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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2월 12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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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고장이나 하찮은 유적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하지만 신당과 제사터에 정성을 바치는 주체는 국가 권력이 아니었다. 이 책은 한 줄 남짓 되는 지리지 사묘조의 내용을 펼쳐 보이는 작업이며, 지배계급이 무성의하게 처리한 민중의 정신사를 돋보기로 보는 것이다.” 》
神으로 모신 민중의 영웅
대왕신앙은 일차적으로는 왕조시대 임금을 경외해 신으로 모시는 행위와 믿음을 뜻한다. 하지만 반드시 임금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민간 전설 속에 남은 비운의 영웅들과 마을을 둘러싼 숲, 산, 하천 등이 모두 대왕신앙의 범주에 속한다. 제단이나 당집이 없는 경우도 있고 건물이 있더라도 신상 위패 탱화를 모시거나 이들을 이중으로 설치하기도 한다. 그 개념이나 모습이 일정하지 않은 것이다.
저자는 고대국가 초기부터 존재했던 대왕신앙의 종류와 향유 형태를 사료와 답사 등을 통해 정리했다. 사료에 기록된 대왕신, 마을신앙으로 남아 있는 대왕신, 대왕신으로 모셔지는 인물과 임금들, 무속과 불교에서의 대왕 등을 수록했다.
대왕신을 모신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올라가지만 고려시대 이후 더 풍부해진다. 저자는 고려사, 신증동국여지승람, 세종실록 등을 사료로 활용했다. 이 사료에서는 삼국시대 백제의 대왕포, 고려시대 개성의 송악산을 비롯해 조선시대 현풍 성황사, 안변 성황사 등이 대왕으로 불렸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저자는 또 현지 조사를 통해 마을의 신앙으로 남아 있는 대왕신앙을 정리했다. 강원 양양군 현남면 웃달내마을의 경우 여자들만 대왕터로 불리는 산에 올라가 늙은 소나무에 제사를 지낸다. 이들 대왕은 집안 성씨를 따서 김씨 대왕, 조씨 대왕 등으로 불린다. 웃달내마을의 신앙은 신당이 없는 소박하고 원초적인 모습으로 조직화되지 않은 단계의 신앙 형태다. 웃달내마을의 신앙은 반세기 전에 사라지고 없지만, 저자를 비롯한 답사자들의 요청으로 진행된 제사 장면을 촬영한 사진이 함께 실려 있다.
강원 원주시의 가매기마을의 경우에는 서낭당 이름이 ‘대왕당’으로 돼 있었다. 역사상의 대왕이 아니라 신을 모시는 것을 ‘대왕’이라고 일컬은 경우다.
역사 속의 인물을 대왕신으로 모시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강릉 최씨 문한공파의 시조인 최문한이 그 예다. 그는 포악한 성황신의 횡포에 맞선 강직함 덕분에 마을 사람들에게 성황신보다 먼저 제를 받게 됐다고 한다. 강릉시 북쪽 마명산에 그의 무덤이 있기 때문에 그는 마명산신이자 대왕으로 불리게 됐다.
대왕신으로 모셔지는 임금이나 장군으로는 수로왕, 문무왕, 견훤 등이 있다. ‘동해의 큰 바위에서 화장했다’는 문무왕에 대한 삼국사기의 기록은 이후 전설적 요소들과 맞물리며 대왕신앙으로 굳어졌다. 동해 신을 모시는 감은사와 대왕암의 존재, 문무왕이 사후 호국룡으로 변했다는 민간 설화가 영향을 미쳤다.
무속이나 불교계의 대왕으로는 무속의 대왕, 오구굿 계통의 대왕 등이 있다. 죽은 사람의 넋을 위로하는 오구굿 중에는 여러 대왕이 등장한다. 궁업대왕, 업비대왕인데 정확한 뜻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죽은 사람을 상대하는 저승귀신으로 추정된다.
중국과 일본의 대왕신 자료와 경북 상주시 화서면 하송리에서 이뤄지는 견훤대왕 동제 관련 인터뷰 등도 참고자료로 실렸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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