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 있어도 힘 모아진다면 민주주의는 됩니다”

  • 입력 2009년 2월 19일 02시 58분


5·18 사형수 구명요청김수환 추기경(왼쪽)은 회고록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에서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사형수들을 구명하려고 윤공희 대주교(오른쪽)와 함께 전두환 대통령을 여러 차례 만나 설득했었다고 밝혔다. 그 사형수들은 모두 1981년 4월 감형되거나 석방되었다. 사진은 회고록에 실린 김수환 추기경과 전두환 대통령의 면담 장면. 사진 제공 천주교 서울대교구
5·18 사형수 구명요청
김수환 추기경(왼쪽)은 회고록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에서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사형수들을 구명하려고 윤공희 대주교(오른쪽)와 함께 전두환 대통령을 여러 차례 만나 설득했었다고 밝혔다. 그 사형수들은 모두 1981년 4월 감형되거나 석방되었다. 사진은 회고록에 실린 김수환 추기경과 전두환 대통령의 면담 장면. 사진 제공 천주교 서울대교구
명동성당 찾은 전두환 전 대통령18일 서울 명동성당 김수환 추기경의 빈소를 찾은 전두환 전 대통령. 사진공동취재단
명동성당 찾은 전두환 전 대통령
18일 서울 명동성당 김수환 추기경의 빈소를 찾은 전두환 전 대통령. 사진공동취재단


DBS 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편 전체 목록
(1980.04.01~1980.04.23 방송)

‘80년 서울의 봄’ 당시 DBS 金추기경 육성 다시 듣는다

23회 5시간 45분 분량

《김수환 추기경이 동아방송 ‘DBS초대석’에 출연한 1980년 4월 당시 한국의 정치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격동 그 자체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당시 보안사령관과 중앙정보부장 서리를 겸직하면서 신군부 세력은 정권 찬탈 의도를 드러냈고, 사북광업소 광원들이 경찰과 격렬히 대치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등 혼돈스러웠다. 이런 시대 상황에서 김 추기경은 ‘DBS초대석’을 통해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신념을 보이며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동아일보 창간 60주년이었던 4월 1일 첫 대담에서는 “동아일보는 민족지로서, 동아방송은 사회적 공기 역할을 한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며 축하하기도 했다.》

○ 종교관 “다른 사람의 신념 존중해야”

김 추기경은 “정의롭고 자유로운 사회를 위해 이바지하고 희생할 각오를 해야 한다”며 종교인들의 행동을 촉구하면서도 종교가 정치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경계했다. “정치인이 올바른 정치를 하도록 지원하고, 그렇지 못할 때는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 맞다”며 종교 본연의 길을 강조했다.

특히 그는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종교인이었다. 김 추기경은 “종교인들이 자기가 믿고 있는 것을 절대시하기 때문에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는 측면이 있다. 그렇지만 종교인이야말로 마음을 열고 다른 사람의 신념과 믿음을 존중해야 한다”며 열린 마음을 가질 것을 설파했다. 김 추기경 자신도 젊은 시절 불교와 유교 공부에 몰두한 적이 있다며 종교의 근본에는 일맥상통하는 원리가 있다고 보았다.

○ 정치관 “민주주의는 반드시 가야 할 길”

김 추기경은 헌법 개헌 논의가 진행되던 당시 ‘대통령 중심제’를 지지했다. 김 추기경은 “대통령제가 강권통치로 귀결되는 시행착오를 겪기는 했지만 우리가 이미 해오던 대통령 중심제를 계속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고, 이는 민주화는 점진적으로 발전해 가는 과정이라는 인식에 기반을 둔 것이다. 또한 국민에게는 “제도 마련에 앞서 준법정신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으며, 3김 씨 등 정치인들에게는 “꼭 내가 대통령을 해야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누가 되든지 나라가 잘되는 데 봉사한다고 생각하면 어려울 것이 없다”고 조언했다.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서울대교구장을 할 당시 평양교구장을 겸임했지만 북한 천주교 신자들의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남북 대화나 이산가족 교류를 갈망한 김 추기경은 “김일성이가 민족의 지도자를 자임한다면 조금 더 대범해져야 한다”고 따끔하게 충고했다.

또한 동아방송이 북한으로도 전송되느냐고 묻고 “북한의 마음의 장벽을 뚫고 들어가는 게 중요한데 이를 위해 매일 기도한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기도뿐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해 청취자들을 숙연하게 했다.

○ 사회관 “노동자를 인격으로 대해야”

김 추기경은 방송 막바지인 4월 21일 발생한 ‘사북사태’에 대해 진심으로 슬퍼했다. 김 추기경은 “경제 성장의 와중에서 우리는 박봉에 허덕이며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존재를 잊고 살아왔다”면서 “노동자에 대한 충분한 보상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소외를 이해하고 인격적으로 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김 추기경은 “노동3권이라고 하는 것은 노사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근로자를 인간으로 보고 그들을 살리는 데에 필요하다”며 당시로는 상당히 앞선 주장을 펼쳤다.

또한 “우리가 공장에서 나오는 상품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 귀한 인간은 공장에서 폐물이 되어 나온다”고 개탄했는데, 그 무엇보다 인간을 우선시하는 휴머니스트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최근 논란이 다시 점화된 사형제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정치적인 의미의 확신범과 양심범에 대한 사형 집행은 절대로 안 된다”고 말했다.

○ 인간 김수환 “청년 때 가까웠던 여인”

김 추기경은 일본 조치(上智)대 유학 중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학병으로 끌려갔다 광복 후인 1946년 12월 18일 귀국했다. 김 추기경은 14∼16일 방송분을 통해 당시 상황을 소상히 회고하면서 ‘청년 김수환’ ‘인간 김수환’의 모습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김 추기경은 광복 직후 조국의 첫인상을 ‘배고픔과 혼란’으로 기억했다. “귀국선을 타기 전에 창고에 사흘간 갇혀 건빵 하나로 버텼고 귀국선에서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부산 땅을 밟아 무엇보다 배고픔이 견디기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하선 허락이 떨어지지 않아 다시 하루를 배에 갇혀 지냈고 하선한 뒤에도 창고에 갇혀 있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풀려났다고 기억했다.

김 추기경은 “그 길로 우연히 형(김동한)이 신부로 있던 성당을 찾아가게 되었고 며칠 만에 밥을 먹을 수 있었다”며 형과의 감격스러운 해후도 설명했다. 김 추기경은 “이후 고향 대구로 가는 기차 내부 유리창과 시트가 뜯겨져 나간 것을 보면서 우리 민족이 왜 이러나 싶었다”며 조국의 혼란상을 보며 느낀 당혹감과 좌절감도 토로했다.

또한 1947년 9월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대구와 부산을 오가며 지내는 9개월 동안 형이 신부로 있는 성당에서 만난 한 여인과 가깝게 지냈던 사실도 공개했다. 김 추기경은 “밖에서 생각하듯 재미나는 스토리는 없지만 니체에 심취해 허무주의에 빠졌던 여인에게 신앙적인 조언을 하며 가까워졌다”면서 “지인을 통해 그 여인의 마음을 전해 들었다”고 고백했다.

이 밖에 “어릴 적에 만화책 읽기를 좋아했고 지금도 신문 볼 때 만화부터 본다” “통행금지령을 모르고 밤늦게 집에 돌아가다 경찰과 대판 싸웠다” 등 소탈하고 유머러스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 ‘DBS초대석’

당대 최고명사들 출연… 신군부 억압으로 폐지

‘DBS초대석’은 동아방송(DBS)이 1975년 9월 12일 시작한 대담 프로그램으로, 대담자는 당시 동아일보 논설주간이었던 권오기 전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이었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등 당대 최고의 명사들이 출연해 자신의 삶과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었다.

1977년 3월 31일 이후 잠시 중단됐다가 ‘서울의 봄’을 맞아 동아일보 창간 60주년이었던 1980년 4월 1일 ‘김수환 추기경 편’부터 부활했다. 김 추기경에 이어 다음 출연자는 당시 민주화의 열망을 업고 유력한 정치 지도자로 떠올랐던 ‘3김 씨’. 김종필 전 국무총리와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등의 순으로 출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3김의 초대석’은 결국 완성되지 못했다. ‘김종필 편’만 5월 1∼19일 방송됐을 뿐 5·17 비상계엄 확대와 주요 정치 인사 연행, 신군부의 억압으로 결국 DBS초대석도 문을 닫았다. 녹음은 했으나 방송되지 못한 ‘김종필 편’ 마지막 20회의 제목은 ‘여자와 정치’.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김종필 전 총리가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과의 인연 등을 이야기한 부분이었다.

권 전 부총리는 “김수환 추기경은 많은 사람이 어려운 ‘어르신’으로 생각하지만 직접 대화를 나눠 보면 소탈한 형님 같았다”고 말했다.

동아닷컴(www.dongA.com) DBS 코너에서는 당시 매일 15분씩 23일간 방송됐던 총 5시간 45분 분량의 김 추기경 대담을 직접 들을 수 있고 이를 글로 풀어낸 텍스트 자료도 볼 수 있다.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영상취재 :동아일보 사진부 전영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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