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인간을 꿈꾸게 하는 것 뚱뚱한 인물은 관능-여유 표현”

  • 입력 2009년 6월 23일 02시 58분


해마다 여름을 보내는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의 작업실에서 막 완성한 ‘누드 해변’이란 그림을 보여주는 작가 페르난도 보테로. 실제보다 과장되게 부풀린 형태의 인물과 동물 그림, 조각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보테로의 작품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 피에트라산타=고미석 기자
해마다 여름을 보내는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의 작업실에서 막 완성한 ‘누드 해변’이란 그림을 보여주는 작가 페르난도 보테로. 실제보다 과장되게 부풀린 형태의 인물과 동물 그림, 조각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보테로의 작품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 피에트라산타=고미석 기자
청동조각 ‘춤추는 사람들’ 앞에 자리한 페르난도 보테로.
청동조각 ‘춤추는 사람들’ 앞에 자리한 페르난도 보테로.
30일부터 한국 특별전 갖는 신구상주의 거장 페르난도 보테로 인터뷰

《이 마을에 3년간 살았다는 미켈란젤로가 걷던 골목이 오롯이 남은 듯한 풍경이다. ‘피사의 사탑’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피사에서 자동차로 25분 거리에 자리한 피에트라산타. 시간마저 멈춘 듯 고즈넉한 동네 한복판 광장을 가로질러 백발의 신사가 걸어온다. 카키색 재킷과 남색 남방, 베이지색 바지에 황토색 로퍼를 신은 멋쟁이 신사는 바로 콜롬비아 출신의 화가이자 조각가 페르난도 보테로(77). 사람과 동물을 실제보다 풍만하게 표현한 신구상주의 작품으로 지구촌을 사로잡은 우리 시대의 살아있는 거장이다. 프랑스 파리 등 여러 곳에 작업실을 둔 그는 해마다 여름이면 피에트라산타에 머문다. 대리석 산지 카라라와 가까운 이 마을의 이름은 ‘성스러운 돌’이란 뜻. 솜씨 좋은 장인들이 일하는 작업장이 몰려 있어 15세기부터 조각의 중심지로 꼽혔던 곳이다. 30일∼9월 17일 국립현대미술관 주최로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는 ‘보테로의 거대한 세계’전을 앞두고 그를 만났다.》

‘추상’이 독재하던 1960년대
미술관서 독학 ‘구상’ 외길
유럽서 주목 거장 반열 올라
전세계 60여 미술관서 전시

스페인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노대가는 유머와 해학이 담긴 작품처럼 소탈하고 다정했다. 빨간 소형차를 손수 운전해 브론즈 작업장과 자신의 모형을 보관하는 창고로 안내했다. 이어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프레스코화 습작과 캔버스가 어우러진 작업실을 지나 소박한 시골집 마당에서 그와 마주앉았다.

―문화적 혜택을 받을 기회가 없는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어떻게 화가의 길을 걷게 됐나.

“안데스 산맥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문화와 거리가 먼 환경이었으나 교회와 복제화를 통해 미술을 접하면서 그림에 대한 소명을 느꼈다. 스무 살에 유럽으로 건너가 미술아카데미를 접했으나 스스로 독학자라고 생각한다. 미술관에 가서 명화를 본 것이 주된 공부였고 다빈치와 앵그르 등 예술가가 예술에 대해 쓴 책을 읽으며 미술에 대한 이론과 지식을 쌓았다.”

―추상표현주의가 활개 치던 1960년대 뉴욕에서 활동하면서 시대에 뒤처진 양식처럼 여겨졌던 구상을 고집했다.

“돈 한 푼 없고 도와줄 사람 없고.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추상이 ‘독재’하던 시절이라 추상 아니면 작가 취급도 하지 않았고 화랑도 찾을 수 없었다. 미국에서 작품을 본 독일 화랑의 초청으로 전시회를 연 뒤 유럽에서 먼저 관심을 보였다. 예술가는 그 시대의 취향을 따르기보다 용기가 필요하다. 원하는 길을 가겠다는 자신감이 먼저고, 작품의 스타일은 그 결과물에 불과하다.”

―뚱뚱한 인물을 그리는 화가로 알려져 있다. 어떻게 풍만한 형태의 그림을 그리게 됐나.

“뚱뚱한 여자에 관심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아니다. 내 아내는 날씬하다.(웃음) 내 그림의 풍만한 형태는 르네상스 고전 양식의 전통과 맥이 닿아 있다.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혁명은 지오토가 회화에 볼륨과 공간을 도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세의 평면적 그림에서 벗어나 볼륨을 재발견한 라파엘로, 마사초, 프란체스카 등의 인물에서 길을 찾았다. 내 그림의 풍만한 형태는 관능미와 여유를 표현한 것이다. 처음 볼륨을 강조한 그림을 그렸을 때 사람들은 흉측하다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확신을 가졌기에 타협하지 않았다. 화가로 출발해 15년 동안 무명 시절을 보냈지만 지금은 전 세계 60여 개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면 남이 인정하지 않더라도 신념을 가져야 한다.”

―거장의 작품을 패러디하거나 현대사회를 풍자하는 작품도 발표했지만 남미의 삶과 정서가 가장 큰 주제다.

“나는 내가 아는 삶과 친숙한 공간을 그린다. 열아홉 살 때까지 고향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다. 그 과정에서 고향과 강렬한 영적인 공감대를 형성했다. 라틴아메리카는 내게 향수 어린 요소이자 소중한 매혹의 근원이며, 난 그 속에서 시를 건져 올린다.”

―미국의 위선을 고발한 ‘아부그라이브’ 시리즈 등 사회비판적 작업도 있다.

“정치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예술은 예술로서 격을 갖춰야 한다. 작품성과 예술적 가치를 갖추지 못한 예술이 어떻게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겠는가.”

―라틴의 정체성을 담은 작품을 발표하면서도 지역의 한계를 뛰어넘은 거장이 됐다.

“예술은 지역적인 것에서 출발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지역적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드러낸다. 스페인의 고야, 프랑스의 모네, 독일의 뒤러, 이탈리아의 보티첼리가 그랬다. 지역 화가로 출발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눈앞의 현실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보편적인 것을 표현해야 한다. 지역작가는 현실에 발이 묶여 있지만 보편성을 갖춘 작가는 다르다. 지역작가는 현실이 예술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보편적 작가는 그 너머 비전을 중시한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이란 사람들을 꿈꾸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리얼리티를 창조해 사람들이 믿게 하는 것이다. 인간을 한 계단 올라서도록 만드는 예술에서 나는 행복을 느낀다. 화가는 최고의 직업이다. 다시 인생을 살더라도 지금까지의 삶을 똑같이 반복할 것이다.”

일요일도 없이 날마다 8시간 이상 작업하면서도 “평생 지루함이란 모르고 살았다”는 노대가. 예술성과 대중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그에게 성공 비결을 물었다. 대답은?

“Work, Work, Work(오직 작업뿐이다)!”

피에트라산타(이탈리아)=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페르난도 보테로는…

부풀린 형태 회화-조각 유명
라틴풍에 유머-풍자 곁들여

1932년 콜롬비아 메데인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투우사 학교를 다니며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다. 19세에 첫 개인전을 열어 수익금으로 스페인에 건너갔다. 유럽의 미술관에서 만난 거장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고 멕시코에서 벽화운동을 접하면서 사람과 동물 등의 형태를 부풀린 고유의 양식을 정립한다. 추상이 휩쓸던 1960년대 미국 뉴욕으로 옮겨가면서 한동안 고전했으나 1966년 독일에서 개인전을 열면서 국제적 작가로 발돋움했다. 1970년대 이후 조각으로 영역을 넓혀 프랑스 파리와 뉴욕 등에서 야외조각을 선보여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라틴문화에 뿌리를 내린 작업에 독특한 유머와 풍자를 곁들여 20세기 위대한 거장으로 발돋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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