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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9월 5일 02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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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치 아픈 일은 다 잊어버리고 실컷 웃다가 한껏 찡해지기에 좋은 소설집이다. 200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박상 씨는 첫 소설집에서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엄연한 질서와 법칙들을 ‘니미 뽕’이란 한마디로 명쾌히 정리해 버린다. 문학적 엄숙주의를 거부한 채 가볍고, 부산하게, 끊임없이 웃긴다.
표제작은 불후의 타격 폼 하나로 프로야구까지 평정해 버린 이원식 씨의 일생을 다룬 작품이다. 이원식 씨는 오직 우스꽝스러운 타격 폼과 불쌍한 표정으로 투수를 교란해 점수를 내는, ‘100년이 넘어가는 한국 야구사에 한 명도 없었던’ 인물이다. 그는 상대 선수뿐만 아니라 심판, 관중까지 웃기면서 “야구는 진지한 자세로 해야 한다는 통념”을 허물어 버린다. 문제는 그것이 의도된 전술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아무도 이원식 씨를 타박하지 못했다. 이원식 씨는 달리다 넘어져 아웃되면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을 지으며 홈에서 1루까지 가는 주루선상에 주저앉아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야구를 하는 세상의 어떤 새끼보다 진지했던 것이다.’(‘이원식 씨의 타격 폼’에서)
‘춤을 추면 춥지 않아’는 실연당한 남자가 연인과 개다리 춤을 추며 재결합하게 되는 과정을 다룬 소설이다. 웃음을 터뜨리게 하든, 눈살을 찌푸리게 하든 그 이유는 그들이 진지하게 추고 있는 춤이 탱고도, 지르박도 아니라 하필 ‘개다리 춤’이란 사실이다. 이에 대해 작가의 해명은 이렇다.
‘순수한 사람들이나 아이들은 개다리 춤을 보면 본능적으로 따라 한다. 그래서 나는 개다리 춤을 출 줄 아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나쁜 사람은 아닐 거라고 항상 생각한다. 히틀러나 전두환이 개다리 춤을 췄을 리는 없을 테니까.’(‘춤을 추면 춥지 않아’에서)
생각해 볼수록 설득당하게 되는 이야기다. 이런 방식으로 작가는 ‘상식’ 혹은 ‘통념’이란 단어가 공공연히 배제시켜 왔던 하위문화와 주변부까지 넉살 좋게 끌어안는다. 강도가 칼을 들이밀며 “가지고 있는 시 다 내놔!”라고 협박하는 상황(‘가지고 있는 시 다 내놔’)이나 외계로 가는 문이 있다고 믿고 있는 열아홉 살 소녀(‘외계로 사라질 테다’)처럼 말이다. 때때로 ‘있음으로 없음을 증명하는 것, 눈에 보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불러내는 것들은 슬프다’(‘짝짝이 구두와 고양이와 하드락’)처럼 호흡을 고르며 던지는 문장들은 매력적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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