있다.

또 영조가 4색(四色)이 섞여 화합을 상징하니 탕평채라고 부르자고 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와 같은 공식문서에 기록이 나올 만한데 흔적조차 없다.

탕평채라는 이름의 유래는 순조 때 활동했던 조재삼의 송남잡지(松南雜識)에 기록이 나오는데, 영조 때 정승을 지낸 송인명(宋寅明)이 그 이름을 지었다고 밝혔다. 탕평채는 녹두묵에 쇠고기, 돼지고기를 섞고 나물을 섞어서 비빈 것인데 송인명이 젊었을 때 시장거리를 지나다 녹두묵 무침 파는 소리를 듣고 4색을 섞는 일로 탕평사업을 삼고자 녹두묵 무침을 탕평채라고 불렀다고 기록해 놓았다.

송인명은 영조 때 이조판서를 지낸 정승으로 탕평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한 인물이다. 영조가 직접 작명을 한 것은 아니지만 심복인 송인명이 음식 이름에까지 ‘탕평’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을 보면 당시 집권계층에서 당파싸움의 근절 의지가 상당히 강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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