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43년 호주 병원선 日어뢰에 침몰

  • 입력 2008년 5월 14일 02시 59분


단잠에 빠져 있던 엘런 새비지 간호사는 느닷없이 침대 밖으로 굴러 떨어졌다. 새벽의 고요함 대신 굉음과 불길한 진동. 새비지는 잠옷 차림 그대로 선장에게 달려갔다. 놀랍게도 그는 모자에 정복까지 갖추고 구명조끼를 걸치고 있었다. 눈이 동그래진 새비지에게 그는 나직이 말했다. “자, 이제 바다로 뛰어내려야 합니다.”

1943년 5월 14일 오전 4시 10분경, 호주의 병원선 ‘켄타우루스’가 화염에 휩싸였다. 일본 잠수함이 어뢰를 쏜 것이다.

시드니에서 출발한 켄타우루스는 의료진 64명, 야전병원 부대원 149명 등 332명을 싣고 파푸아뉴기니로 향했다. 일본군은 파푸아뉴기니를 폭격기 기지로 삼으려 했고 이를 저지하려는 미국·호주 연합군과 전투가 끊이지 않았다.

켄타우루스는 어느 누가 봐도 병원선이 분명했다. 한밤에는 모든 등에 불을 밝혔고, 배의 양 측면에는 두꺼운 녹색선 위로 커다란 적십자 표시가 있었다. 뱃머리에는 숫자 47을 그려 넣었는데, 국제적십자사에 등록된 병원선 번호였다. 호주 정부는 외교채널을 통해 일본 측에 켄타우루스가 병원선임을 통지했다.

그러나 병원선 켄타우루스는 어뢰에 맞았고, 단 몇 분 만에 깊은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새비지 간호사도 철재, 나무 등 온갖 잔해들과 함께 소용돌이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늑골과 코, 구개에 골절을 입었고 고막이 찢어졌으나 기적처럼 한순간 수면으로 밀려났다.

생존자들은 구명보트와 파편을 있는 대로 끌어 모았다. 기름 범벅인 바다 위에 ‘생존의 섬’이 만들어졌다. 외로움과 공포 속에 서로 꼭 붙어 체온을 나눴다. 저마다 자신들이 경험한 ‘희망’을 이야기했다. 기운을 돋우는, 신나는 노래도 불렀다. 피 냄새를 맡은 상어가 주변을 맴돌았고, 심한 화상을 입은 이들은 끝내 세상을 등졌다.

병원선이 격침된 지 32시간 만에 근처를 지나던 미 해군이 생존자들을 구했다. 모두 64명이었다. 새비지는 유일한 생존 간호사였다.

호주에서 켄타우루스는 곧 ‘희생’을 뜻했고, 전쟁에 이겨야 한다는 다짐을 되새기게 만드는 상징이었다. 1940년대 말 ‘간호사들을 위한 켄타우루스 추모 기금’을 모아 숨진 간호사들을 추모하는 활동을 벌였으며, 켄타우루스 최후의 안식처가 내려다보이는 퀸즐랜드 주 컬룬드라의 한 언덕에 추모비가 세워졌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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