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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26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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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2학년인 미우라 나기는 어른스럽다. 대학생이 쫓아올 만큼 외모도 조숙하고 가끔 맥주도 한잔한다. 단둘이 사는 대학교수 엄마가 오히려 애기 같다. 학교에서도 아웃사이더로 통한다. 같은 반 가사하라 유키에는 왠지 ‘선망 어린’ 눈빛을 보낸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자 유키에가 사라졌다. 가출한 것이다. ‘캠프 가는 셈 치고 일주일 다녀온다’는 쪽지만 남긴 채. 본 적도 없는 유키에 엄마는 “그런 애가 아니다”며 나기 탓을 한다. 하긴 유키에도 별다른 친구가 없었다. 괜한 죄책감에 나기는 ‘유키에 찾기’에 나선다.
‘카카오 80%의 여름’은 장르 구분이 불분명하다. 하이틴 소설이라기엔 사뭇 진지하다. 성장소설인가 싶으면 추리소설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름방학 첫 일주일. 나기는 친구를 찾으려다 얼떨결에 ‘소녀 탐정 김전일’이 된다.
하지만 그 뼈대는 10대 소녀의 복잡다단한 심경 변화다. 어른스럽고 세련된 나기를 중심으로 차분한 모범생 유키에, 그리고 인터넷으로 만난 요조숙녀 기호코와 모델 지망생 미리. 서로를 좋아하고 동경하고 시샘도 하는 여고생 심정. 얽히고설킨 그 ‘관계’ 속에는 세상에 때 묻지 않은 맑은 성정이 담겨 있다.
“갑자기 가슴속에서 서글픔이 밀려온다. 왜 그런 감정이 생긴 건지 바로 알아채지 못했다. 너무나 낯설어 파악하기 힘들었지만, 깨달은 순간 작은 탄성이 나올 뻔했다. 아! 부러움이다. 미리가 부러웠다. 미리는 나와 동갑인데 자신의 길을 찾았다.”
나기에게 열일곱이란 카카오 80%의 다크 초콜릿이다. 부모의 이혼으로 너무 빨리 깨달아버린 진실. 인생은 결코 달콤한 초콜릿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여름은 그런 마음도 치기임을 깨닫게 한다. 친구도, 기댈 사람도 필요하다고 말할 줄 아는 것. 사실은 그게 어른이고 용기였다.
‘카카오 80%…’는 딱 일본소설이다. 소소한 일상을 지루하지 않게 풀어낸다. 다크 초콜릿도 그렇지 않나. 처음엔 씁쓰레하지만 막상 먹다 보면 훨씬 풍부한 맛. 그 잔잔함은 놓치기 아쉽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