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썼던 3년은 인생의 폭풍기…이제 혼란스러웠던 내면 이해”

  • 입력 2008년 11월 4일 02시 54분


소설집 낸 힙합그룹 ‘에픽하이’ 리더 타블로

“글을 썼던 1998년부터 3년간은 제 인생의 폭풍기였어요.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지만 그때 썼던 글만은 가장 순수한 것 같아요. 지금 다시 그 글을 들춰 보니 당시에는 혼란스러웠던 것들을 이제야 보듬고 이해할 수 있게 됐네요.”

힙합그룹 ‘에픽하이’의 리더 타블로(본명 이선웅·28·사진)가 첫 소설집 ‘당신의 조각들’을 펴냈다. 그는 미국 스탠퍼드대 창작문예학과와 동 대학원 영문학과를 나왔다. 소설집은 뒤늦게 ‘전공’을 살린 셈이다.

이 책은 출간 전부터 8000부가 예약 판매돼 인터넷 서점 ‘YES24’가 집계한 베스트셀러 4위에 올랐다. 책은 4일 출간된다. 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책도 음반도 나오기 전에 반응이 뜨거운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 뉴욕 가상 배경의 성장소설

‘안단테’ ‘스트로베리 필즈 포에버’ ‘최후의 일격’ ‘쥐’ 등 10편의 단편 소설을 묶은 ‘당신의 조각들’은 뉴욕을 가상 배경으로 쓴 성장소설이다. 영어로 원문을 썼으며 한국어 번역도 직접 했다. 치매 할아버지, 천재 피아니스트, 여배우 지망생과 하룻밤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는 영화감독 지망생 등 다양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의 말을 빌리면 “뭔가 비뚤어진 사람들”이다.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도 그걸 드러내지 않을 뿐 누구나 내면에 결함과 아픔을 가지고 있어요. 뭔가 나의 일부가 고장 난 것 같은, 꿈이 있는데도 왠지 두려운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의 메마른 어린 시절을 반영하듯 이 책은 화려한 수사가 배제된 무미건조한 문체가 특징이다. 그도 “알아듣기 쉽지만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문체”라고 설명했다.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묻자 마치 남의 얘기를 꺼내는 듯 무덤덤했다. “백인 애들이 전학 첫날 절 나무에 묶어 놓더니 우산으로 팼어요. 아버지는 이겨내야 한다고 하셨지만 그때부터 모든 것에 대한 반감이 싹텄고 심오한 반항이 시작됐죠.”

1980년생인 그는 사업을 하는 부모를 따라 인도네시아, 스위스, 홍콩, 캐나다, 미국을 돌아다녔다. 한 해 걸러 다른 나라로 전학을 가기도 했다. 중학교 때 다닌 캐나다 사립학교에서는 퇴학을 당해 한국으로 왔다.

하지만 온갖 차별과 외로움 속에서도 그를 배신하지 않은 건 글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창작문예반에 들어가며 글에 대한 재능을 발견했다고 한다. 서울에 있는 ‘외국인 학교’에 재학하며 폐간된 교내 문학잡지 ‘망원경’을 되살려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 “어른을 위한 동화 쓰고 싶어”

그는 “앞으로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써 보고 싶다”며 작가든 가수든 자신의 앞일을 구분 짓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어릴 적부터 선생님과 교수님들 사이에서 저는 이미 아마추어 작가였어요. 글을 잘 쓰면 나이를 떠나 동등하게 대접해 줬어요. 제3자가 보기에는 제가 가수에서 작가로 변신한 것일 수 있죠. 하지만 제가 옷을 갈아입은 건 아니에요. 그냥, 저는 저예요. 랩과 소설, 모든 게 나의 조각들이고 삶이 지속되는 한 조각들은 하나로 완성되지 않을 것 같아요.”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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