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꽃남의 비밀

  • 입력 2009년 3월 6일 02시 59분


동안… 넓은 이마+큰 눈+작은 턱 ≒ 아기 얼굴

턱선… 필살기 ‘살인미소’ 먹히려면 부드러워야

그 흔한 ‘브리지’ 한번 넣어 보지 않았던 김모 씨(38·회사원)는 난생처음 머리에 ‘헤어 롤’을 말았다. 김 씨는 군대시절 짧은 머리가 ‘힘’을 상징한다고 믿었다. 사회에 진출해서도 귀를 드러낸 짧은 머리가 자신이 속한 단단한 조직의 힘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그랬던 내가 파마를 하다니.”

미용실 의자 뒤에 선 아내는 짧게 말했다. “구준표 스타일로 예쁘게 말아주세요.”

다음 날 김 씨는 ‘씨익’ 웃었다. “이 나이에 무슨 주책이냐”던 김 씨는 회사 여자 후배들의 환대에 화창하게 웃었다. 그녀들은 김 씨를 ‘꽃남’이라고 불렀다. 단지 헤어스타일이 ‘구준표’를 닮아서가 아니다. 파마로 부풀려진 머리가 이마를 강조했고, 귀를 덮은 머리가 턱선을 흐렸다. 꽃남 얼굴에도 ‘공식’은 있다.

최근 꽃남 열풍이 거세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인기는 대한민국을 ‘꽃남 공화국’으로 만들었다. 전국 방방곡곡에는 ‘꽃남 폐인’이 된 ‘누나’들이 넘쳐나고, 성형외과에는 꽃남처럼 수술해달라는 남성 환자가 부쩍 늘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생겨야 꽃남이 되는 걸까? 헤어스타일만 바꾸면 꽃남일까? 이민호와 김현중은 꽃남이고, 박휘순과 한민관은 왜 꽃남이 아닐까? 꽃남 얼굴의 비밀을 ‘과학적으로’ 파헤쳐보자.

○ 공식1. 이마를 살리고, 턱선을 흐려라

“F4가 교복이 잘 어울리는 이유는 얼굴이 어려 보이기 때문입니다.”

연세대 인지과학연구소 박수진 연구원(박사 후 연구원)은 꽃남의 인기 비결로 동안(童顔)을 꼽았다. 구준표를 연기하는 이민호(22)를 비롯해 드라마 속 세 꽃남 김현중(23), 김범(20), 김준(24)은 모두 교복을 입었지만 스무 살이 넘었다.

그들은 생물학적인 나이와 상관없이 미소년의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고등학생을 연기하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다. 왜? 어려 보이니까.

박 연구원은 “이마가 넓고 눈이 클수록 어려 보인다”며 “아기 얼굴이 이런 특징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아기는 동글동글한 얼굴에 이마가 넓고 눈이 크다. 이런 특징은 인간의 아기뿐 아니라 포유류의 어린 새끼에서도 흔히 나타난다.

특히 아기와 어른의 가장 큰 차이는 어릴수록 눈이 크고 턱이 작아 턱선이 도드라지지 않는다는 점. 나이가 들면서 이마가 좁아지거나 눈이 작아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얼굴 상단부보다 하단부가 더 많이 발달하기 때문이다. 턱이 커지면서 젖니가 영구치로 바뀌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턱이 약간 짧아야 어려 보인다.

이른바 ‘셀카 얼짱 각도’의 비밀도 이마와 턱선이다. 45도 각도로 위를 쳐다보며 사진을 찍으면 예쁘게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어려 보이는 경향도 있다. 이것도 이마가 도드라지고 턱이 감춰져 짧아 보이기 때문이다.

단지 짧기만 한 턱은 오히려 매력이 없다. 서울 강남 지역에 있는 에뜨성형외과 박흥식 원장은 “부드러운 턱선도 꽃남의 필수 조건”이라고 덧붙였다.

최민수를 비롯해 1990년대를 주름잡던 ‘터프 가이’들은 대개 남성적인 이미지가 강했고, 턱선이 굵어 얼굴 윤곽이 뚜렷했다.

글=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디자인=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두루 갖춘 구준표’ 번식상대로 유리

결혼생활엔 ‘다정다감 윤지후’ 적합

반면 요즘 꽃남으로 불리는 배우치고 얼굴 윤곽이 ‘쎈’ 사람은 드물다. 그중에서도 특히 아래턱 윤곽이 부드럽다. 박 원장은 “‘원조 꽃남’인 장동건이나 송승헌, 조인성 같은 배우는 해부학적으로 턱선이 부드럽고 위턱과 아래턱이 조화롭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렇게 부드러운 턱선을 가져야 꽃남의 필살기인 ‘살인미소’가 제대로 먹힐 수 있다.

이민호는 다르다고? 박 원장 분석에 따르면 이민호의 아래턱부분 윤곽은 실제로 약간 돌출된 결과를 보인다. 그러나 그 정도가 심하지는 않다. 한국인이 선호하는 남성상에 적합한 수준. 그 대신 이민호의 ‘봐줄 만한’ 턱선은, 구준표의 까칠한 성격을 오히려 매력적으로 만든다.

○ 공식2. 어리면 예쁘고, 예쁘면 착하다.

드라마 속 구준표는 툭하면 “꺼져”를 연발한다. 그 잘생긴 얼굴로 “서민 주제에”를 내뱉는다. 단숨에 싸가지 없는 남자의 최고봉으로 떠올랐다. 그래도 ‘누나’들은 TV 화면을 떠나지 못한다. 그 멘트가 실제 ‘나’를 향하더라도 모두 용서해 줄 준비가 됐다. 부드럽고 따뜻한 캐릭터의 윤지후라면? 두말하면 잔소리다. 이상하다고? 심리학과 진화론은 그게 맞다고 설명한다. 누나들, 너무 자책하지 말지어다.

연세대 인지과학연구소 박 연구원은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사람은 선량하고 정직하며 재주도 많을 거라고 생각하는 심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후광효과(halo effect)’라 부른다. 꽃남은 얼굴만으로도 호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

특히 구준표의 경우 재벌가 후계자로 돈도 많다. 승마, 검도, 골프, 스쿼시 등 운동도 잘한다. 게다가 심금을 울리는 피아노 실력까지. 재력과, 체력과, 실력을 갖췄다. 동화 속 왕자도 이보다 좋을 순 없다. 드라마 ‘겨울연가’의 ‘욘사마’와 다른 점은 그놈의 까칠한 성격. 그러나 박 연구원은 “모든 조건을 다 갖췄는데 구준표처럼 성격만 까칠한 경우 사람들은 오히려 인간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누나들은 구준표가 금잔디를 울려도, 금잔디를 버려도 한없이 용서해 줄 수 있다.

꽃남을 향한 열광은 진화론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박 연구원에 따르면 “미인, 미남을 보고 즐거운 것은 잠재적인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행동”이다. 진화론이 설명하는 개체의 존재 이유가 유전자의 번식이라면, 진화적으로 성공한 미인 미남을 취해야 유리한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눈이 크면 얼굴이 더 어리고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는 ‘특질 미인 가설’로 설명할 수 있다. 이 가설은 커다란 눈이나 도톰한 입술처럼 미인의 특질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얼굴에서 두드러지는 이런 특질은 젊고 건강함을 나타낸다. 이것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후손을 얻는 데 유리하다고 해석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어릴수록 더 아름답다’는 관계가 성립하는 셈이다.

다만 구준표는 실제 결혼상대로는 결격 사유가 있다. 구준표의 까칠한 성격은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관계 형성에 있어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박 연구원은 “번식에 있어서 유리할 수 있겠지만 아이를 돌보고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차원에서는 다정다감한 윤지후 같은 스타일이 훨씬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결혼은 현실’, ‘부부는 닮는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진화론적으로 결혼의 지속성을 따진다면 존재의 유사성이 필수다. 취향이나 경제적인 능력, 교육 수준이 비슷해야 한다는 뜻. 외모도 마찬가지다. 외모의 친숙성 효과는 닮은 사람끼리 만나게 한다. 만약 구준표와 금잔디가 결혼한다면 수준 차이와 달리 ‘외모의 친숙성 효과’ 때문일 것이다.

○ 공식3. 꽃남에도 유행이 있다.

한때, 비(정지훈), 이준기, 정일우 등이 새로운 형태의 꽃남이었다. 쌍꺼풀 없는 길쭉한 눈. 가느다란 입술. 그러나 구준표 역의 이민호는 이와 반대다. 짙은 쌍꺼풀의 동그란 눈과 굵은 입술을 지녔다. 꽃보다 남자 F4의 눈 크기는 영화 ‘워낭소리’ 주인공인 착한 소를 닮았다.

‘순정만화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비현실적인 외모’. F4를 설명할 때 종종 따라붙는 수식어다. 한국인의 얼굴을 연구해 온 조용진 얼굴연구소장(한서대 객원교수)은 “F4의 외모는 전형적인 한국인 얼굴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에 따르면 한국인의 얼굴은 대체로 이마가 좁고 눈썹이 흐리며 눈이 작고 턱이 길다. 이에 반해 F4 리더인 구준표 역의 이민호는 넓은 이마와 짙은 눈썹, 큰 쌍꺼풀의 눈, 그리고 짧은 턱을 가졌다. 최근 이런 얼굴이 ‘꽃남’으로 인기를 끄는 이유가 뭘까.

‘꽃남’이 되기 위해서는 3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시각적으로 익숙하면서도 사회적인 가치관에 부합해야 하고 이성으로서의 매력도 풍겨야 한다.

조 소장은 “순정만화에 나오는 완벽한 미남이 실제 현실에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순정만화에 익숙한 젊은 세대가 이민호 같은 얼굴을 친숙하게 느끼는 것”이라며 “미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전 시대에도 큰 눈과 오똑한 콧날 등의 ‘완벽한 미남’들은 있었다. 과거 신성일, 남궁원 등 서구적 마스크라 불렸던 미남들의 전형이 존재했지만 이들은 구준표와 또 다르다. 조 소장은 “당시 미남들이 남성성을 강조하던 캐릭터를 지녔다면 현재 꽃남은 어리면서도 여성적인 매력을 함께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난생 처음 머리에 ‘구르프’를 말았던 김씨는 꽃남이 됐다. 그를 꽃남으로 만든 것은 구르프가 아니라 사실 그의 아내였다. 아내는 말했다. “‘꽃보다 남자’가 아니라 역시 ‘꽃보다 남편’”이라고. 꽃남에도 공식은 있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동아닷컴 박영욱 기자


▲동아닷컴 박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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