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두 차례 답사…방화 후 도주까지 5분

  • 입력 2008년 2월 13일 02시 50분


설 연휴 마지막 날인 10일 ‘국보 1호’ 숭례문에 불을 지른 채모(70) 씨는 지난해 7월부터 범행을 치밀하게 준비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채 씨가 숭례문에 침입해 불을 지른 뒤 숭례문을 빠져나오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단 5분이었다.

○ 사전답사 뒤 경비 허술해서 숭례문 선택

경찰 조사 결과 채 씨는 지난해 7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숭례문을 사전 답사했고 범행에 사용한 시너와 사다리도 지난해 7월에 구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답사를 통해 채 씨는 누각에 들어가려면 잠긴 문을 넘어가야 하므로 사다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 영상취재 : 서중석 동아닷컴 기자

모든 준비를 마친 채 씨는 10일 오후 4시경 인천 강화군 하점면에 있는 전처의 집을 나섰다.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며 오후 8시 35분경 숭례문 인근에 도착한 채 씨는 10분 뒤 숭례문 서쪽 석축 비탈을 타고 1층 누각 앞으로 올라갔다. 접이식 알루미늄 사다리로 잠긴 문을 넘어 1층 누각에 들어간 채 씨는 곧바로 2층 누각으로 올라갔다. 이어 배낭에서 시너가 담긴 1.5L 페트병 3개를 꺼낸 그는 1개를 바닥에 뿌리고 일회용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나머지 페트병 2개는 불이 붙은 지점 옆에 놓아두었다. 불이 붙은 것을 확인한 채 씨는 사다리, 라이터, 배낭을 현장에 버리고 들어온 길로 되돌아 나갔다.



경찰 관계자는 “채 씨가 2층에서 불을 지른 것은 1층과는 달리 누각 외벽이 모두 막혀 있어 외부에서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채 씨는 또 “증거를 없애야 했고, 운반하는 데 거추장스러워서 범행 도구들을 모두 현장에 두고 왔다”고 진술했다.

오후 8시 50분경 숭례문을 빠져 나온 채 씨는 신한은행 본점 쪽으로 건너가 신호대기 중이던 택시를 타고 지하철 4호선 숙대입구역으로 이동했다. 이후 채 씨는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해 경기 고양시 일산의 아들 집에 들러 범행 사실을 털어놓은 뒤 다음 날 새벽 전처의 집으로 돌아갔다.

채 씨는 경찰조사에서 “다른 곳은 시설(경비보안)이 잘돼 있다. 또 다른 곳은 인명 피해가 너무 클 것 같아서 숭례문을 선택했다”고 진술했다.

○ “이렇게 빨리 경찰 올 줄 몰랐다”

방화를 주장하는 목격자들의 신고가 잇따르자 경찰은 11일 방화 전과자를 중심으로 용의자 파악에 들어가 3명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이 중 2명이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사실을 확인한 경찰은 2006년 4월 종로구 창경궁에 불을 질러 400여만 원의 피해를 냈던 채 씨의 행방을 쫓기 시작했다.

전처의 집 위치를 알아낸 경찰은 11일 오후 4시 50분경 하점면 전처의 집에서 채 씨 이름으로 돼 있는 약 봉투를 발견하고 채 씨의 행방을 추궁했다.

그러나 채 씨의 전처는 “이혼한 뒤 채 씨가 집에 오지 않는다. 나는 모른다”며 발뺌했다.

이에 경찰은 전처의 집 부근에서 잠복근무에 들어가 이날 오후 7시 40분경 마을회관 앞에서 채 씨를 붙잡았다. 범행 발생 23시간 만이었다. 채 씨는 경찰에 붙잡히기 전까지 마을회관에서 주민들과 화투를 쳤다.

처음에는 범행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던 채 씨는 화재 발생 당시의 행적을 묻는 경찰의 계속된 추궁에 결국 이날 오후 8시 15분경 “경찰들이 이렇게 빨리 알고 찾아올 줄은 몰랐다”며 범행 사실을 털어놨다.

12일 오전 서울 남대문경찰서로 이송된 채 씨는 “국민들께 미안하고 가족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신광영 기자 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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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취재 : 신세기,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 영상취재 :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 영상취재 : 정영준,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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