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도지사-교수-변호사-화가… 30여 명, 만화에 상상력을 묻다

  • 입력 2008년 3월 10일 02시 59분


국민대 배규한 교수(오른쪽)가 옥란재 사랑방에서 만화로 상상한 스토리텔링 발표회 강평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미래상상연구소
국민대 배규한 교수(오른쪽)가 옥란재 사랑방에서 만화로 상상한 스토리텔링 발표회 강평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미래상상연구소
참석자들이 옥란재 창고에서 열린 음악회에서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오른쪽에서 세 번째)등과 손을 잡고 이탈리아 가곡 ‘오 솔레 미오’를 합창하고 있다. 사진 제공 미래상상연구소
참석자들이 옥란재 창고에서 열린 음악회에서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오른쪽에서 세 번째)등과 손을 잡고 이탈리아 가곡 ‘오 솔레 미오’를 합창하고 있다. 사진 제공 미래상상연구소
《장관, 도지사, 최고경영자(CEO), 교수, 변호사, 화가가 만화를 읽으러 화성으로 간 까닭은?

7일 밤 우박처럼 별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경기 화성시 용두리 남양 홍씨 100년 고택 옥란재(玉蘭齋).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김문수 경기도지사, 김병종 서울대 미대 교수, 강인선 거북이북스 대표, 지원철 이지바이오시스템 회장, 김대성 도드람B&F 고문, 전경원 한국창의력교육학회 회장 등이 모였다. 또 배규한 국민대 교수, 나성린 정진곤 한양대 교수, 정재영 성균관대 교수, 김상국 경희대 교수 등 학자들과 남상만 프린스호텔 회장, 이윤현 현명농장 대표, 서인수 성도이엔지 대표이사, 이재돈 전 삼성생명 부사장, 맹정주 서울 강남구청장, 김범수 한화주택건설 회장, 박인출 예치과 원장, 성일종 앤바이오컨스 대표, 황성진 워버그핀커스 대표 겸 미국 변호사, 조영탁 휴넷 대표 등의 모습도 보였다.》

미래상상연구소 화성 남양 홍씨 고택서 ‘상상력 아카데미’

“문학 영화 미술은 개개인이 창조한 이야기이자 뻥의 산물”

각계 리더, 만화-음악 즐기며 ‘예술적 상상력’ 경험 나눠

이 모임은 아름다운 미래를 목표로 하는 ‘미래(美來)상상연구소’(대표 홍사종)가 마련한 ‘최고경영자(CEO)들의 재미있는 상상력 아카데미’. 이달의 주제는 ‘이야기 혁명시대, 만화적 상상력이 미래를 창조한다’였다. 각자 승용차로 옥란재에 온 30여 명은 영화평론가 조희문 인하대 교수와 만화기획자 강인선 씨의 특강을 들었다.

조 교수는 “최근 한국 영화가 부활한 것은 관객들의 기대를 뛰어넘는 속도감과 역동성을 발굴했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새로운 상상력과 리듬을 개발하지 못하면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강 씨는 “문학 영화 미술은 개인의 상상력이 빚어낸 ‘이야기 서술’이자 ‘뻥’의 산물”이라며 참석자들이 즉석에서 자기 이름으로 삼행시를 짓도록 했다. 조영탁 대표는 ‘조직 내에서 영원히 탁월한 조영탁’, 배규한 교수는 ‘배우자, 규칙을, 한 개라도’, 지원철 회장은 ‘지원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지원해 주는 철없는 남자 지원철’과 같은 순발력 있는 삼행시로 박수를 받았다.

이어 강 씨는 이날의 ‘교재’인 반(半)지하 자취생들의 생활상을 다룬 ‘습지생태보고서’(최규석 작)라는 창작 만화책 한 권씩을 보게 한 뒤 “선진국의 과학과 기술은 베껴 써도 상상력과 창의력은 결코 따라갈 수 없는 세상이 됐다”고 말했다.

삽겹살 바비큐로 저녁식사를 마친 참석자들은 창고에서 정상급 바리톤 가수인 우주호를 비롯한 10명의 성악가로 구성된 남성중창단 WMF와 혼연일체가 돼 음악회를 즐겼다. 홍 대표는 “WMF는 ‘극장을 버리면서까지 음악을 통한 사회봉사를 지향해 온 바보 음악가’들의 모임”이라고 소개했다. 중도에 자리를 뜨게 된 김 지사는 “이처럼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상상력을 키우는 여러분들과 함께하지 못해 아쉽다”며 안타까워했다.

WMF는 ‘향수’ ‘청산에 살리라’ ‘농부가’ ‘경복궁타령’ ‘어느 멋진 봄날에’ ‘동백섬’ ‘케 사라’ ‘산타 루치아’ 등을 불러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참석자들은 음악에 취하고, 촛불의 떨림과 난로 속 통나무 장작 탁탁거리는 소리에 매료됐다. 곡이 끝날 때마다 ‘브라보’가 터져 나왔고 앙코르가 쇄도했다. 로마 원로원과 이탈리아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문화 예술 스폰서 문화를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였다.

정 장관이 이탈리아 원어로 ‘오 솔레 미오’를 불러 분위기를 절정으로 이끌었고, 클래식과 뽕짝이 퓨전된 맹 구청장과 WMF의 ‘어머나’ 중창 또한 폭소를 자아냈다. 이어 참석자들은 ‘오 해피데이’와 ‘사랑으로’를 합창하는 것으로 1시간가량의 음악회를 마쳤다.

주최 측이 준비한 군고구마와 현명농장에서 가져온 배즙 등으로 밤참을 한 참석자들은 김병종 교수와 정 장관의 특강을 들었다. 김 교수는 우선 애송시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를 낭독했다.

‘이십 대에는/서른이 두려웠다/서른이 되면 죽는 줄 알았다/이윽고 서른이 되었고 싱겁게 난 살아있었다/마흔이 되니/그때가 그리 아름다운 나이였다///삼십 대에는/마흔이 무서웠다/마흔이 되면 세상 끝나는 줄 알았다/이윽고 마흔이 되었고 난 슬프게 살아 멀쩡했다/쉰이 되니/그때가 그리 아름다운 나이였다//예순이 되면 쉰이 그러리라/일흔이 되면 예순이 그러리라//죽음 앞에서/모든 그때는 절정이다/모든 나이는 아름답다/다만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를 뿐이다’

김 교수는 “모든 나이는 아름답다. 오늘 같은 날이 내 인생에 몇 번이나 더 있을까 생각하게 되는 밤이다. 얼마전 남미를 여행하면서 건강하게 삶을 즐기는 중년과 노년들의 삶이 정말 부러웠다. 하루에 12번 물 색깔이 변한다는 카리브 해를 보면서 색채 공부와 함께 단순히 경제지표가 오른다고 해서 우리가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했다.

‘참다래 신화’의 주인공인 농업인 출신의 정 장관은 ‘이종(異種) 문화의 결합시대’를 주제로 30여 분간 열정적인 강연을 펼쳤다. 그는 새 정부 출범 후 농림 수산 식품의 결합으로 농림수산식품부의 생산액이 36조 원에서 150조 원으로 늘어난 사실을 상기하며 “이순신 장군의 사즉생(死則生) 정신, 18년간 비닐하우스에서 참다래를 길러 팔던 때의 헝그리 정신, 농어민을 민원인이 아닌 주인으로 섬기는 서비스정신으로 행정을 펼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여러분과 같은 기업인 학자 문화인 등 오피니언 리더들의 지원과 상생(相生)정신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자유 담소와 상상력 친교시간으로 밤을 밝힌 참석자들은 8일 오전 경희대 김민전 교수 등의 릴레이 강연을 들었다. 이어 참여 만화가들의 도움을 받은 조별 창작 스토리텔링 만화 시놉시스 발표회와 시상식을 가진 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초봄 일상 속으로 돌아갔다.

화성=오명철 전문기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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