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Q|막걸리의변신은무죄] 황정음도 푹 빠졌다 막걸리, 네 정체가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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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9일 07시 00분


뽀얀 속살에 취해보자

스타 연예인들이 막걸리 광고에 등장하는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요즘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황정음의 막걸리 CF 한 장면. [사진제공=국순당]
스타 연예인들이 막걸리 광고에 등장하는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요즘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황정음의 막걸리 CF 한 장면. [사진제공=국순당]
□ 막걸리야, 누가 너를 만들었더냐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맞고 있다는 막걸리의 제조 과정을 취재하기 위해 서울 도봉구 창2동에 있는 서울탁주제조협회 도봉연합제조장에 연락을 했다.

그랬더니 “오전 9시에 방문해 달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내심 오후쯤 느긋하게(막걸리라도 한두 잔 걸쳐 가며) 취재를 하면 되겠거니 싶었던 차라 엄동설한의 ‘오전 9시’는 꽤 생뚱맞게 들렸다.

공장 안뜰로 들어서니 막걸리를 싣기 위한 트럭들로 빼곡하다. 왼쪽에 붉은 벽돌로 외벽을 두른 2층짜리 건물(공장이다), 오른편에는 단층 건물(연구실이다)이 있다.

미리 연락을 받은 성기욱(63) 전무는 연구실에 있었다. 성 전무는 36년 동안 막걸리만 연구해 온 국내 최고의 막걸리 전문가이다. 그가 판 ‘한 우물’에서는 물대신 막걸리가 퍼 올려질 것 같다.

공장을 찾고 나서야 굳이 “오전 9시에 방문해 달라”는 이유도 알 수 있었다. 도봉연합제조장은 생막걸리인 ‘장수막걸리’를 주로 만드는데 매일 신선한 막걸리를 제공하기 위해 새벽 6시부터 일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오전 9시면 작업이 한창 이루어지는 시각이고, 따라서 취재하기에도 용이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새벽 6시부터 낮 12시까지 작업을 합니다. 요즘은 막걸리 붐이 일면서 생산량이 늘어 오후 1시까지도 일하지요. 주말 소비량이 급증해 토요일은 오후 3∼4시까지도 일하기도 합니다.”

성 전무를 따라 공장 건물의 뒤편으로 들어갔다. 철문을 열자마자 기계가 뿜어내는 우렁찬 굉음에 압도되고 말았다.

“이곳은 포장라인입니다. 완성된 술을 병에 주입하고, 다시 박스에 담는 곳이지요.”

기계음이 워낙 커 전무의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 다행히 설명이 없이도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한 눈에 알 수가 있다.

먼저 빈병들이 ‘휙휙∼’ 소리를 내며 1초에 3∼5개 정도씩 빠른 속도로 라인에 공급된다. 기계 손 같은 것이 등장해 빈 병을 거꾸로 뒤집어 들고는 안에 물을 뿌려 세척한다. 깨끗이 닦은 빈병들은 원형 회전대로 진입. 빙글빙글 도는 동안 위의 노즐로부터 막걸리가 주입된다. 술이 담긴 병은 다시 고속의 스크류 아래를 통과하게 되고, 스쿠류에 의해 마개가 닫힌다. 완성된 막걸리는 공장 밖으로 나가 20개들이 박스에 담겨 트럭에 실리게 된다.

포장실을 나와 이번에는 공장 1층 앞문으로 들어간다. 이곳은 발효실이다. 포장실과 달리 발효실은 적막감이 감돌 정도로 고요하다. 막걸리의 잠을 깨우고 싶지 않은 듯 사람들도 발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걸어 다닌다(과장이다).

발효실은 ‘담금실’이라고도 한다. 술을 담그는 방이다. 술을 담그는 용기 하나의 용량은 2088리터. 상당한 크기이다. 최홍만 선수가 목욕을 해도 넉넉할 듯싶은 이런 통이 공장 1층과 2층에 모두 139개가 있다. 그래도 부족하다고 한다.

까치발을 하고 들여다 본 3차 발효 용기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귀를 기울이니 ‘싸∼’하고 탄산이 올라오는 소리가 난다. 용기에 닿은 손이 따뜻하다.

이제 2층으로 올라간다. 레미콘같이 생긴 기계가 눈에 들어온다. 고두밥을 찌는 기계로 아래쪽에는 밥으로 거듭나기 위해 아가리를 좍좍 벌린 쌀부대가 잔뜩 대기하고 있다. 군부대에 가져다 놓으면 ‘딱’일 것 같다.

철문을 열고 들어서니 1층에서 봤던 컨베이어가 거친 숨소리를 내며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1층과 다른 점은 생막걸리가 아닌 살균주라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생막걸리와 공정이 동일합니다. 다만 살균작업만 추가되는 거지요” 성 전무가 손가락으로 ‘HTST’라 불리는 순간살균기를 가리켰다. 여기서 1차 살균을 마친 막걸리는 병에 담기게 되고 컨베이어에 실려 줄줄이 2차 살균 코스로 이동하게 된다.

2차 살균은 열탕이다. 막걸리 병들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열탕 속을 40분 동안 천천히 통과해야 한다. 사우나도 아니고, 이처럼 열로 푹푹 삶아댄다면 균으로서도 상당히 괴로운 일일 것이다. 왜 살균을 하는가 하면 보존기간을 늘리기 위해서이다. 생막걸리는 10일 정도 가지만 이렇게 살균을 해놓으면 몇 개월도 끄덕없다. 캔막걸리는 1년도 간다.

막걸리 공장 탐방을 마치고 연구실로 돌아온 성 전무가 낡은 사진첩을 꺼내 보여주었다. 재래식으로 ‘새마을운동 하듯’ 막걸리를 만들던 시절의 사진들이다. 시큼하고 텁텁하고 트림과 두통을 유발했던 막걸리는 깔끔하고 담백하고 뒤끝이 좋은 술이 되어 최고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바야흐로 술도 진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 막걸리 제조서 포장까지

막걸리 제조과정
막걸리 제조과정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사진|김종원기자 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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