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56년 한국 최초 패션쇼

  • 입력 2008년 10월 29일 03시 02분


6·25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1956년 10월 29일, 서울 을지로의 반도호텔 다이너스티룸(지금의 롯데호텔 자리).

여류 소설가 김말봉이 사회를 맡았고 작곡가 박춘석이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어 당시 최고의 인기 배우였던 조미령 최은희와 모델 박현옥(1957년 초대 미스코리아 진) 등이 화려한 의상을 입고 무대에 등장했다.

한국 최초의 패션쇼였다. 모든 것이 부족해 미군의 군복을 얻어 물들여 입기만 해도 과분했던 그 시절, 패션쇼는 놀라움 자체였다.

6명의 모델은 50여 벌의 의상을 입고 사람들 앞에 선보였다. 의상은 대부분 잘록한 허리선을 강조한 것들이었다. 양장 패션이 낯설었던 탓에 모델들은 뒷단추 옷이나 스커트의 앞뒤를 바꿔 입는 등 해프닝이 일기도 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즐거웠고 여기저기 갈채가 쏟아졌다. 힘겹고 궁핍했던 시절, 가난을 잊고 화사한 희망을 꿈꾸게 해 준 특별하고도 매력적인 이벤트였기 때문이다. 한국 최초의 패션쇼를 진행한 사람은 디자이너 노라노(본명 노명자) 씨였다. ‘노라’는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1948년 미국으로 건너가 로스앤젤레스에서 디자인을 배운 노라노 씨는 1950년대 초에 이미 ‘노라노 꾸뜨리에’와 ‘노라노의 집’이란 양장점을 열어 국내에 양장을 본격 소개한 1세대 패션디자이너. 그의 주요 고객은 주한 외교관 부인들이었다.

이해랑 김동원 황정순이 활약하던 극단 ‘신협’의 전속 디자이너로도 활약했다. 인기 가수 ‘펄시스터즈’에게 판탈롱을 입혔고 윤복희에게 미니스커트를 입히는 등 한국 패션계의 대모로 자리 잡았다. ‘노라노 양재학원’이란 이름의 학원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것도 모두 그의 명성 덕분이었다.

노라노 씨의 승승장구에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 바로 최초의 패션쇼였다.

그는 패션쇼를 준비하면서 100% 국산 원단을 사용하기로 했다. 국가 경제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섬유산업이 취약했던 여건에서 국산 원단을 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상공부 장관이 직접 나서 원단업체를 소개해 주었고 결국 고려모직이 국내 최초로 생산한 모직을 사용해 패션쇼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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