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우 “일회용 관계 넘쳐나는 세상 망각 거부하는 사람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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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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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우 새 장편 ‘이별하는 골짜기’

아무리 아픈 과거 있더라도 삶은 도망쳐선 안될 ‘그 무엇’

“진짜 주인공은 버려진 간이역이 아닐까요.”

장편소설 ‘이별하는 골짜기’(문학과지성사)는 작은 간이역에 몸을 둔 두 남자, 두 여자의 이야기다. 작가 임철우 씨(56·사진)는 자신이 지은 사람들을 품은 간이역에 각별히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7, 8년 전부터 강원도를 자주 찾았던 작가는 정선의 산골짝에서 버려진 간이역을 찾아냈다. 강원 정선군에 자리 잡은 정선선의 첫 번째 역 ‘별어곡(別於谷)’. 2005년에 역무원이 사라졌고, 지난해 억새전시관으로 바뀌었다. 이 애틋한 역명이 작가에게 그 역을 배경으로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게 했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 이름을 풀어 소설의 제목을 삼았다.

임 씨는 6·25전쟁과 남북 분단, 5·18민주화운동 등 한국 현대사의 상처를 소설로 형상화했다. 이 작품의 주제의식이 묵직하다. “어둡고, 무섭고, 가능하면 빨리 거기에서 도망하고 싶은 세계이지만, 그 세계는 절제된 감정 때문에 아름답다.” 평론가 김현의 작가에 대한 유명한 평가는 새 장편에서도 유효하다. 무섭고도 아름답다.

유복자로 나서 아버지 없음이 늘 고통스러운 막내 역무원 정동수, 실수로 사내를 치어 죽인 뒤 그 사내의 부인과 조우하고 결혼하지만 행복할수록 불행한 역무원 신태묵 등 별어곡역 사람들의 상처는 깊고 오래된 것이다. 열여섯 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서 꽃다운 시간을 악몽처럼 보내야 했던 가방할머니의 이야기는, 독자가 ‘빨리 도망치고 싶을 만큼’ 참혹하다. 제과점 여자는 자신이 위치를 누설하는 바람에 숨어 있던 탈영병이 죽은 유년의 기억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다. 가슴속 응어리를 토해내는 심정으로 썼던 이전 작품과 달리 차분하고 담담하게 마음을 가라앉혀서 ‘이별의 골짜기’를 썼다고 작가는 고백하지만 임철우 소설의 메시지는 일관된 것이다. 작가는 아픈 사연들을 통해 ‘삶은 아름다움만도 슬픔만도 아니라는 것, 아무리 두렵고 끔찍해도 결코 도망치거나 외면해선 안 될 그 무엇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일회용 감각, 일회용 이미지, 일회용 관계들만 넘쳐나는 이 세상은 더는 지난 시간을 향해 고개를 돌리려 하지도, 기억하려 하지도 않는다. 이 소설은 과거의 시간에 포박된 사람들, 혹은 망각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불러도 좋겠다.”

작가는 인생의 고통을 오래, 조용히 감내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의의를 부여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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