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귄 지 한 달쯤 된 남녀. 첫 키스한 날, 첫 섹스를 했다. 하룻밤 동침에 임신을 한 21세 여자에게 35세 남자가 말한다.
“농담이지?”
SBS 월화드라마 ‘사랑해’(오후 9시 55분)에서는 등장하는 모든 것이 경쾌한 농담 같다.
머뭇거리며 약국에 들어가 임신진단시약을 구입하는 여자 나영희(서지혜)의 얼굴에도, 여자의 임신 소식을 듣고 아파트 옥상 위로 도망쳐 올라가 절규하는 남자 석철수(안재욱)의 표정에도 그다지 심각한 그늘이 없다.
“마요네즈 고소해 너무 고소해. 못난 감자 싱거워 너무 싱거워.”
배경음악으로 쓰인 한소아의 ‘마요네즈’처럼, 시종일관 생기발랄이다.
8일 방영분. 철수처럼 혼전 성관계로 애인을 임신시킨 박병호(환희)는 “어쩌다 한번 놀았는데 여자가 임신을 했다”고 화를 낸다.
“나 똥 밟았거든. 당신 같으면 살고 싶겠냐 죽고 싶겠냐? 그동안 내가 뿌린 씨가 얼마야? 그게 다 임신이 됐다고 생각하면… 아 상상도 하기 싫다!”
같은 날 방영분에서 혼자 산부인과를 찾은 영희에게 의사는 당연한 듯 낙태를 권한다.
“어차피 안 낳으실 거면 하루라도 빨리 수술 받는 게 본인에게 좋습니다. 아무래도 몸에 무리가 덜 가고….”
한국에서 유전학적 장애나 질환, 성폭행이나 근친상간, 산모의 건강 위협 등이 아닌 경우의 낙태는 불법이다. 의사가 불법시술을 조언하고 있는 셈.
21일 방영된 5회에서 돈 많은 철수 어머니는 영희를 만나 “네가 잃어버린 3000만 원짜리 다이아몬드를 갚지 않아도 좋으니까 지금 당장 병원 가서 아이를 떼라”고 말한다.
드라마 ‘사랑해’의 원작은 허영만 씨가 1998년부터 한 스포츠신문에 연재한 동명 만화다. 혼전 성관계와 임신 설정은 원작과 드라마가 같다. 하지만 임신 사실을 어렵게 상의해 온 여자에게 만화 속 석철수가 하는 대답은 드라마와 전혀 다르다.
“누구 맘대로 지워? 나의 아름다운 인생 프로그램이 와르르 무너지긴 했지만 계획은 수정하면 되는 거고 준비는 지금부터 하면 돼! 축복! 축복!”
드라마 ‘사랑해’는 22일 6회까지 평균시청률 7.4%(AGB닐슨미디어리서치 집계)로 고전 중이다. 스테디셀러인 만화 ‘사랑해’를 빌려왔지만 만화만큼 따뜻하지 않다. 그렇다고 현실적이지도 않다.
만화 ‘사랑해’에 이따금 삽입된 짤막한 잠언은 사랑에 빠진 만화 팬들이 지금도 러브레터에 인용한다. 66화 도입부 타고르의 말은 원작에서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사랑과 임신, 결혼에 대한 생각을 대변한다.
“엄마는 어디서 나를 주웠어요?”
“너는 내 가슴속에 소망으로 숨어 있었단다. 아가야.”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