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주민 삶 바꾸는 건 문화 음악 향기에 온 마을이 활기”

  • Array
  • 입력 2010년 5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시골교회 오케스트라 만든 김일현 목사

성악과 출신으로 음악과 신앙의 합일을 추구하는 경기 양평군 국수교회의 김일현 담임목사. 그는 국내 어느 공연장 못지않은 음향시설을 갖춘 예배당을 소개하면서 “이 정도면 세계적인 오케스트라가 공연해도 손색이 없다. 이곳을 열심히 활용해 문화의 향기를 널리 퍼뜨리겠다”고 말했다. 양평=전영한 기자
성악과 출신으로 음악과 신앙의 합일을 추구하는 경기 양평군 국수교회의 김일현 담임목사. 그는 국내 어느 공연장 못지않은 음향시설을 갖춘 예배당을 소개하면서 “이 정도면 세계적인 오케스트라가 공연해도 손색이 없다. 이곳을 열심히 활용해 문화의 향기를 널리 퍼뜨리겠다”고 말했다. 양평=전영한 기자
“문화가 그림의 떡이면 안 됩니다. 낫을 놓은 농부가 저녁에는 바이올린을 잡는 것을 유럽에서는 많이 봤습니다. 삶 속의 문화가 중요합니다.”

19일 방문한 경기 양평군 양서면 국수리 국수교회(사진)는 외관이 멋지다. 원형과 사각형이 조화를 이룬 건물은 도시의 교회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내부를 들여다보면 더 놀랍다. 300석 규모의 예배당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어느 공연장 못지않은 시설을 갖췄다. 예배당 겸 공연장에서 소리를 내 보니 공명이 예사롭지 않았다. 김일현 담임목사(55)는 “재독 동포 음향전문가가 설계한 시설은 서울 예술의 전당과 비교해도 음향이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수교회에는 오케스트라가 있다. 교인이 400여 명에 불과한 농촌 교회가 전문 공연장 못지않은 시설과 오케스트라를 갖춘 것은 이례적이다. 오케스트라는 두 팀이다. 한 팀은 교인들로, 다른 한 팀은 지역 주민들로 이뤄졌다. 오케스트라는 지방 공연을 다닐 정도의 실력을 자랑한다. 좋은 시설이 소문나면서 교회에서는 오페라와 연주회 등이 1년에 10여 차례 열린다. 국수교회가 기독교단에서 문화 선교사업의 모범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수교회 오케스트라. 사진 제공 국수교회
국수교회 오케스트라. 사진 제공 국수교회
김 목사는 서울대 성악과를 나왔다. 이어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한 뒤 유학을 준비하던 1988년 양평군에서 목회를 하던 부친으로부터 국수교회의 담임 자리가 비었으니 잠시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는 “교회를 맡고 보니 문화의 빈곤 속에 사는 주민들에게 연민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선교보다 문화, 교육 사업이 시급하다고 느꼈다. 자신의 장기인 음악을 통해 문화의 향기를 전하고 싶었다. 우선 지역 주민과 교인,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악기교실을 열었다. 플루트, 바이올린 등 악기 5대를 200만 원에 구입했다. 처음엔 시큰둥하던 주민들도 악기를 배워 가며 점점 재미를 느꼈다.

“지금은 주민들이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글을 잘 모르는 노인들도 교회에서 열리는 공연을 보며 잘못된 부분을 지적할 만큼 음악 수준이 높아졌어요.”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신자 조은원 씨는 “오케스트라에서 나는 플루트를 맡고, 두 아들은 첼로와 바이올린을 맡고 있다”며 “아이들이 문화의 혜택을 누리며 자라 도시 생활이 부럽지 않다”고 말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 안명진 씨는 “지금까지 청소년 단원 중 6명이 음대에 진학했다”고 전했다.

오케스트라가 자리를 잡자 교인들은 새 예배당을 원했다. 김 목사는 기왕이면 콘서트가 가능한 시설을 갖추자고 제안했다. 10여 년을 준비해 2005년 콘서트홀을 갖춘 지금의 교회가 완공됐다. 그는 “시설에 욕심을 내다 보니 지금도 빚에 허덕인다”고 웃으며 말했다.

청소년 공부방, 유치원, 노인교실도 열었다. 1988년 공부방을 연 첫해에는 20여 명 중 한명도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2년이 지나자 4명이 대학에 진학했다. 공부방에서는 여름방학에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새너제이 지역의 교회와 연계해 원어민 영어교실도 연다. 그는 “공부방 출신 중에는 미국 뉴욕대에서 석사학위를, 오하이오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친구도 있다”고 자랑했다.

그에게 “문화사업에만 치중해 영성이 약한 것은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내가 아는 하나님은 어려운 곳에 찾아와서 문제를 해결해 주는 분”이라며 “목회자가 신앙의 올무에만 갇혀 있다면 진정으로 하나님과 이 세상을 섬기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전국 교회를 문화공연장으로 활용하면 어떻겠느냐며, 이 제안을 꼭 지면에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우리나라 방방곡곡 교회가 없는 곳이 없어요. 교회를 개방하면 도시의 공연장을 찾지 않아도 일상에서 문화를 즐길 수 있을 겁니다. 교회는 주일 예배시간 외에는 활용 빈도가 너무 낮아요.”

그의 꿈은 앞으로 국제학교를 여는 것이다. 시골 아이들이 더욱더 질 높은 교육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그가 지역 주민과 또 어떤 하모니를 만들어 낼까.

양평=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