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기표 4단 ● 이창호 9단
결승 5번기 4국 5보(66∼73) 덤 6집 반 각 3시간
검토실은 백 66이 ‘헛방인 것 같다’고 말했다. 흑을 덮어 씌우는 화려한 수처럼 보이지만 프로들은 실속이 없는 수로 결론을 내린다. 이제 ‘헛방’을 헛방으로 만드는 건 흑의 대응에 달렸다.
뜻밖이다. 백 66과 가장 상관없어 보이는 흑 67이 백의 헛방을 가장 아프게 응징하는 수. 흑의 삶과는 큰 관련이 없어 보이는 흑 67이 왜 좋은 수일까. 우선 좌하 백 집에 대한 끝내기와 노림수가 생겼다. 하변 백이 근거가 사라지며 매우 엷어졌다. 여기에 흑이 후수 한 집 정도는 만들 수 있다. 아무리 봐도 백의 비세가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
홍기표 4단이 괴로운 듯 몸을 뒤척이고 안경을 고쳐 쓴다. 둘 간의 기풍 때문이겠지만 한번 모양이 굳어지면 다시 뒤집기가 힘든 바둑이다. 콘크리트처럼 완벽히 굳기 전에 온몸을 부딪쳐 깨뜨려야 한다. 백 68로 침입하는 홍 4단의 마음속에는 “이게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라는 비장함이 들어 있었다.
흑 71까진 당연한데 다음 수가 어렵다. 참고도 백 1로 붙여 귀의 삶을 도모하는 것은 하책 중 하책. 귀는 무난히 살겠지만 하변 백은 사경을 헤매게 된다. 이게 다 흑 67의 효과다.
백에게 마땅한 수단이 없어 보이는데 3분간 고민하던 홍 4단은 백 72를 내놓는다. 그럴듯하다. 최소한 무력한 수는 아니라는 느낌이 온다. 흑 73. 이 9단도 멋진 수로 맞받아친다. 승부를 떠나 두 대국자가 ‘그림’을 만들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