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낯선 언어의 절규’

  • 입력 2009년 1월 31일 02시 59분


평범하고 범용성이 넘실대는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는 때로 무중력의 장소, 세계의 바깥으로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한다. 이 소설에 따르면 이런 충동에 의해 이뤄지는 모든 일탈이 ‘안드로메다’적인 시도다. 낯선 언어에 탐닉함으로써 일탈을 시도했던 숙부는 결국 블랙홀 같은 그 세계에 삼켜지고 말았다. ‘퐁파!’란 절규를 남긴 채. 동아일보 자료 사진
평범하고 범용성이 넘실대는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는 때로 무중력의 장소, 세계의 바깥으로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한다. 이 소설에 따르면 이런 충동에 의해 이뤄지는 모든 일탈이 ‘안드로메다’적인 시도다. 낯선 언어에 탐닉함으로써 일탈을 시도했던 숙부는 결국 블랙홀 같은 그 세계에 삼켜지고 말았다. ‘퐁파!’란 절규를 남긴 채. 동아일보 자료 사진
◇ 안드로메다 남자/스와 데쓰시 지음·양윤옥 옮김/188쪽·9000원·들녘

2007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인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아직까지 여기저기 논밭이 남아 있는 동네를 버스는 잠이 덜 깬 듯 느릿느릿 달려갔다,라고 쓴 참에 느닷없이 ‘퐁파!’하고 왔다. …요컨대 이렇게 초장부터 ‘퐁파!’라는 식으로 나와서야 이대로 소설을 계속 써내려 갈 마음도 싹 가신다.”

메타소설의 형식을 갖춘 이 작품은 소설의 도입부에서부터 비문과 함께 ‘퐁파!’란 뜬금없는 단어를 등장시켜 독자를 당혹스럽게 한다. 두세 번 읽어도 이해가 가지 않는 문장이 다짜고짜 튀어나온 전후 사정은 이렇다.

작가이자 화자인 ‘나’는 ‘퐁파’와 연관된 숙부의 삶을 소설로 써내기로 마음먹지만 실패한 초고 더미만 수북이 쌓인다.

숙부의 전위적인 삶을 표현하기에 작가가 자신과 무관한 척 시치미 뚝 떼고 작위성 강한 소설을 써내려 가는 것이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자는 결국 작가로서의 소설쓰기 과정을 그대로 노출시키면서 자신이 썼던 초고와 초고의 바탕이 된 숙부의 일기장을 인용해오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써간다.

화자가 말하는 숙부의 ‘전위적인 삶’이란 그의 특이한 언어생활을 이른다.

평범한 엘리베이터 기사인 숙부는 가끔 돌발행동을 했는데 그것은 느닷없이 “퐁파!”라고 외치며 벌떡 일어난다거나 “그러니까 그건 즉 타퐁튜야” “말을 바꾸자면 그건 체리파하…야”라는 식으로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말을 한다는 점이었다.

이런 단어들의 정확한 쓰임을 아는 사람은 오직 숙부뿐이며 숙모조차 상황을 반추해 의미를 짐작만 해볼 뿐이다. “퐁파에 속해 있다” “퐁파적인 무엇무엇” 혹은 “호에 먀우?” 등의 기이한 언어, 즉 안드로메다의 언어를 쓰던 숙부의 증상은 숙모가 뜻밖의 교통사고로 숨진 후 점차 심해진다.

숙부의 기행동은 어릴 적 말더듬이로 언어장애를 겪었던 경험과 연관이 있다. 원하는 단어를 제대로 발음할 수 없던 숙부에게 언어는 ‘세계의 본질을 구성하고 기능하게 하는 모종의 문법’이었다. 하지만 말더듬이를 벗어난 후부터 언어는 오히려 사용자를 ‘법칙 안에 옭아매고 가두려고 하는’ 억압이 돼 버렸다.

정형화와 작위를 벗어나고자 숙부가 선택한 것이 자신만의 ‘안드로메다 언어’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안드로메다 언어 역시 꾸준한 사용과 함께 ‘작위성’ ‘범용성’을 띠게 되고 그 자체가 정형의 대상이 되는 모순에 봉착한다.

갈등이 정점에 이른 숙부는 ‘퐁팟카퐁파, 퐁팟카퐁파, …헤에∼, 라나?’ 등 정신분열 수준에 가까운 일기와 시를 쓰다가 종적을 감추고 만다.

세상과 소통 불능의 상태를 ‘귀에 달라붙기는 쉬우면서 그 자체는 전혀 의미를 갖지 않는’ 낯선 언어를 통해 극복하려 했던 숙부의 시도는 언어뿐 아니라 삶의 진부함을 떨쳐내고 싶은 이들의 몸부림을 상징하기도 한다.

괴상한 언어로 타인을 당혹스럽게 하는 숙부의 돌출행동이 희극적일 뿐 아니라 작중 화자가 작가로서의 자의식을 노출시키는 곳곳(자신의 초고를 인용한 뒤 산만한 묘사를 스스로 질책하는 등)에서 웃음이 터진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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