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 고궁 휘감은 클래식 선율

  • 동아일보

KBS2 ‘클래식 오디세이’ 특집 음악회, 창경궁 첫 야간녹화

8일 오후 서울 창경궁 명정전 앞에서 클래식 공연이 녹화됐다. 이 공연은 KBS2 ‘클래식 오디세이’ 500회 특집방송으로 열렸으며 1400여 명이 관람했다. 사진 제공 KBS
8일 오후 서울 창경궁 명정전 앞에서 클래식 공연이 녹화됐다. 이 공연은 KBS2 ‘클래식 오디세이’ 500회 특집방송으로 열렸으며 1400여 명이 관람했다. 사진 제공 KBS
가을밤의 어스름이 짙어지자 고즈넉하던 창경궁 명정전 앞에서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제1번이 울려 퍼졌다. 1400여 명의 관객은 숨을 죽인 채 동서양의 전통이 빚어내는 조화에 눈과 귀를 집중했다.

지상파 방송에서 유일한 클래식 프로그램인 KBS2 ‘클래식 오디세이’가 방송 500회를 맞아 8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창경궁 명정전 앞에서 특집방송을 녹화했다. 창경궁에서 밤에 조명을 설치해가며 음악회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립국악원 주최로 열린 음악회 ‘창경궁의 아침’ 등 낮에 음악회가 열린 적은 있었지만 밤에는 조명이 자칫 화재로 이어질 위험이 있어 행사를 여는 것이 제한됐다. 특히 명정전은 조선시대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큰 행사를 치르던 장소로 국보 제226호로 지정돼 있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도 객석의 박수 열기는 뜨거웠다. 사할린에서 영구 귀국한 지 1년이 채 안 됐다는 동포 박학자 씨(66·여)는 “평소 음악을 좋아했는데 고국의 창경궁에 와서 음악을 감상하니 감격적이다. 공연 내내 쉬지 않고 집중해서 음악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은 장윤성 지휘자가 이끄는 KBS 교향악단이 연주했고 첼리스트 양성원 씨,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 씨, 소프라노 김수연 씨, 바리톤 카이 씨가 출연했다. 공연 중반에 카이 씨가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중 ‘나는 이 마을 최고의 이발사’를 익살맞은 표정으로 부르자 객석의 긴장이 다소 풀어졌다.

김수연 씨와 카이 씨가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함께 열창할 땐 낭만적인 분위기가 절정에 달했다. 호주에서 온 트리스탄 켄더딘 씨(27)는 “창경궁에 처음 와봤는데 매우 아름답다. 조선왕조의 깊은 역사를 간직한 고궁에서 첼로와 바이올린 소리가 울려 퍼지다니 멋지다”고 말했다.

이 공연의 무대는 명정전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보이도록 단출한 단상 형태로 만들었고 비가림막이나 별다른 장식은 없었다. 녹화 현장에는 화재와 사고에 대비해 소방차와 구급차가 대기했다. 신하들의 신분을 나타내는 24개의 품계석에는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빨간색 안전띠가 하나하나 둘러져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심야시간(매주 화요일 밤 12시 35분)에 방송돼 시청률이 0.5%(5일 방송)에 불과하지만 클래식에 목말라하는 시청자들로부터 꾸준한 관심을 받아왔다. 그동안 조수미 장한나 장영주 임동혁 등 한국의 음악인뿐 아니라 피아니스트 랑랑,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 바이올리니스트 고토 미도리 등 세계적인 음악인들이 출연했다. 이날 녹화한 500회 특집방송은 19일 밤 12시 15분 KBS 2TV에서 80분간 방송된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