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주영의 그림 읽기]갈대밭에 떨어진 화살은…

  • 입력 2008년 6월 7일 02시 59분


갈대밭에 떨어진 화살은 다시 찾기 어렵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사랑했던 남자에게 결별을 선언했습니다. 그 느닷없음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던 남자가 다시 물었을 때, 그녀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단호하게 헤어질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런 당찬 태도를 보인 까닭이 있었다면, 남자가 그녀의 자존심에 심각한 상처를 입히는 발언을 했기 때문입니다.

실수를 깨닫고 새파랗게 질린 남자는 즉시 의도적이 아니었다는 것을 사과하고 끈질기게 회유하려 들었으나 그녀의 분노를 가라앉히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녀는 남자를 길거리에 세워둔 채로 매몰차게 돌아서 버렸습니다. 그와 헤어질 수 있었다는 사실이 스스로 신기하고 속 시원했습니다. 거추장스럽고 무거웠던 짐을 벗어 버린 기분이었습니다. 그동안 남자와의 교제가 지루하게 계속되었다는 것에 모멸감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기분이 홀가분해진 그녀는 집으로 돌아와 매우 안락한 잠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며칠이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밤, 불 꺼진 벽난로 앞에 앉아 있던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와락 울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애간장을 끌어올려 가슴속을 호비칼로 도려내는 듯한 통렬함이 그 울음 속에 묻어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그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이후, 열흘 내내 병자처럼 두문불출하고 지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열흘 전에 입었던 잠옷을 한 번도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적이 없이 방 안에서만 맴돌았습니다. 그녀는 계속 흘러내리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헤어진 남자와의 기억이 사진처럼 생생하게 떠오를수록 눈물은 더욱 맹렬하게 흘러내렸습니다.

드디어 그 남자를 너무나 사랑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헤어진 상태인 지금, 지난날 그를 사랑했을 때보다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속일 수 없었습니다. 그 남자 자체가 따스함이었고, 부드럽고 향기로운 생명의 근원과 같았다는 것을 옛날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영혼이 그에게로 헤엄쳐 가서 그의 영혼과 혼합되는 것이 손에 잡힐 듯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갈대밭에 떨어진 화살처럼 그 사랑을 현실적으로 다시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녀가 흘리는 회한의 눈물은 소금이란 결정체가 되어 상자에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 동안 흘러서 쌓인 눈물의 결정체는 상자 가득가득 쌓여 갔습니다.

소문을 듣게 된 사람들이 울고 있는 여자의 집을 찾아와 방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거의가 사랑의 위기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녀에게서 눈물소금을 얻어 돌아갔습니다. 그 눈물소금을 몸에 지니고 다니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아픔을 겪지 않는다는 부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작가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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