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성숙해진 지킬박사 - 엠마 기대하세요”

  • 입력 2008년 10월 30일 02시 59분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 출연하는 배우 김소현 씨(왼쪽)와 류정한 씨는 “우리가 2004년에 처음 출연해 뮤지컬 스타로 발돋움하게 된 작품”이라며 애정을 보였다. 박영대 기자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 출연하는 배우 김소현 씨(왼쪽)와 류정한 씨는 “우리가 2004년에 처음 출연해 뮤지컬 스타로 발돋움하게 된 작품”이라며 애정을 보였다. 박영대 기자
《류정한과 김소현.

이들은 2001년 '오페라의 유령'으로 시작된 국내 뮤지컬 바람의 상징적인 존재들이다.

김소현은 수 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여주인공 크리스틴에 캐스팅돼 화제를 일으켰고 라울 역의 류정한은 주인공 '팬텀'보다 인기가 높았다.

이들은 2004년 국내 초연된 '지킬 앤 하이드'에도 출연하며 스타 반열에 올랐다. 그리고 4년 뒤 이들은 11월 14일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같은 뮤지컬에서 지킬 박사와 약혼녀 엠마로 다시 만난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서 4년만에 다시 만난 류정한-김소현 씨

"운동장에서 '동해물과'라고 하면 1초 후에 '동~해~물~과~'라고 저쪽에서 들려. 여기에 맞추면 한없이 느려지니까 그냥 신경 쓰지 말고 불러."

28일 서울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들은 뜻밖에 애국가 레슨이 한창이었다.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리는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김소현 씨에게 선배 류정한 씨가 조언을 자청한 것. 공교롭게도 지난해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는 류 씨가 애국가를 불렀다.

4년 만에 같은 무대에 서는 이들은 서로에 대한 감회를 드러냈다.

"오랜만에 봤더니 소현이가 많이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에는 철없는 부잣집 막내딸 같았는데 연습 때 보니 연기나 노래에 예전과 다른 깊이가 있더군요"(류) "연습 3일째 처음 나란히 앉게 됐는데 선배가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셨어요. 예전에는 철없이 장난을 주고받던 선배였는데 무게감이나 연륜이 느껴졌어요."(김)

자신들이 뮤지컬 스타로 성장하는 발판이 된 '지킬 앤 하이드'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지킬 박사 역은 남자배우를 가장 멋있게 만들어주는 캐릭터예요. 지킬과 하이드라는 두 가지 캐릭터를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 매력적이죠. 욕망과 도덕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든 사람들의 자아가 투영되어 있거든요. 초연부터 이 자리를 지킨다는 자부심이 있어요."(류)

"많은 작품에서 주연을 맡았지만 여전히 '지킬 앤 하이드'의 엠마 역으로 기억하는 분들이 많아요. 출연 비중이 많지는 않지만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관객들에게 남겨야하니까 오히려 주연 때보다 더 부담되기도 해요."(김)

얼마 전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김 씨는 "뮤지컬을 한지 7년째인데 당시 초등학생이던 팬이 이제 대학생이 됐다고 연락한다"면서 "이런 팬들 때문에 더욱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류 씨는 "좋은 일이니 충분히 축하를 받고 즐겨야한다"면서도 "배우에게는 상이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된다"고 충고했다. 이런 스스럼없는 조언이 가능한 것은 두 사람은 서울대 성악과 선후배 출신이기 때문이다. 류 씨는 91학번, 김 씨는 94학번이다.

두 사람은 성악과 출신이기 때문에 뮤지컬 데뷔는 비교적 수월했지만 그 후로는 끊임없는 연기력 논란에 시달렸다. 그들은 그동안 섭섭한 감정을 비췄지만 이번에는 다른 반응이었다.

"그 때는 그게 너무 싫었어요. 제가 연기를 잘 하는 건 아니지만 그토록 욕을 먹을 정도인가 생각했죠.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다 맞는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나이를 먹고 연륜이 쌓이니까 열심히 하면 되는 건데 너무 민감했던 것 같아요."(류정한)

"지난 3년간 사극 '왕과 나'와 연극 '미친키스'에 출연하며 성악과 출신 딱지를 떼려고 무진 노력했어요. 그리고 내린 결론은 배우가 다양한 면을 갖추기도 해야 하지만 자신이 장점으로 보일 수 있는 부분에 깊이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였어요."(김소현)

두 사람은 작품 외에는 거의 접촉이 없다. "서울대 출신이 원래 그렇다"며 농담을 건넨 류 씨는 "그동안 주변을 챙기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니 내가 해야 할 역할들이 보인다"고 말했다.

"저는 누릴 걸 다 누렸어요. 운이 좋았죠. 그러나 이제 거품이 빠져야합니다. 스태프나 배우들은 부족한데 너무 많은 작품이 오르니 실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도 오르고 있어요. 또 비싼 뮤지컬 티켓 가격이나 20~30대 여성팬 들이 관객의 80%를 차지하는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뮤지컬은 얼마 가지 못합니다."

배우로서 서로에 대한 느낌을 묻자 류 씨는 "소현이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순수함"이라면서 "언제나 더 나은 모습을 기대하기 때문에 최고의 여배우라는 말은 아끼겠다"고 말했다. 김 씨는 "선배님의 목소리는 느커피에 있는 거품처럼 느끼하지도 담백하지도 않은 부드러운 목소리"라며 "'오페라의 유령' 당시 240회 공연을 소화한 이 보물 같은 목소리가 공연계에 계속 남아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뮤지컬 계에서 비교적 높은 개런티를 받는 이들은 "언제 밥줄이 끊길지 모르니 대비를 해야 한다"며 자산 관리의 중요성을 말하는 이들에게 주식과 펀드 이야기를 물어봤다.

"저는 다행히 주식에는 손을 안 댔어요. 수익이 적더라도 확실히 보장되는 예금이 더 나아요."(김)

"말 마세요. 속이 썩어 들어갑니다."(류)

유성운기자 polaris@donga.com


▲ 동아일보 문화부 유성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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