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 철교 사진속엔 자유와 묵시록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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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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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 박은영 강사 분석

1950년 12월 4일 미국 종군기자 막스 데스퍼가 촬영한 평양 대동강 철교 피란민 사진. 당시 미국 언론에 소개되고 다시 한국에 들어오면서 6·25전쟁의 상징적인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사진 제공 박은영 씨
1950년 12월 4일 미국 종군기자 막스 데스퍼가 촬영한 평양 대동강 철교 피란민 사진. 당시 미국 언론에 소개되고 다시 한국에 들어오면서 6·25전쟁의 상징적인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사진 제공 박은영 씨
부서져 철골 잔해를 드러낸 다리. 밑으로는 강물이 흐르고 철골 위로는 개미떼처럼 달라붙어 있는 수많은 사람들.

1950년 12월 4일 미국 종군기자 막스 데스퍼가 평양 대동강철교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목숨 걸고 아슬아슬하게 철교 철골을 넘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포착한 것이다. 이 사진은 곧바로 미국에 전송되어 ‘뉴욕 헤럴드 트리뷴’ 등에 ‘파괴된 대동강철교를 지나는 사람들’이란 이름으로 소개됐다. 데스퍼는 이 사진으로 이듬해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이 사진은 다시 한국으로 들어와 다양한 매체에 소개되면서 6·25전쟁을 상징하는 대표적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이 상징적인 사진을 분석한 논문이 처음 나왔다. 박은영 홍익대 강사(현대미술사)가 최근 ‘미술사논단’ 29호에 발표한 ‘한국전쟁 사진의 수용과 해석-대동강철교의 피란민’. 박 씨는 논문에서 이 사진이 한국인과 외국인에게 어떤 이미지로 수용됐는지, 이 사진이 지닌 이미지의 특성이 무엇인지 분석했다.

박 씨가 주목한 것은 우선 사진의 제목 또는 설명이다. 1950년 당시 미국에서는 ‘파괴된 다리를 건너는 피란민’이란 제목이나 설명이 붙었다. 이 같은 설명은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1970, 80년대 국내 출판물에서는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건너오는 피란민들’이라는 내용이 강조되었다. 박 씨는 “미국에선 단순히 전쟁의 비참함이라는 이미지였다면 당사자인 한국에서는 비참함뿐만 아니라 ‘자유를 향한 엑소더스의 이미지’가 강하게 부각된 것”이라고 비교했다.

박 씨는 또 ‘파괴된 다리’를 촬영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거대한 철교의 파괴는 전쟁 피해 그 이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박 씨에 따르면 대동강철교의 파괴는 근대 기술의 파괴 이미지이고 불가피한 재앙과 죽음의 이미지이다. 박 씨는 “철교의 무시무시한 잔해와 뒤엉킨 사람들의 무리는 지옥과 같은 아비규환을 연상시키고 나아가 죽음과 종말을 제시하는 묵시록적 폐허의 이미지와 연관된다”고 해석했다.

결국 데스퍼의 이 사진은 자유를 향한 처절한 갈망의 이미지, 인간 존재의 묵시록적 이미지가 조화를 이루면서 전쟁 사진의 명작으로 전해 온다는 것이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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