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서울의 건물, 역사와 문화의 속삭임

  • Array
  • 입력 2010년 10월 16일 03시 00분


코멘트

◇서울, 건축의 도시를 걷다 1, 2/임석재 지음/1권 464쪽, 2권 496쪽/각 1만8000원/인물과사상사

《“이제 건축물도 감상하기 위해 보러 가는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서울의 건물들이 볼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 않다. 늘 본다는 이유로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건축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 건축사학자인 저자는 이 책의 집필 의도를 이렇게 밝혔다. 책에 소개된 312개 건물의 역사와 이야기를 듣고 나면 그의 말처럼 건물들이 달리 보인다. 그의 ‘서울 건축’ 이야기는 종로에서 시작한다.》
건축사적인 시각에서 볼 때 종로1가 사거리는 재미있는 곳이다. 전통 건축물인 보신각이 전형적 현대 건물과 마주보고 있기 때문이다. 보신각 건너편의 종로타워는 라파엘 비뇰리라는 건축가의 작품으로 금속과 유리를 사용해 산업 이미지를 극대화했다. 저자는 “조선의 중심부였던 곳의 맞은편에 서양 건축가의 설계로 지어진 가장 이국적인 건물이 서 있다”고 말한다.

종로구 경운동의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명동성당과 종교적으로나 건축적으로 모두 경쟁 관계에 있었다. 명동성당이 프랑스의 완성된 건축 양식인 고딕을 수입해서 통일감 있게 지어진 반면 천도교는 자생 민족종교로서 통일된 건축 양식을 갖출 여유가 없었다. 이에 따라 이 건물에는 19세기 서양의 여러 역사주의 양식이 혼용됐다.

신세계백화점 본점 건너편 명동 길목에는 서울 중앙우체국 청사가 있다. 2007년 완공된 건물로 ‘Y(와이)’자 모양으로 갈라진 외관이 특이하다. “서울시청, 숭례문과 함께 삼각축의 결절점을 이루고 있어 상징적 게이트로서의 역할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좌우 대칭인 두 개의 타워로 설계했다”는 게 설계자의 설명이다.

건물에 얽힌 뒷얘기들도 흥미롭다. 종로구 원서동에 있는 설계사무소 ‘공간’의 구 사옥은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이다. 저자는 “김수근은 부여박물관을 일본신사와 닮게 설계해 왜색 논쟁에 휩싸였는데 그 이후 심기일전해서 한옥의 전통 공간을 공부한 뒤 이 건물을 설계했다”고 설명한다.

엄덕문의 작품으로 1978년 완공된 세종문화회관은 미국의 영향을 받은 건물로 해석했다. 저자는 이 건물을 ‘신기념비주의’ 건물로 분류했는데 20세기 후반 전 세계에 걸쳐 국가에서 발주하는 대형 공공물에 나타나는 양식이다. 각국의 전통 모티브를 사용한 거석 구조를 통해 국가 공권력을 과시하는 흐름을 가리킨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제국’으로 등장한 미국이 이를 과시하기 위해 시작한 후 주로 제3세계로 퍼져나갔다.

저자에 따르면 세종로의 동아일보 사옥은 광화문 일대 오피스 빌딩의 변천사를 잘 보여주는 공간이다. 일제강점기 때 양식과 가장 최근의 양식이 나란히 서서 한국 근대사의 시작과 최근의 대비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구사옥에는 네오 르네상스, 아르데코, 아르누보 등 다양한 양식이 혼재해 있다. 동아미디어센터로 불리는 신사옥은 후기 모더니즘과 약식 하이테크를 혼용한 양식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는 “구사옥의 오래된 석재 르네상스 양식과 유리와 금속으로 이뤄진 신사옥의 하이테크 이미지는 묘한 대비의 미학을 보여준다. 둘은 싸우거나 갈등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 보완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만으로는 시대의 단편적인 기록밖에 되지 않는데 둘을 합하면 비로소 20세기가 기록된다”고 평가했다.

신촌기차역도 의미 있는 건축물로 꼽혔다. 1920년대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역은 경의선이 개통되면서 주요 정착역으로 자리 잡았다. 일제강점기와 광복을 거치면서 주변의 이화여대 연세대와 함께 신문명을 상징하는 건물이었으나 이 일대가 급격히 상업화되면서 ‘추억의 간이역’ 신세로 전락했다. 용산구 이태원동의 갤러리 빙은 현대 건축의 중요한 분기점을 이룬 건물로 해석됐다. 저자는 “김중업과 김수근의 양대 산맥이 이끌어오던 한국의 건축은 1990년대 들어 다음 세대에 의해 다양한 사조와 경향을 실험하는 다원주의 시대로 돌입하는데 이 건물은 그 시작을 알렸다”고 설명한다.

대학 건물 가운데는 도봉구 쌍문동의 덕성여대 건물이 남다른 특색을 자랑한다. 덕성여대는 한두 채를 빼고 거의 모든 건물이 벽돌로 지어졌다. “벽돌 건물의 비중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 캠퍼스 하나가 통째로 벽돌 건물로 이뤄졌다는 것은 매우 특이한 현상이다. 다른 대학에선 느낄 수 없는 차분하고 안정적이며 통일감 있는 품격이 느껴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강남역 근처의 강남 교보타워는 현대 건축 경향에서 볼 때 예외적인 건물로 꼽힌다. 고층 오피스 빌딩에서 유리 사용 비율이 많아지는 트렌드에 맞지 않게 붉은 벽돌을 무겁게 둘렀기 때문이다. 이유는 스위스 출신인 건축가에게 있다. 이 건물을 설계한 마리오 보타는 알프스 초원지대의 전통 주거 양식을 원용해 현대의 감성에 맞게 벽돌로 재해석해내는 건축가로 유명하다. 교보타워는 그의 작품성을 높이 산 건축주가 그런 경향을 오피스 빌딩에 적용해 달라고 요구해 탄생한 건물이다.

저자는 “각 건물은 단순히 물리적 구조물이나 건축 시설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설계자가 설계한 건물, 즉 우리가 흔히 작품이라고 부르는 건물에는 건물을 둘러싼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상황에 대한 고민과 해답이 담겨 있다”라고 말한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